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보도]K-Cube 신축·냉난방기 교체·부처 이동 공사 마쳐 법학관 1층의 KU Grobal Lounge/출처 홍보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학교 곳곳에서 공사가 이뤄졌다. △냉난방기 교체 △동물생명과학관 K-Cube 신축 △국제처 부처 이동 △새천년관 전산실 변경 등 새 단장을 마쳤다. 학우들이 새 학기에 교내 시설을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생명과학관 1층에 학습휴게공간인 K-Cube가 지난 2월 말 완공됐다. K-Cube 조성에는 약 1.8억 원이 들었으며 개방 좌석 30석과 cube룸 5개가 조성되어있다. K-Cube는 지난해 오픈한 우리 대학의 개방형 학습공간으로 우리 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교내 곳곳에서 더워질 날씨를 대비해 냉난방 시설 공사도 이뤄졌다. 공학관 A동은 오래된 증기보일러를 철거하고 새로운 냉난방시설을 설치했고 강의실 석면철거, 상호교체를 진행해 교육환경을 개선했다. 경영관은 고장이 잦았던 4, 5층의 냉난방기를 교체했다. 냉난방기 공사와 함께 새천년관의 204호 자율실습전산실이 수업실습전산실로 바뀌어 이번 학기부터 수업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부처 이동도 있었다. 우리 대학 국제처가 국제학사에서 법학관 1층 104호, 105호로 이동했다. 새 사무공간은 전면이 유리문으로 돼 있는 개방형 첨단 업무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법학관 1층에는 KU Grobal Lounge도 마련됐다. KU Grobal Lounge는 우리 대학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개방형 학습공간으로 우리 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故 이순덕 할머니를 기려 개설됐다. 박가은 기자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사회봉사’ 기초교양과목으로 최종 확정돼 늦은 학사공지로 학우들 혼란 상허교양대학이 개설하고 있는 ‘사회봉사’ 과목의 교양 영역이 이번 학기부터 심화교양 과목에서 기초교양과목으로 전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런 변경 내용에 대한 공지가 늦어지는 바람에 수강 신청을 앞둔 학우들의 혼란이 가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학기 종합시간표에는 사회봉사 과목이 심화교양 과목으로 되어있었지만 이번의 경우 수강 신청 직전에 다시 기초교양과목으로 변동되면서 필수 졸업 여건으로 최종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데는 상허교양대학 행정실 측은 “당초에 ‘사회봉사’ 과목을 심화교양 과목으로 개설해서 강의 인원수의 부담을 줄이려 계획했지만, 학교 본부와 협의한 끝에 ‘사회봉사’ 과목을 개설, 운영함으로써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기초교양과목으로 다시 환원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상허교양대학 행정실 측은 “이번 상반기에 ‘사회봉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끔 교양대학 내에 사회봉사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emily909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수습모집]건대신문에서 63기 수습기자를 모집합니다 건대신문에서 다가오는 새학기를 맞아 함께할 열정있는 63기 수습기자를 모집합니다 3/12-3/14 새내기 맞이 주간 기간 동안 홍보부스를 운영하니 편하게 와서 궁금한 것 물어보세요 : -) 응시분야: 취재기자/디자인기자(만평) 응시자격: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건대신문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자(4학기 활동이 가능한 자) 활동혜택: 장학금 지급, 원고료 지급, 해외취재 기회 제공, 개인 명함 지급, 개인 책상 지급 지원방법: 공지사항의 입사지원서 작성 후, kkpress@hanmail.net으로 전송 지원기간: 3월 1일 ~3월 15일 면접날짜: 서류통과자에 한해 추후 통지 부서:대학 1부, 대학 2부, 문화부, 시사부, 디자인부, 미디어부, 스포츠부 궁금하신 사항 있으면 아래 번호로 언제든지 전화/문자 주세요! 가동민 편집국장 010.4363.8828 박가은 부편집국장 010.3906.1878 KU 영자신문 건국대학교 영자신문사 The Konkuk Bulletin 47기 수습기자 모집!! 건대신문 [학술]통일인문학? 그래, 통일인문학! 출처 홍보실 과연 ‘통일’은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제 생존자가 많지 않은 실향민들에게 떠나온 고향을 다시 밟아 보는 것일 수 있고, 이산가족에게는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 일지도 모른다. 또한 기성세대는 오랜 시간 동안 들어왔듯이 ‘민족적 염원’이라는 수식어로 설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입대를 앞둔 남학생들에게 통일은 군대 가는 걱정을 안 하게 해주는 대사건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누구에게는 희뿌연 희망이나 환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막막한 걱정이나 불안감이 느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당신에게 통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변은 어떤 ‘정답’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 통일은 둘로 갈라진 것을 그저 ‘하나’로 만드는, 딱딱하고 온기 없는 어떤 ‘개념’일 수 없다. 그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단어를 통해 전망하는 우리의 미래 모습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통일은 열려 있는 ‘상상력의 주머니’다. 1945년 한반도의 땅이 분단된 후 74년, 3년 동안의 참혹한 전쟁이 중단되고 66년이라는 아픈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2018년 판문점에서부터 한반도에 다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며칠전인 2월 28일 베트남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제 통일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상상해보기 위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그렇다면 ‘분단’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분단의 문제는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을 못느끼는 한반도의 정치적 조건일 뿐이었다. 또한 ‘나’의 실존과는 어떤 관련이 없어서 그저 정치인들이나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로 이해되기도 했다. 