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칼럼]노약자석보다 교통약자석이 필요한 시대 박가은 홍보미디어부 기자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오후 6시경,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이 임산부석 앞에 서있었고 그 자리에는 한 여성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 여성은 피곤한지 바로 앞에 임산부가 서있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주위 사람들 역시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임산부를 보지 못했다. 오전7시, 오후6시는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통학하는 대학생들로 지하철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이다. 특히 퇴근길에는 하루 동안 일하느라 지쳐 지하철에서는 졸음을 이기기 힘들다. 지옥철을 타고 한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누적된 피로는 5일 동안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임산부석을 항상 비워두기는 어렵다. 지하철로 등하교하며 자리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겪다보니, 배려받지 못하는 임산부석과 노인들만 이용하는 노약자석, 두 좌석이 왜 따로 존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임산부석은 교통약자 중에서도 특별히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좌석이지만 임산부가 앉아있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다. 반대로, 노약자석에 임산부나 아이들이 앉아있는 경우도 드물다. 노약자석의 원래 이름은 노약자·장애인·임산부 보호석이지만 오랫동안 뿌리박힌 편견 때문에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힘들다. 2017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14.2%로 추산돼 17년 만에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그에 맞춰 시내버스에는 노란 커버가 씌워진 좌석이 많아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고령인구도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인구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늘어 다른 나라보다 인구변화가 빨리 진행됐다. 독일과 미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각각 40년, 73년 걸렸고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도 24년 걸렸다. 이대로 가다간 노약자석이 늘어난 교통약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양보와 배려 문화는 인구 비율이 변화하는 속도보다 더디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약자석을 우선석이라고 부른다. 몸이 불편하거나 영유아를 동반한 자, 말그대로 교통약자를 위한 좌석이다. 역 곳곳에는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교통약자석에 앉았을 때 자리를 쉽게 양보하기 위해서다.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고 큰소리로 통화해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다른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교통약자석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노약자석’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되려 기분 나쁜 눈초리를 받으며 역차별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이용하는 사람도 교통약자라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앉아야 한다. 양보는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다만, 배려가 필요한 자리에 앉았다면 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필 필요는 있다. 박가은 기자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U ABS 대숲에 보내는 편지 PD 김혜나 ENG 임형재 ANN 한채은 조덕현 KU ABS [Cinema Deep Talk] 2화 - 여배우는 오늘도 PD 윤지현 ENG 이준협 ANN 유시연 건대신문 2018학년도 수시 경쟁률 19.09대 1...최고 경쟁률은 논술 수의예 140.20대 1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2018학년도 신입학 수시모집 원서접수 마감 결과 2,025명 모집에 38,666명이 지원해 평균 19.09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시모집 경쟁률 21.35대 1과 비교해 다소 하락한 수치다. 한편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전형과 모집단위는 KU논술우수자전형 수의예과로 140.2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어 KU논술우수자전형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가 107.8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KU예체능우수자전형 영상영화학과-연기는 73.4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주요 전형별로는 △KU자기추천전형 18.29대 1 △KU학교추천전형 9.09대 1 △KU논술우수자전형 34.92대 1 등이었다. 우리대학은 이번 수시모집에서 정원 3,329명의 60.8%인 2,025명을 선발한다. 대표적 학생부종합전형인 KU자기추천전형과 KU학교추천전형의 선발인원이 확대되면서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인원이 1,325명(39.9%)에서 1,512명(45.4%)으로 증가했다. 전년도 KU 고른기회전형(유형1~유형6)은 고른기회전형Ⅰ·Ⅱ로구분해 선발하며 올해 신설하는 고른기회전형Ⅱ은 정원 내에서 총 40명을선발할 예정이다. KU논술우수자전형은 논술고사 60%와 학생부(교과) 40%를 일괄 합산해 465명을 선발한다. 논술시험은 모집단위에 따라 △인문사회계Ⅰ △인문사회계Ⅱ △자연계로 구분해 진행된다. 올해 수시모집 논술고사는 오는 30일에 인문사회계와 자연계로 구분해 실시될 예정이다. KU논술우수자의 최종합격자는 11월 17일에 발표될 예정이며 KU자기추천과 KU학교추천의경우 각각 오는 11월 17일, 12월 5일에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이다경 기자 lid041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스펙보다는 권익증진에 시선을 맞춘 우리대학 학생모임 <KUNIMAL>은 주말마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떠난다. 우리대학 내에는 스펙 쌓기와는 거리가 먼 학생모임인 △KUNIMAL △패는페미 △Cue The Felix 등이 있다. 이 단체들은 각각 △유기동물 △페미니즘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는 곳에 시선을 맞춘 우리대학 내 학생모임이다. <KUNIMAL>은 우리대학 영문이름의 약자인 KU와 동물을 뜻하는 ANIMAL의 합성어다. 우리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유기견의 생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시작된 학생모임으로 매주 주말에 유기견 봉사활동을 간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모임원들이 함께 가는 인천 아지네 마을봉사뿐만 아니라 희망자에 한해서 평일에도 사설동물보호소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그 밖에도 회비를 걷어 학교 내 길고양이 급식소 사료 지원 등 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또한 현재 길고양이와 함께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우리대학 내에서 서식하는 길고양이들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주고 보살피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다. 