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문화상]시부문 당선작-<가랑눈> 가랑눈 너의 온도로 눈이 내렸다 피부에 서성거리는 내 열을 밀어냈다 늙은 골목길 폭우처럼 멈춘 시간 텁텁한 가로등 불빛 내 발을 본다 발과 바닥의 위치가 자꾸만 뒤바뀌고 나는 아예 눈이 되려는데 다신 울지 않으려고 네 앞에서 너를 묘사할 수 없다하더라도 눈이 내린다 두 눈을 감으면 온몸이 행복해져 울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하얘지는 걸까 영영 사라져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눈이 불빛을 침범하고 구름이 되고 싶다 했잖아 구름 물방울 양털 바람 누군가가 닿는 소리 포개져도 아프지 않은 것들 바닥에 스며든 눈처럼 구름처럼 아프고 싶어 눈이 닿은 불빛이 나를 침범하고 모든 색이 뒤섞인다 어두운 건 차갑다 밀폐된 속삭임 같이 사랑을 말하고 김세중(상경대·경제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소설부문 당선작-<영원의 순간> 영원은 글라스를 닦다 말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담배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흐릿하게 퍼지는 담배 연기가 좋아 아직도 끊지 못했다. 여자가 뭔 담배냐는 핀잔도, 멘솔이 무슨 담배냐는 놀림도 영원은 굴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게 문을 닫아버릴까 생각하다가 바깥에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곱게 마음을 접었다. 애플 마티니 하나랑 아디오스 하나요. 밀려오는 주문에 잔을 내려놓고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더더욱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나갈 시간은 손톱 끝만큼도 없었다. 우현이 도와주고 있는 데도 바빴다. 정신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우현이 바에 주문서를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덩달아 영원의 손길이 빨라졌다. 흔들흔들. 셰이커가 흔들릴 때마다 영원의 시야도 흔들흔들 거렸다. 영원은 종종 이럴 때마다, 셰이커가 흔들릴 때 세상도 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많이 바쁘죠. 우현이 파란 칵테일이 찰랑이는 잔을 들고 얼굴을 들이 밀었다. 머리카락 끝은 살짝 젖어 있었다. 영원은 낯선 사람을 보는 얼굴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노란 핀 조명 아래에서 빛나던 금색 머리카락이 아직도 생생했다. 건반 위에서 달려 나가던 긴 손가락이 아는 사람의 손이 맞나, 의문이 생겼다. 영원은 갑자기 눈이 쓰라렸다. 눈이 부신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은 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핸드폰이 11시를 알리며 울었다. 아직도 바깥은 깜깜했고 사람은 북적였다. 마감은 세 시간이나 남았다. 영원은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로감에 셰이커를 내려놓았다. 탁, 하고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연, 이름이 이우연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게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흐릿한 이력서를 가져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잉크가 부족했던 건지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고 사진은 얼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져있었다. 본인이 직접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바로 버려버렸을 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아뇨. 우현, 이 우현이요. 영원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으면 안 될 것을 물었나, 머쓱해하면서 눈으로 천천히 살펴봤다. 끝부분이 갈라져 노랗게 물든 밝은 갈색 머리카락부터 잔뜩 굳어있는 손끝까지. 하얗게 튼 손끝이 영원의 눈에 들어왔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가락에서 문득 유화 물감 냄새가 났다. 혹시 그림 좋아해요?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대방이 경영학과이면 더욱이나. 꼭 작업 거는 것도 아니고. 영원은 순간 창피해졌지만 조금 뻔뻔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다잡았다. 아뇨? 생뚱맞은 질문에 우현도 당황했는지, 말끝이 조금 올라가 의문형이 되어버렸다. 그런 건 왜 묻나요, 하는 순수한 20대의 얼굴을 보면서 영원은 이상하게 안도했다. 이력서를 반으로 접어 파일 안에 곱게 끼워 넣었다. 무언가를 더 묻거나 설명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출근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영원은 우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는 되지도 않는 확신으로 자신을 설득하면서까지 영원은 우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끝만 노란 갈색 머리도, 하얀 손끝을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손동작도, 어색한 20대의 눈빛도. Stay there, soft and blue. 