분단체제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적대적인 남북분단 상황이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유로운 삶과 상상력을 제한하고 사회적 금기를 만들어온 ‘걸림돌’이었는지 돌이켜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단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이 땅에 만들어가는 역사적 계기에 동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렇듯 통일은 분단이 우리의 인식과 감성에 아로새긴 굴레에 대해, 즉 ‘사람’과 ‘삶’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사유할 때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연구나 상상은 인간다움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천착하고 건국대학교에 터를 잡고 지난 10년 동안 이 융합학문을 선도적으로 연구한 전문연구기관이 있다. 바로 필자가 소속된 통일인문학연구단이다. ‘통일인문학’은 구체적인 사람의 문제와 일상의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통일문제를 다채롭게 펼쳐내고 있다. 인문학의 눈으로 들여다 본 통일학은 정치·체제·이념·경제·제도·국가 중심의 통일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코리언’의 이름으로 뒤섞이고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먼저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통일인문학은 분단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이질적인 사람끼리 조화롭게 사는 사람의 통일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통일인문학은 ‘소통, 치유, 통합’의 인문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소통의 패러다임은 남북이 내면화한 서로에 대한 적대성을 극복하고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대화의 자세를 전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유의 패러다임은 역사적 상처가 남긴 아픔을 보듬으며 일상적 삶 속에서 내면화해왔던 원한과 증오를 극복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의 패러다임은 과거에 존재했던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이 아니라, 코리언의 교류와 상호존중을 통해 새로운 민족적 공통성을 창출해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독일통일이 남긴 위대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문화적 통합을 추구하는 ‘사람의 통일’이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정치·경제, 이념·체제 중심의 통일이 요청하는 것은 결국 구성원들 사이의 가치·정서·문화적 측면의 소통-치유-통합이었다는 것이 바로 통일 이후 독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건국대 학생들과 더욱 활발하게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2014년 개설된 일반대학원 ‘통일인문학과’, 2018년 개설된 교육대학원 ‘통일교육전공’, 이번 학기부터는 문과대학 연계전공 ‘통일인문교육’이 문을 열었다. 80여 권에 이르는 발간도서가 보여 주듯이 그동안 축적된 통일인문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통일평화교육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통일인문학은 여러분들을 만나러 가고 있다. 박민철 교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박민철 교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학술]최재헌 교수의 세계유산이야기 - ④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과 세계유산 최재헌 교수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고고학적 유적, 건축물이나 기념물을 대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 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닌 유산으로 정의한다.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한 문화권이나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이 아니라 인류에게 공통적인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독특하고 탁월한 가치를 말한다. 따라서 세계유산은 장소성과 지역성, 지리적 환경이 녹아있고 그 속에서 사는 인간과 주변 자연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인 셈이다. 한국의 세계유산은 2018년 7월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까지 모두 13개이다. 이 중에서 고인돌은 대륙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문화적으로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만나는 경계부에 해당하는 지리적 특성이 녹아있는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인돌은 고조선의 옛 강역인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부지방을 경계로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세계유산인 강화·화순·고창의 고인돌 유적은 북방의 유목문화와 남방의 농경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지대가 한반도에서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다. 한편, 바다와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무려 931번에 달하는 전쟁의 역사를 이 땅에 새겨 놓았다. 우리 선조들은 외침이 있으면 들을 비우고 산성에 들어가 겨울에 식량이 떨어진 적이 물러갈 때 기습공격을 하는 청야입보(淸野入保) 전술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 결과 예로부터 한국은 산성 국가로 부를 만큼 산성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고구려의 환도산성, 경주 명활산성, 공주 공산성, 부여 나성과 부소산성,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은 모두 세계유산이 된 성곽유산이다. 특히, 수원화성은 18세기 당시 정조의 꿈이 어린 신도시이면서 당시 발달한 화포술에 대비하여 쌓은 군사 축성기술의 결정판이었다. 더욱이 호국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까지 세계유산이 되었다. 현재에도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대한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원화성 팔달문/출처 수원시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서 높은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며 곳곳마다 분지 지형이 발달하였다. 분지는 주위가 오롯하게 산으로 둘러 싸인 평지에 하천에 흐르는 지형이다. 