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만평] 박제정 기자 j213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인터뷰]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김미희(서울대ㆍ84학번) 전 국회의원은 1986년 당시 약학대 학생회장 신분으로 건대 항쟁 참여했다. 건대 항쟁을 전환점으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정치계에 입문했다는 그녀는 19대 국회의원까지 당선됐지만,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며 의원직이 박탈됐다. 그렇게 그녀의 ‘진보 정치’의 길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 전 의원의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며 웃음 짓는 그녀에게 ‘건대 항쟁’은 어떤 자양분이 되었을까? 김미희 전 국회의원 (사진ㆍ정두용 기자) Q. 건대 항쟁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저는 당시 서울대 약학대학 학생회장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과제는 부당한 군부정권을 마감하고,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현실적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대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과제였고, 우리의 미래와도 직접 연관돼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학투련의 결성식이 건국대학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은 크게 *<자민투>와 <민민투>로 나뉘었는데, 이렇게 양분된 학생운동을 반성하고, 애학투련으로 모아내며 실천방향을 정하는 결성식이었습니다. 또한 반외세, 반독재, 평화통일의 구호는 시대의 과제이며 꼭 필요한 목소리였죠. 저는 이런 애학투련의 의의와 구호에 동의했고, 뜻있는 약학대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Q. 건대 항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성식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찰나에 전경들에게 포위됐습니다. 우리는 잡히지 않으려고 본관(현, 행정관)으로 들어갔죠. 우리는 전경들에게 “우리는 평화시위를 진행했다.”고 말하며 ‘안전귀가’의 보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농성은 3박 4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농성에 본관의 학생들은 굶주림에 지쳐갔습니다. 전경의 포위를 뚫고 음식을 구해오는건 당연히 불가능했죠. 매점은 사회과학관(현, 경영대)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과정으로 가능했는지 세세히 기억할 수 없지만, 희망의 끈이 연결됐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밧줄을 연결한 것이죠. 학생들은 밧줄이 연결되자,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밧줄을 타고 음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전달된 돈은 사회과학관 매점에 놓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음식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20명 남짓의 학생들과 함께 어느 교수연구실에 있었는데, 그때 우리 방으로 온 음식은 초코파이 다섯 개와 수프 두 그릇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서로 양보했고, 누가 더 먹겠다고 싸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양의 음식이지만, 기분 좋게 옆 학생과 나눴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건대 항쟁에 참여한 경험이 이후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농성이 특수부대의 진압으로 끝나며, 많은 학우들과 함께 구속되면서 저 역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선배로서 후배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지 못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경험했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대 항쟁을 통해 제 삶의 지향점을찾을 수 있었습니다. 애학투련 결성식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건대 항쟁 이후, 저는 집행유예를 받기 전까지 100일 가량을 서울구치소에서 지냈습니다. 학교는 집행유예를 받은 학생들에게 ‘무기정학’을 일괄 통보했죠. 87년 2월 석방되어 7월 복학 통보를 받기 전까지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해답을 80년 광주항쟁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정학 기간 고향인 목포에 있었는데, 처음엔 막막하더군요. 그러던 중 5월, 친구에게서 자기네 학보에 실을 글을 부탁받았습니다. 주제는 광주항쟁이었죠. 그 글을 위해 광주항쟁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희망을 찾았죠. 80년 광주는 무정부상태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양심이 살아있던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초코파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던 저희처럼 말이죠. 광주항쟁이 실패가 아니듯이, 건대 항쟁의 의미도 뚜렷합니다. 또한, 광주항쟁을 공부하며 많은 시민들이 저와 같은 생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이 증명됐죠. 건대 항쟁은 제 삶의 방향을 굳히는 큰 계기였고 전환점이었습니다. Q. 