요즘 동물을 쉽게 입양하고 금방 유기하는 행태에 대해 이현지(KIT·융합생명3) KUNIMAL 회장은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라며 “입양을 할 때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패는페미>는 일상적인 여성혐오와 성차별에 펀치를 던지자는 의미로 2015년도에 여성주의 담론이 형성되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우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고 매주 두 사람씩 돌아가면서 발제하는 식으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그 밖의 활동으로 교내에서 성관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자보와 성명서를 쓰는 것에도 참여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상경대 성추행 사건’에 관련된 양성상담센터 규탄 성명서 작성에도 참여했다. 나연(문과대·철학4) 패는페미 대표는 “페미니즘을 극단적 학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제 남성성을 해체시키자는 입장에서 인간과 사회를 분석하는 학문”이라며 “다른 학문들도 한 가지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파악해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동아리가 아닌 소모임이어서 학생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 힘이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Cue The Felix>는 라틴어로 ‘행복을 시작하다’라는 뜻이다. 2007년 학내 남성 동성애자 모임으로부터 시작돼 현재는 여성 동성애자 및 다양한 성소수자 모임으로 확대됐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성소수자 관련 스터디를 하고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등 대내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Cue The Felix 공동대표는 “모임의 존재 자체가 성소수자가 사회로부터 단절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모임도 좋지만 교내 동아리로 인준 받아 학내에 있는 성소수자들한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동성애를 자연스럽지 않은 행위라고 하지만 타인의 관점에 개인의 취향을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위 `스펙 쌓기용 모임'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우리대학 내에서 권익증진에 시선을 맞춘 학생모임들이 활동 중에 있다. 우리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이인숙(정치대・정외)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 현상이 대학으로까지 이어져 권익 보호에 힘쓰는 모임들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이용우 기자 a6331602@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만평]계란으로 바위치기 박제정 수습기자 j2134@konkuk.ac.kr KU 영자신문 차기 총학관련 공청회에 대한 학우들의 적극적인 참여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건국대학교 KU 미디어 소속 영문저널 The Konkuk Bulletin입니다. KU 미디어 주관, 2017년 11월 14일 (화) 12:00-17:00 2018년도 총학생회 후보자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됩니다. 그에 따라 건국대학교 학우분들에게 2018학년도 총학생회 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받아 수렴하고자 합니다. 아래 댓글에 질문 사항을 직접 남겨주시거나, hhyez@konkuk.ac.kr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당 질문에 대해서는 일괄 익명으로 진행되니 건국대학교 학우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건대신문 [인터뷰]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김미희(서울대ㆍ84학번) 전 국회의원은 1986년 당시 약학대 학생회장 신분으로 건대 항쟁 참여했다. 건대 항쟁을 전환점으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정치계에 입문했다는 그녀는 19대 국회의원까지 당선됐지만,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며 의원직이 박탈됐다. 그렇게 그녀의 ‘진보 정치’의 길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 전 의원의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며 웃음 짓는 그녀에게 ‘건대 항쟁’은 어떤 자양분이 되었을까? 김미희 전 국회의원 (사진ㆍ정두용 기자) Q. 건대 항쟁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저는 당시 서울대 약학대학 학생회장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과제는 부당한 군부정권을 마감하고,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현실적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대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과제였고, 우리의 미래와도 직접 연관돼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학투련의 결성식이 건국대학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은 크게 *<자민투>와 <민민투>로 나뉘었는데, 이렇게 양분된 학생운동을 반성하고, 애학투련으로 모아내며 실천방향을 정하는 결성식이었습니다. 또한 반외세, 반독재, 평화통일의 구호는 시대의 과제이며 꼭 필요한 목소리였죠. 저는 이런 애학투련의 의의와 구호에 동의했고, 뜻있는 약학대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Q. 건대 항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성식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찰나에 전경들에게 포위됐습니다. 우리는 잡히지 않으려고 본관(현, 행정관)으로 들어갔죠. 우리는 전경들에게 “우리는 평화시위를 진행했다.”고 말하며 ‘안전귀가’의 보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농성은 3박 4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농성에 본관의 학생들은 굶주림에 지쳐갔습니다. 전경의 포위를 뚫고 음식을 구해오는건 당연히 불가능했죠. 매점은 사회과학관(현, 경영대)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과정으로 가능했는지 세세히 기억할 수 없지만, 희망의 끈이 연결됐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밧줄을 연결한 것이죠. 학생들은 밧줄이 연결되자,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밧줄을 타고 음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전달된 돈은 사회과학관 매점에 놓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음식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20명 남짓의 학생들과 함께 어느 교수연구실에 있었는데, 그때 우리 방으로 온 음식은 초코파이 다섯 개와 수프 두 그릇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서로 양보했고, 누가 더 먹겠다고 싸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양의 음식이지만, 기분 좋게 옆 학생과 나눴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건대 항쟁에 참여한 경험이 이후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농성이 특수부대의 진압으로 끝나며, 많은 학우들과 함께 구속되면서 저 역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선배로서 후배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지 못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경험했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대 항쟁을 통해 제 삶의 지향점을찾을 수 있었습니다. 