전체 반복을 눌러 놓은 팝송 100선 중 한 곡이 익숙하게 귀를 스쳤다. 검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계산대에 서 있는 우현은 영원의 생각대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메뉴 이름을 외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평일 내내 나오는 것치곤 오래 걸리는 거지. 영원의 놀림에 우현은 눈을 아래로 내리며 죄송해요, 하고 웃었다. 노란 머리는 점점 갈색 머리끝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커피 좋아해? 아, 네. 우현이 차가운 라테를 홀짝였다. 일회용 잔 겉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우현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한 모금 더 마셨다. 슬그머니 가까워지는 눈썹 사이가 우현의 말이 귀여운 거짓말임을 보여줬지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카페 모카와 카페 라테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우현이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영원은 그래도 그 점 또한, 우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하지만 노력하는 밝은 아르바이트생. 펍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카페에는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카페가 특이하네요. 영원이 가게 문을 열고 가장 많이들은 말 중 하나였다. 영원의 가게는 누군가에게는 카페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펍이었다. 낡은 흑백사진들이 벽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었고, 구석에는 불이 꺼진 네온 장식도 있었다. 낮에는 나뭇잎과 꽃잎에 가려지다가도 밤이 되면 조명과 낡은 사진들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노래는 보통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의 팝송들이 대다수였는데, 그게 묘한 매력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곳에 있으면 꼭, 옛날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 아나요? 미드나잇 인 파리. 그 영화 진짜 재밌는데. 영원은 그 말을 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냥 누군가 그런 말을 했고, 가끔 손님들이 카페, 혹은 펍이 특이하네요, 하고 말을 걸어올 때 그 말을 그대로 들려주곤 했다. 특이하다고 어딘가에 소문이라도 난 건지 종종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들이 다녀가곤 했다. 카메라는 흐르는 음악과 커피 향을 뚫고 철커덩, 묵직한 소리를 바닥에 내뱉었다. 영원은 그 때만큼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던 카페도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바닥의 나무 무늬가 영원의 눈앞에 어지러웠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바닥만큼은 대리석으로 할 걸 그랬어. 종종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카페를 생각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흔하게 있는 두어 개의 카페처럼 무난한 나무문을 걸고 나무 탁자를 들여놓고 푹신한 소파와 각진 의자 몇 개를 늘여놓고. 그 계획이 바뀐 건 순전히 사월의 탓이었다. 카페를 차릴 거야. 통장 정리를 하던 영원이 펜을 내려놓고 오늘 날씨 참 좋지, 하는 말투로 흘리듯 이야기를 꺼냈다. 햇빛에 사월의 긴 머리가 반짝이고 있을 때였다. 흐르듯 바닥을 향하는 머리카락은 종종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기도 했다. 사월은 신경도 쓰지 않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당근을 썰고 있었다. 통통통. 경쾌한 소리에 사월의 노래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요리하는 사월의 손끝은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영원은 머릿속에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숫자들을 끌어안고 하얀 종이에 옮겨 담았다. 따뜻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사월이 웃으며 말했다. 다 썰어진 당근은 프라이팬 위에서 밥과 함께 볶아졌다. 잘게 부딪히는 빗소리가 났다. 순간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질녘도 되지 않은 낮이었다. 영원은 한가한 시간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떠올렸다. I don't know who you are, Henry……. But I dream about you almost every night. 