사회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정치의 길을 걸으며, 암담한 현실에 직면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대 항쟁의 좌절이 6월 민주항쟁을 촉구했던 것처럼,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소수정당으로 지역구 의원 당선돼서 올바른 이야기를 국회에 전달할 수 있던 기회를 성남시민들께서 주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또, 최근엔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국민들이 만드셨을 때도 전 희망을 봤습니다. 86년 10월의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그런 희망이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대신문을 읽고 계시는 건국대 학생여러분은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공부한다는 자부심을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직업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서 같은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과제가 무엇이고, 그 과제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도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 같네요. *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 투쟁위원회(민민투)와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는 85년의 전학련 산하 삼민투위에서 학생운동권의 투쟁세력간의 노선 차이로 양분된 것으로서, 이후 여러 차례 개편과 이합집산을 거쳤다. * 이 기사는 3번째 연재기사로, 10.28 건대항쟁 30주년을 기념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위로 하던대로만 해라. 아버지가 습관처럼 하시는 말이다. 당신의 말씀은 나태했던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삶이 고될 때는 그 격려에 무겁게 짓눌렸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학생들에게 이 말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실업 50만이다. 학점과 어학점수는 기본이고 대외활동도 빠질 수 없다. 잘 놀기도 해야 한다. 돌아볼 때 후회 없을 청춘을 위해 피로를 이기고 술자리를 나가고 축제도 즐겨야한다. 마냥 부모님께 손 벌리기 미안한 가정형편이면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한다. 고생했다. 잠시만 내려놓자. 당신이 어떤 사정이 있는지,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 모르고하는 속없는 소리다. 그럼에도 잠시만 그 강박을 털어내자. 성실에 찌든 사람은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간절함이 채찍질 해 앞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선택지가 유일책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따금 찾아오는 안락함에 죄책감이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뭘 해야할지 몰라 불안해 한다. 차라리 익숙한 피로와 고통에 안락함을 느낀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숨 한번 쉬고, 당신을 돌아보자.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우울 속에 빠지면 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포기하기 쉽다. 자기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닿을 수 없던 포도를 시다 말한 여우처럼 행복을 손에 넣으려는 시도조차 안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감정은 저평가되선 안 된다. 삶의 동력이다. “삶은 고통으로 차있고, 행복은 아주 잠시 소극적으로 작용할 뿐이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글귀다. 이 비관적인 말에서 오히려 행복의 가치를 한번 더 생각해 봤었다. 고래가 숨을 쉬려 이따금 수면에 나와 물기둥을 만들 듯, 사람도 살아가기 위해서 찰나일지라도 숨을 틀 그 순간이 필요하다. 여행, 음악, 운동. 이 지나가는 순간들을 사람들은 그토록 열망한다. 어떤 사람은 스키를 타는 모습을 일년 동안 상상해가며 근무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아끼지 않고 몇 주간의 여행에 쏟아내기도 한다. 인간이 순간들로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라고 강요하지도 않겠다. 제 속을 떼어내어 억지로 웃으며, 행복해져야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강박이다. 다만 숨 막히게 살아온, 살아갈 당신도 언젠가 평온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떠올려라. 사족으로 뒤집어 생각하면 행복이 삶의 목적은 아니니 지나온 길이 행복하지 않았다며 한탄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김예신 기자 yesin979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2019학년도 2학기 장애학생간담회 열려 교내 여러 단체, 참석은 했지만 질의·응답 시간에는 자리 비워 지난 11월 18일, 산학협동관 210호에서 학생복지처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주최로 ‘2019학년도 2학기 장애학생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장애 학생을 비롯해 △이한세 장애학생지원센터장 △총학생회 청심 생활복지국 △학생복지위원회 △학생상담센터 △장애 인권동아리 가날지기 등이 참석했다. 이번 학기는 △장애인 주차구역 개선 △학생회관·법학관 뒤편 경사로 설치 △점자 보도 블록 설치 등 시설 개선 공사가 이뤄졌다. 청심은 등록금 요구안을 작성할 때 ‘가날지기’를 통해 장애 학우들의 요구안을 받아 3,000만 원 정도의 장애 학우를 위한 예산 확보에 힘썼다. 