애학투련 결성식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건대 항쟁 이후, 저는 집행유예를 받기 전까지 100일 가량을 서울구치소에서 지냈습니다. 학교는 집행유예를 받은 학생들에게 ‘무기정학’을 일괄 통보했죠. 87년 2월 석방되어 7월 복학 통보를 받기 전까지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해답을 80년 광주항쟁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정학 기간 고향인 목포에 있었는데, 처음엔 막막하더군요. 그러던 중 5월, 친구에게서 자기네 학보에 실을 글을 부탁받았습니다. 주제는 광주항쟁이었죠. 그 글을 위해 광주항쟁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희망을 찾았죠. 80년 광주는 무정부상태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양심이 살아있던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초코파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던 저희처럼 말이죠. 광주항쟁이 실패가 아니듯이, 건대 항쟁의 의미도 뚜렷합니다. 또한, 광주항쟁을 공부하며 많은 시민들이 저와 같은 생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이 증명됐죠. 건대 항쟁은 제 삶의 방향을 굳히는 큰 계기였고 전환점이었습니다. Q. 사회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정치의 길을 걸으며, 암담한 현실에 직면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대 항쟁의 좌절이 6월 민주항쟁을 촉구했던 것처럼,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소수정당으로 지역구 의원 당선돼서 올바른 이야기를 국회에 전달할 수 있던 기회를 성남시민들께서 주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또, 최근엔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국민들이 만드셨을 때도 전 희망을 봤습니다. 86년 10월의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그런 희망이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대신문을 읽고 계시는 건국대 학생여러분은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공부한다는 자부심을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직업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서 같은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과제가 무엇이고, 그 과제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도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 같네요. *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 투쟁위원회(민민투)와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는 85년의 전학련 산하 삼민투위에서 학생운동권의 투쟁세력간의 노선 차이로 양분된 것으로서, 이후 여러 차례 개편과 이합집산을 거쳤다. * 이 기사는 3번째 연재기사로, 10.28 건대항쟁 30주년을 기념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붉은 해일-여성혁명의 시작 혜화동 붉은 해일이 여성들에 의해 일어났다. 이것은 불법촬영 편파수사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이자 분노의 정치학이 과연 무엇인가를 1만 2천여 명의 여성들이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붉은 물결인가? 불법도촬 피해영상물의 유포로 인해 자살해야만했던 여성들, 사회적 고립과 공포감에 숨어야만 했던 여성들, 나도 찍혔을 것이란 불안피해에 노출된 여성들, 바로 그녀들이 흘린 피에 대한 기억이자 애도행위이며 나아가 이것은 여성 포식적 남성연대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레드 카드이다.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 98.4퍼센트가 여성이지만 여성들이 찍히는 자가 될 때엔 이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 사회는 묵인, 방관해왔다. 즉 "무엇을 했느냐?"가 아닌 "누가 했는가?"에 따라 명백한 범죄인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및 수사기관의 대응방식의 속도 차이가 존재함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남성이 찍는 자일 때에 이 사회의 정의론은 작동하지 않지만 여성이 감히 찍는 자가 되었을 때는 온 사회가 들썩이며 이 세계의 정의론을 발동시킨다. 왜냐하면 여성이 찍는 자가 되었을 때는, 기존의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욕망하는 자와 욕망 투사물의 이분법이 뒤흔들려 남성권력구조를 위협하는 반체제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남성들의 불법도촬은 젊은 날의 치기어린 행동이나 공격적 성본능의 일환으로 용인되지만 여성의 불법도촬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반도덕적 행위로 간주되는 이 사회의 불공정한 수용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사회의 주류인 남성들에게는 용인과 방관의 폭이 매우 크기에 그들의 폭력은 장난이나 실수 정도로 하향 조정되어 수용되지만 이 사회의 소수자인 여성들에게는 한 치의 실수나 헛발질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녀들의 행위는 항시 상향 조정되어 사회적 위협대상으로 힐난과 공격의 포화를 집중적으로 받음으로써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할 대상으로 규정되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법도촬을 한 여성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이변적 사회처단의 시그널을 쏘아올린 것은 여성은 언제나 찍히는 자라는 것, 응시의 대상이라는 자리에서 그저 가만히 있을 것을 강령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공정한 정의론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여성들은 붉은 시위라는 혁명의 초침을 앞당겼다. 더 이상 남성공포 아래 체념과 두려움에 떨고만 있지 않겠음에 대한 선언이자 변화를 위한 전면전의 실행이다. 또한 이는 부조리한 세계를 박살내기 위한 불가능성의 조건들과의 쟁투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가장 절박한 비명으로부터 시작되며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튀어 오르는 섬광 자체이기 때문이다. 윤김지영 교수(몸문화연구소)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U 영자신문 [Interview] What Is Design for All? 1. Please tell us about Dotween. Dotween is a brand which receives messages from customers and inscribes them on products by converting to braille. We redefined braille not only as the language for blind people but also a heartfelt language, so it can be approached by the non-disabled. Ultimately, our purpose is eliminating prejudices about the blind. Thus, we started this brand to convey information and knowledge about blind people more naturally. 