분지는 거주지로서는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배타적인 지역 특성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씨족마을이나 동족 취락은 소규모 분지에 자리 잡은 배타적 농경문화의 전통을 나타낸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은 양반 씨족 중심의 전통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례이다. 고대에는 이들 분지에 읍성 국가가 발달하였는데, 낙동강과 섬진강 일대에서 부족연맹체를 이룬 고대 가야왕국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가 현재 추진되고 있다. 고대 국가의 성쇠는 하천 유역의 배후지 면적에 달려있었기에 삼국시대 이래 한강 유역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만들었다. 잠정유산 목록에 들어있는 중부내륙산 성군은 유역 분지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시대 영토 확장과 군사적 안정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2014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나당 전쟁 당시 신라의 병참기지였던 주장성을 고쳐 쌓은 것으로서 경안천이 발원하는 넓은 성내에 청랑산이 둘러싼 포곡식 분지에 해당한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에 난공불락의 성으로서 이후에는 산성도시로서 조선왕조의 전란을 대비한 임시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리는 역사가 발생하는 무대이며, 역사는 지리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시간의 기록이다. 한국의 세계유산은 이땅에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증거이자 기록이기에, 여기에 배어있는 이 땅의 역사와 삶의 숨결이야말로 민족정기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우리가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인문학적 유산임이 분명하다. 최재헌 교수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시사]조선인의 절규, 세계인의 시선 사진 이준열 기자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제국주의가 팽배했던 1919년, 3월 1일의 외침은 식민지를 일깨웠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경종이 됐다. 동양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움직임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세계에 알려졌고, 외신들은 이를 일제히 보도하며 한반도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3·1운동은 많은 식민지의 독립운동에 불을 지피게 됐다. 100년 전, 세계인들은 3·1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올해 3월 1일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행진하는 시민단체/사진 이준열 기자 韓- 국내의 모든 신문 폐간됐으나 지하신문 만들며 분투 국권 상실 이후 일제는 한국인이 운영한 신문을 폐간시켰고, 《매일신보》를 남겨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시켰다. 3·1운동 당시 매일신보는 이 운동을 폭동으로 폄하했다. 폐간된 신문 중 하나인 《제국신문》의 사장이었던 이종일은, 3·1운동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민족대표 33인의 구성원이 었다. 그는 《조선독립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창간호에 33인의 민족대표가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종로경찰서에 연행됐다는 내용을 실어 독립선언서와 함께 탑골공원에 배포해 3·1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조선독립신문》은 “민족대표는 조선을 위해 희생하니 이천만 민족은 최후의 사람이 남더라도 결코 난폭한 행동을 하지 말라”며 민중에게 평화 시위를 강조했다. 이종일은 창간호 직후 잡혀갔으나, 발간은 40호가 넘게 진행됐다. 일제의 전반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선독립신문》과 같은 지하신문은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우리 대학 한상도 교수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위해 무단통치 정책에도 불구하고 종교 단체를 크게 탄압하지 않았다”며 “주로 종교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와 지하신문을 들고 지방 민중의 참여를 독려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조선독립신문》창간호/출처 부산박물관 日- 무단통치의 한계를 실감하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언론들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거나 같은 논조의 사설을 냈다. 독립운동을 종교지도자 및 외국인 선교사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 축소 보도하며 조선인을 ‘폭도’와 ‘범인’으로 몰아갔다. 4월 16일《아사히신문》은 “조선은 일본법률에 따라 안전하게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었음에도, 흉기를 들고 관아에 방화하는 등 인도를 파괴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이런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밝혔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자, 일본언론은 취지를 약간 바꾸었다. 4월 14일 《오사카 아사히신문》은 “정의와 인도의 넓은 지대에 입각하여 인류의 이름으로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을 기약하기에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의사 감정의 충돌이 있을 리 없다”며 “고도의 문화는 동화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이는 조선통치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랴”고 문화적 자치주의를 설명한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이규수 성균관대 교수는 “이 시기 일본 언론보도의 특징은 3·1운동의 발생 원인을 총독정치의 폭압성에서 찾으려는 논조가 대두되었다는 점이다”며 “무력진압만으로는 통치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압적 동화주의’에서 ‘자치적 문화주의’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변화가 일본 내부에서 제기된 것이다. 