예산은 위의 세 가지 시설 공사에 사용됐다. 청심 생활복지국은 “등록금 요구안에 포함됐지만, 예산 부족으로 집행하지 못했던 내용은 차기 총학에 인수인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간담회 질의·응답 순서에는 △장애 학생 도우미 제도 개선 △교제 제작팀 운영 △장애학생지원센터 전문 인력 배치 및 공간 확보 △졸업요건 △가날지기 동아리방 화장실 시설 개선 △야외계단 점자 블록 미설치 △기숙사 차도 가로등 및 점자 블록 등에 대한 질의와 답변이 오갔다. 특히 시설과 관련된 질의·응답에서 학생회관과 경영관 등 건물 출입구의 야외계단에 점자 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아 문제가 제기됐다. 안 주임은 “전체 시설문제로 시설팀에 얘기해 보겠다”고 답했다. 기숙사의 시설에 관한 요구도 있었다. 캠퍼스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목은 차도로 돼 있는데 가로등이 어둡고 점자 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아 통행에 불편함을 겪는 장애 학우가 있었다. 안 주임은 “현실적으로 기숙사는 법인이 학교가 아니라 바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센터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문의해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심을 비롯해 학생복지위원회, 학생상담센터가 이번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학교 본부와 장애 학우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자리를 비워 아쉬움을 남겼다. 청심은 지난 1학기 장애 학우들과의 소통을 위해 장애학생간담회를 따로 주최하겠다는 계획을 알렸지만 이뤄지지 않았었다. 가날지기는 “장애 학우들이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서로 어떤 점이 좋았고, 보완돼야 하는지에 대한 소통이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청심은 ‘듣는 입장’이 아닌 ‘말하는 입장’에 그쳤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어윤지 기자 yunji0512@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3·1혁명 100년과 ‘건국’의 뜻 손석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3·1혁명’이란 말은 100년이 넘도록 여전히 낯설다. ‘3·1운동’이 귀에 익어서다. 신문과 방송이 노상 그렇게 보도해온 탓이다.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잖은 사람이 그 역사적 위상을 정확히 짚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3·1운동’이라 부르면 학문적이거나 객관적이고, ‘3·1혁명’이라면 가치가 개입되거나 주관적이라 인식할 문제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문제도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보수적이라는 임시정부도 ‘3·1운동’보다 ‘3·1혁명’을 자주 썼다. 이 짧은 글에서 ‘운동’이 아니라 ‘혁명’으로 써야 옳다고 고집스레 주장할 뜻은 없다. 다만 운동이 아니라 혁명이 옳다는 역사적 논리는 젊은 지성인으로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했다. 9년 만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은 제국의 복원을 바라지 않았다. 황제복위 운동도 없었다. 왕조를 되찾자는 사람들은 흐름을 이루지 못할 만큼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민중의 외면을 받았다. 만세 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독립해 건국할 나라가 ‘왕의 나라’ 아닌 ‘민의 나라’임을 공식 선언했다. ‘혁명’의 이름에 값하는 까닭이다. 독립선언문을 읽어보면 선인들이 건국하고 싶은 나라가 확연히 드러난다. 선언문은 들머리에서 “조선 사람은 자주적 민중임을 선언”하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길이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자주민으로서 조선인의 ‘정당한 권리’만 강조한 게 아니라 ‘인류 평등의 큰 뜻’을 강조했다. 그날 거리에서 목숨 바친 선인들의 꿈이 100년이 지난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되었는가를 짚어보자. 독립선언문이 가장 두드러지게 내건 ‘자주’와 ‘평등’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절실한 과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온전한 ‘자주’도 ‘평등’도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다. 오늘의 풍경을 100년 전 3월의 정신으로 돌아가 성찰해보자. 과연 만세운동에 나선 선인들은 그 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수백만 명을 죽이고, 그 이후에도 내내 적대시하며 천문학적 군사비를 탕진해온 못난 현실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더 큰 문제는 분단된 남과 북의 민주주의가 각각 온전한가에 있다. 남쪽에서 무장 커져가는 빈부 차이, 북쪽의 당 고위 관료와 일반 민중 사이의 불평등은 엄연한 현실이다. 3·1혁명 이후 100년이 흐르도록 그날의 꿈이 온새미로 이뤄지지 않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을까. 독립선언문은 당시 2천만 겨레구성원 모두에게 저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으라고 촉구했다. 국내 사립대학 가운데 건국대는 재단이 친일의 오점이 없는 드문 대학이다. ‘건국인’들이 1919년 건국의 뜻을 새삼 자부심을 지니고 깊이 새겨보아도 좋을 이유다. 