2. It is hard to establish a business as a university student. How did you have the motives to attempt it? My partner has thought about the issue of the blind since he was a high school student. After much consideration, he concluded that making a brand is the most effective way to alert people to this issue. 3. Why did you utilize crowd-funding1 when you started a business? We thought that we could introduce this brand and reach the masses easily by using crowd-funding. Furthermore, we needed to gain sympathy and energy from many people. To satisfy our needs, the platform of crowd-funding was a good fit for us. Thanks to these thoughts, we started this way and raised capital successfully. 4. Why do you pursue the concept of inscribing braille in leather? Braille is the language which is felt and touched by hand. Moreover, leather has a warm sensitivity and it ages nicely when it is touched. We thought combining these materials can make a synergy and let the disabled and the non-disabled go through the same experience. Therefore, we made designs reflecting these traits. 5. In another interview, you said that braille becomes a secret code because of a method that inscribes messages. Why did you think this way? Braille consists only of six dots. However, it has different meanings according to the combination. Nowadays, many people hesitate to express gratitude and love, so they do not write letters. Thus, we set up to deliver secret messages and decided to use this way, as hoping they would convey and express their mind through this system. 6. What is the most memorable message for you? Some messages come to mind. Among other messages, “My father is my hero” is the most impressive to me. My customer presented the wallet inscribed with this message on Parents’ Day. I imagined her father’s look as he was moved by her gift and I was proud of my job. In addition, people often inscribe messages for themselves to encourage when they are tired or going through various hardships. 7. I heard you have a plan to extend your business abroad. How will you carry forward the business? We received a lot of feedbacks to expand overseas because leather’s merits were appreciated in many countries. Moreover, issues about the blind are worldwide problems. For these reasons, we thought collaboration with other nations can help to achieve our ultimate purpose. Furthermore, our acquaintances introduced interested people from the United States and France and a Frenchman made a connection to intern at our company. Based on this, we sent and received e-mails to suggest collaboration and I am going to go on a business trip to have meeting with the people. 8. Do you have any plans to publish a publication? We planned to cooperate with the project to communicate stories about the blind. We collaborated with “Our eyes”, an organization to support art training for visually handicapped children. The message of the book is that being blind is just a characteristic, not a flaw. We hope readers take a broader view and think more about the issues. 9. Among many methods, why did you use design to solve misconceptions about the blind? To approach these issues, making something attractive and interesting will raise people’s awareness. Thus, we felt that design acts as a bridge for more people to experience and access the issues. 10. Activities such as Dotween are small. Why did you decide to promote these activities? I debated with my partners about the reason why the rights of minorities are infringed and injustice is formed. As a result, we concluded that people did not get enough information or their awareness was wrong. The gap between the blind and the non-blind comes out from these factors. Therefore, we thought that some small attention and a little information can make everyone live in a fair society. Big campaigns that are led by large organizations are good, of course. However, one individual’s correct attitude helps more people work in this environment. This is a small step now, but we believe that it can grow like the butterfly effect, so we can convey our goals entirely to people. 11. Do you have any messages to tell to KU’s students? I hope that students live their life worthily, not just seeing your goal blindly. Lowering your tempo and considering what is valuable in life and your interests must be good for you. Moreover, one simple experience can become your good stepping stone. Therefore, I recommend you to have many experiences and do your best!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83 Next / 83 GO / 83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