中- 5·4운동의 기폭제가 된 3·1운동 3·1운동은 중국의 매체들이 전면적이고 깊이 있는 보도가 이뤄지며 세계에 알리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의 《매주평론》은 3월 23일 자 신문에서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의 수천의 군중이 학생의 인도 아래에 독립 만세를 부르고 일본 정부와 군대는 조선에서 떠나라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또한 개성·평양·남포 등 각지에서 항일의 분노가 일었으며, 혈기가 있는 조선사람 중 독립운동에 참여치 않는 이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중국의 이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강수옥 연변대 교수는 논문에서 “3·1운동 후 중국 각지의 매체는 큰 관심을 갖고 보도하며 한국인의 항일투쟁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며 “심지어 당시 중국의 사회 형세 및 국민의 정신 상태를 3·1운동과 비교하며 중국의 혁명운동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3시간에 1천명이 학살됐다는 내용을 전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오른쪽은 총 1만명이 학살됐다는 다른 내용의 기사/출처 USC Korean American Digital Archive 美-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인 미국, 일본의 잔학성에 경악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국 합병을 인정했고, 1차대전 승전국으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일본과 가까운 서양 열강들은 3·1운동을 폄훼하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뉴욕타임즈는 3월 20일 사설에서 “한국과 이집트는 자체 정부의 무능력으로 영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됐다”며 지배가 정당하다는 논조의 글을 썼다. 그러나 다음 날 임시정부 정한경 외무위원은 “능력이 없다는 하에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수영을 배워야 한다며 물가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며 위 사설을 반박하는 글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다. 친일적 보도는 일제의 반인륜적인 행위가 알려지며 사라졌는데, 제암리 학살사건이 알려진 것도 그들의 고발 때문이다. 한상도 교수는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가 특히 한국에 많았는데 워싱턴과 동경에 실제 상황을 전보를 알렸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4월 6일 자 1면 전체를 3·1운동에 할애했고, 4월 24일, 뉴욕타임즈는 “한국인의 자치능력은 부족한 것으로 여겼지만 최근 놀라운 애국심과 자제력, 조직 능력을 보였다”며 미국의 바뀐 여론을 보여줬다. 논문에서 고정휴 포항공대 교수는 “뉴욕 타임즈는 1919년 한 해 91건의 한국 관련 기사에서 69건이 3·1운동과 직접 관련된 기사”라며 “독립선언문을 번역하고 「세계개조 연대기」의 1919년에 3·1운동을 포함시키며 역사적 의의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3·1운동, 세계의 흐름에 변동을 주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열강은 대부분 일본 정부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보도했지만, 프랑스의 경우 파리강화회의의 주최였기에 3·1운동을 간과할 수 없었다. 일간지 《뤼마니테》는 4월 13일 자 3·1운동을 ‘혁명’으로 칭했고, 많은 언론이 3·1운동을 객관적으로 보도했다. 동남아와 중남미에서도 3·1운동은 관심을 받았다. 프랑스 식민지인 베트남의 독립운동은 세계로 거의 퍼지지 않았는데 비해 3·1운동은 비교적 자유로운 보도가 이루어졌는데, 서구 열강과 달리 동양 일본의 세련되지 못한 식민지 관리를 비꼬며 우월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서양의 노림수라는 것이 이유로 지적된다. 당시 식민지 사회에서 3·1운동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조선과 달리 자신들은 양심을 갖고 행동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적극적인 항 외세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조선인들은 완고한 독립 의지를 갖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이며 위상 있는 임시정부가 들어설 수 있게 됐고, 해외에선 중국의 5·4운동, 인도와 대만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준열 기자 index545@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박다은 대학1부장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고객들의 갑질에 고통받는 직원들을 위해 일부 사업장은 이런 멘트를 써붙였다. 하지만 아랑곳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갓 성인이 된 알바생들은 크고 작은 갑질에 아주 자주,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이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일명 ‘진상’이라 불리는 고객들을 응대한 경험에 대한 한풀이가 빠지지 않는다. 경험담을 풀어놓다 보면 도무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진상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지기 일쑤다. 기본적인 예의를 모르는 고객부터, 획기적으로 신선한 갑질을 선사하는 고객까지. 고작 8,350원에 자존심이 팔려나간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혹자들은 아르바이트 중 갑질에 시달려 속앓이를 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회생활 제대로 해보면 그건 별거 아니다”,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는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일리있어 보인다. 우리가 살아나갈 세상은 더 각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일리 있는 세상에 산다는 걸 직시하는 순간, 더 비참해진다. 현실의 냉정함을 너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뎠는데, 너무 힘든데, 나아갈 사회는 그게 아무것도 아닐 만큼 더 냉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사회를 바꿀 순 없을 것 같다. 바뀌지도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이제 막 시작하며 상처받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현실적인 조언도,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거창한 혁명이나 변화도 아니다. 쌀쌀맞은 고객 뒤, 힘내라든가, 고맙다든가 하는 말을 건네는 다른 고객의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륵 풀리고 위로받은 느낌까지 드는 경험을 꽤 많은 알바생들이 해봤을 것이다. 가끔 각박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하다고 느끼게까지 된다. 그러다 보니 알바생이 아닌 고객의 입장으로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도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내뱉으려고 노력하게 되곤 한다. 