손석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2019년도 하반기 전학대회 열려 감사소위 세칙, 자치기구 조사위 관련 조항 등 가결 9월 23일 제1학생회관 프라임홀에서 열린 하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김다혜 중앙감사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정지원 기자 지난 9월 23일 제1학생회관 프라임홀에서 하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가 개최됐다. 이날 전학대회에서는 △총학생회 신임 집행부 인준 △감사결과보고 △단과대 및 중앙기구 예·결산 및 활동보고 △학칙 개정 논의 △전학대회 비례대표 제도 시행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학칙 개정 논의에서는 중앙감사소위원회(이하 감사소위)에 관련된 개정안들이 가결됐다. 감사권은 감사소위 이외에 다른 어떠한 기구로도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과 감사시행 세칙은 감사소위의 제정, 심의를 거쳐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의 승인에 의해 효력을 발휘한다는 세칙이 개정됐다. 이에 대해 김다혜(사과대·응통16) 감사소위원장은 “앞으로 중앙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감사 세칙이 수정될 수 있다면 감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함태원(문과대·철학17) 철학과 학생회장은 “이 개정안으로 인해 중운위의 과반수 이상만으로 단과대 학생회 및 과를 압박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한편, 논의안건 순서에서는 줄곧 논란이 돼왔던 전학대회 내 비례대표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비례대표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측은 “인원수가 많은 단과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그만큼 전학대회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제도에 반대하는 측은 “인원수가 많은 단위가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지는 것은 특정 단위에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과가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론을박 끝에, 해당 안건은 부결됐고, 비례대표 제도는 중운위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또한, 이날 전학대회에서는 자치기구 조사위원회 관련 조항, 사전강의평가 안건 등이 가결됐으며, 기타 안건으로 전학대회 참가 대표들에 대한 공결증 부여 등이 논의됐다. 신윤수 기자 sys032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몰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학복위, 몰래카메라 탐지기 4대 구비 해 지난 8월, 학생복지위원회<KU:LOVER>에서 몰카 탐지기를 구비해 대여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학복위는 방학 중 약 30만 원의 고성능 탐지기 4대를 구입하여 2학기부터 대여사업을 진행한다. 단과대 학생회 혹은 다른 학생자치기구에서 대여하여 건물 내 의심지역을 탐지할 수 있다. 이번 몰카 탐지기 구비로 외부기관에 의존했던 검사에서 자체적인 검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루어진 일시적인 교내 몰카 검사 방식에 캠퍼스 내 몰카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학복위에서는 직접 탐지기를 보관 및 관리하여 학우들의 효율적인 사용을 도울 계획이다. 학생복지위원장 김주찬(공과대·항공15) 학우는 “몰카 탐지기는 단과대 학생회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장비”라며 “직접 검사하기 보다는 대여를 통해 학생회의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김 위원장은 “중앙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의 각 단체에 사업에 대해 널리 홍보 중이다”며 “각 건물의 상황과 실정을 잘 아는 학생단체에서 많이 이용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기적인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임기가 끝난 후에도 관련 사업을 인수인계하여 지속적인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대여는 제1학생회관 106호 학생복지위원회 사무실에서 할 수 있다. 물품 분실이나 망가질 경우에는 대여 주체가 변상해야 한다. 박가은 기자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악기를 다룬다는 것 정명수 (이과대·물리18)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 왔다. 처음에는 조그만 손에 비해 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게 놀라웠다. 누른 음들 하나하나가 모여 예쁜 선율을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는 내게 특기나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었다. 워낙 재능이 없다 보니 한 곡을 완벽하게 치기 위해선 지루한 연습을 한참 동안 해야 했고, 이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갈수록 메말라갔다. 매주 한 번씩 있는 레슨을 위해 한 시간도 연습하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어머니는 결국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피아노 레슨을 끊어버렸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더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신났다. 