지친 나에게 희망을 준 누군가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딱 한 마디의 따뜻한 말이 모여, 이제 사회로 발돋움할 이들이 상처부터 받은 채로, 세상을 신뢰하지 않은 채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기업이나 고용주의 차원에서 알바생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 그게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일인 것 같다. 뭐 거창한 말이 따뜻한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맙다’는 말로도 충분하다. 물론 싫다면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그저 ‘따뜻한’ 한마디가 싫다면 적어도 ‘차가운’ 한마디를 던지진 말자. 너무 이상적인 말일 수 있지만 모두가 노력해주면 좋겠다. 자신이 지불하는 그 대단한 돈으로 절대 사람의 인격을 해칠 권리까지 살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모두가 아는 그날까지. 박다은 대학1부장 daeunn011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처음엔 다 그래 가동민 편집국장 지난 4일이 되면서 새 학기가 시작됐다. 처음으로 대학에 오는 사람도 있고, 처음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으로 서울에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말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설레고 기대되게 한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낯선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당연히 설렘과 걱정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이 되면서 편집국장으로 임명됐다. 대학에 입학하고 첫 감투이기도 하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부담도 됐다. ‘내가 건대신문을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전 편집국장님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정기자 혹은 부장 기자로 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도록 모르는 것들을 알아보며 열심히 준비했다. 지난 1월 편집국장으로서 첫 신문을 기획했다. 역시나 실수투성이였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책하고 있을 때 동료 기자들이 “처음이어서 서툰 거지 나중에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야”라며 위로해줬다. 그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이런 실수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면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철저히 계획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계획대로 쭉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금방 지쳐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은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경험한 일로 인해서 포기하고 낙심할 필요도 없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기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임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세운 올해의 목표를 비롯해 새 학기 혹은 첫 직장에서 자신의 계획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가동민 편집국장 syg10015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 박가은 부편집국장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9년, 일제의 식민통치에 억압받던 선조들이 독립을 외치며 대한민국이 시작됐다. 3·1운동은 평화만세시위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해 건국의 매개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가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이다. 지난 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일왕은 ’위안부’ 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 하라’고 했던 발언이 이슈가 됐다. 이에 대해 일본은 ‘유감이다’며 되려 사과를 요구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문희상 의원의 인격모독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께 피해사실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시절 이뤄진 한일합의 보상금과 지난 해 해체한 화해치유재단의 위로금 등을 통해 재정적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한평생 안고 살아온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에 대한 실질적인 위로와 배상은 감감 무소식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소리 없이 짓밟힌 인권에 대한 명예회복임에도 말이다. 국내외 일부 정치인들은 역사와 정치를 혼동하며 사과발언에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문희상 의원의 사과 발언이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킨다며 우려를 표한 것이다. 정치인의 발언이 외교관계에 큰 오해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발언의 속뜻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한일관계는 한걸음 더 나아가야한다. 이제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단어에 위화감이 줄어든 평화로운 시대이다. 전쟁이 없던 기간동안 남아있는 자들은 독립을 위해 힘쓴 선조들을 추모하고 기렸다. 100년이 흐르는 동안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점점 없어지고 피해를 증언할 ‘위안부’ 생존자들 또한 절반 이상 줄었다. 현재 남아있는 생존자들조차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독립열사들과 전쟁의 한 귀퉁이에서 희생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평생 맺힌 한을 잊어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 역사를 바로 알고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가 있다면 진심으로 뉘우치며 반성하는 것 또한 남아있는 자들이 도의적 책임을 가지고 해야할 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흘렸던 피와 땀을 다시 생각해보자. 박가은 부편집국장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83 Next / 83 GO / 83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