하지만 점차 헛헛한 감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란 악기에 내 마음의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다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은 점점 많아 졌지만,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피아노가 내게 쉼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대학과 미래에 대해 분주했던 내 모습, 답답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대학에 올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의 새 학기, 어느 동아리를 들어갈까 살피던 중 피아노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덴 경탄할 만큼 피아노에 자신의 ‘혼’을 쏟으면서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전히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나도 그들처럼 내 감정을 더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연습량이 늘었다. 일 년이 끝날 즈음이 되니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능숙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학업, 대인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지칠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줬음은 물론이다. 음악이 없는 삶과 있는 삶은 다르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삶과 만들어내는 삶은 또 다르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감성을 가지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희열은 한 번 느끼면 끊기 어렵다. 또한 악기는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지금 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점과 스펙을 쌓을 걱정에 사는 것이 힘겹다면, 혹은 말하지 못할 슬픔이나 분이 마음에 있다면 하나쯤 악기를 연습해 보자. 처음엔 연습과 비례하지 않는 실력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들여 음악 그리고 악기와 가까워진 만큼,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명수(이과대·물리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 공동 공간 대여 제한되는 연합동아리 공동 공간 대여 제한되는 연합동아리 학술 및 체육시설 공간 대여 공지 켑쳐본. 신청 대상을 '본교 재학생으로만 구성된 단체'로 규정하고 있어, 연합동아리는 대여가 일부 제한된다. 현재 학생복지처는 연합동아리의 학술및 체육시설 대여를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 이 방침에 대해 동아리 연합회(동연)는 지난 5일 열린 전학대회를 통해 “공간 대여를 제재한 대상 중 연합동아리는 제외해 달라”는 내용의 요구안을 대학본부에 전달했다. 학술 및 체육시설 공간 대여의 신청은 ‘우리 대학 재학생으로만 구성된 단체’로 제한하고 있어 △졸업생 △외부인 △연합동아리는 사용이 불가하다. 본교 학생들만 공동공간을 사용해도 이미 포화상태라는 게 학생지원팀의 설명이다. 실제로 제1학생회관 2층 중강당의 경우, 이미 9월 중순까지 주말을 포함한 대부분 시간에 예약이 잡혀있다. 학생지원팀 탁일호 주임은 “본교 학생들만 사용하기에도 공간이 부족해다른 대학생이 오는 행사에까지 공간을 대여해줄 수는 없다”고 전했다. 때문에 타대학 학생과 연계한 연합동아리의 행사엔 대여가 제한된다는 설명이다. 윤재은(정치대ㆍ정외4) 동연회장은 “우리대학엔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은 연합동아리가 10개 이상 활동하고 있다”며 “이 동아리들은 특성상 타 대학과 연계된 활동을 많이 진행하는데, 학생복지처의 방침 때문에 우리대학 재학생이 행사를 주도하더라도 학내에서 개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위와 같은 요구안을 제시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자연대 학생 그룹 소속 김무석(수의대ㆍ수의학4) 학우는 “우리 동아리만 해도 학기당 2~4회의 연합행사를 진행한다”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더욱 풍요로운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학생지원팀의 비일관적인 조치도 지적됐다. 익명을 요구한 A 연합동아리 회장은 “저번 학기에 우리 동아리가 주최하는 연합행사를 본교 체육시설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다”며 “연합동아리라도 본교 재학생만 사용하겠다고 신청하면 받아준다”고 전했다. “공간대여 제한 방침 때문에 이렇게 신청해놓고 타대학생을 몰래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고백했다. 동연의 요구안은 학생복지처에 전달됐지만, 방침수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탁 주임은 “동연에서 의결한 내용이지만, 동연소속 학생은 전체 학생의 10% 미만”이라며 “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의 대여 방침을 수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포토뉴스]2019 건국인의 밤 행사 왼쪽부터 △김명자(의상74) △김시명(축산66) △양동훈(낙농65) 동문이 이윤보 총동문회장(세번째)으로부터 자랑스러운 건국인 상을 받았다. /사진제공 홍보실 ‘2019 건국인의 밤’ 행사가 지난 5일 동문회관에서 오후 6시 30분에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양동훈(낙농65) 유니온비엔씨 ㈜ 대표이사 △김시명(축산66) 전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 회장 △김명자(의상74) ㈜ 삼흥콜렉션 대표가 ‘자랑스러운 건국인 상’을 수상했다. 행사는 △총동문회장 축사 △축하패수여 △자랑스러운 건국인 시상 등 순으로 진행됐다. 이지은 기자 emily909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8 Next / 68 GO / 68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