사월과 영원의 사이로 여자주인공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빗소리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사월은 분홍빛의 꽃이 그려진 그릇 위에 예쁘게 볶음밥을 담고 있었다. 그냥 대충 먹지. 예쁜 밥이 더 먹기도 좋은 법이야. 빨리 이리 와. 밥 먹자. 영원은 통장과 노트를 덮고 사월에게 다가갔다. 연한 물감 향기가 났다. 그리고 영원은 바로 다음날 부동산을 알아보았고, 또 그 다음 날 인테리어 업자를 찾아갔다. 따뜻한 색이었으면 좋겠어요. 뜬구름 잡는 영원의 말에 업자의 얼굴이 난감하게 웃었다. 아, 예쁘면 더 좋고요. 덧붙인 영원의 말에 웃음은 더 짙어졌다. 무슨 색이라고요? 따듯하고 편안한 색이요. 업자는 따뜻하고, 에 힘을 주는 영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곤 ‘따듯’에 동그라미까지 쳤다. 톡톡 책상을 연필로 두드리는 모습이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가 톡, 톡, 톡, 으로 다시 느려지고 있었다. 끝내 아예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반대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 아까보다 더 무거운 소리였다. 영원은 굵은 손가락 끝을 바라보다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따듯한 색이면 아무거나 괜찮아요. 따듯하고 편안한 공간.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공간. 영원은 뭉개진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업자는 머리를 몇 번 긁더니 커다란 책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안에는 다양한 가게들의 사진이 늘어져 있었다. 모델 하우스 같이 예쁘게 찍힌 사진들은 온기는 한 점도 없었다. 영원은 엇비슷한 공간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다양한 이름들을 눈으로 훑기만 했다. 모던, 심플, 블랙 앤 화이트. 주르륵 다음 장으로, 다음 장으로 향하던 영원의 눈에 나무가 잔뜩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커다란 나무 사이에서 잠자듯 놓여있던 피아노 사진이 떠올랐다. 사월이 보던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자신을 연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낡고 검은 피아노. 젖은 소리로 울던 피아노, 소리가 난다고 소리치던 더벅머리의 아이. 그 장면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걸로 할게요. 이걸로요? 업자는 갑자기 마음을 정한 영원이 의외라는 듯 손끝을 바라보았다. 관리하기 힘드실 텐데요. 상관없어요. 업자는 조심스레 사진을 꺼내 영원에게 내밀었다. 영원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월에게 사진을 전송하곤 다시 사진을 업자의 손에 돌려보냈다. 매장 이름은 생각해 보셨어요? 아니요. 영원은 아차,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업자는 한숨을 내쉬며 영원을 돌려보냈다. 아니, 이름도 생각 안 해보셨어요? 마지막에는 난감한 얼굴을 넘어서 한숨까지 내쉬었다. 다음번에 오실 때에는 좀 더 생각해 보시고 오세요. 그대로 쫓겨난 영원의 핸드폰엔 사월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쁘네! 영원은 그치, 딱 이 정도가 좋아, 하고 사월에게 웃는 이모티콘을 한 아름 보냈다. 그래서,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어요? 우현이 불쑥 영원에게 물었다. 영원은 조심스레 케첩을 짜다말고 메뉴판을 들었다. 영어와 한글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메뉴판에는 그림 하나 없었다. 사실 카페 겸 펍이라고 해도 메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방 직원이라곤 한 명 밖에 없었고, 주방장이자 그냥 직원인 그 사람이 쉬는 날에는 영원이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영원은 썩 좋은 요리사는 아니었다. 제일 많이 나가는 건 나초에 치즈. 아니면 칠리소스. 혹은 감자튀김. 감자튀김을 만들 때면 영원은 그 옆에 최대한 작게, 많은 양의 케첩을 짜냈다. 뾰족한 세모 모양으로 케첩을 쌓다보면 가끔 주르륵 옆으로 흐를 때도 있었다. 제일 덜 나가는 메뉴는 동그란 닭튀김이었다. 아예 안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메뉴에 비하면 열 번 중 한 번에 불과했다. 감자를 튀기건 고기를 튀기건, 전부 똑같은 사람의 손에서 똑같은 기름을 써서 똑같이 만든 음식이라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차이점이라곤 감자와 고기라는 점뿐이었다. 뭐가 더 맛있는지는 주인인 영원도 몰랐다. 샐러드가 제일 맛있을 것 같아요. 치킨 샐러드. 애매한 메뉴였다. 가장 중간쯤의 가격에 가장 중간쯤의 판매량. 영원은 딱 그만큼 애매하게 웃었다. 반면 우현의 입 꼬리는 저 위로 올라갔다. 올라갔을 것이다. 목소리가 그랬다. 주방의 환한 불빛에 바 건너편의 우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슬슬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점차 길어지고 있는 해는 건너편 빌딩 너머에서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내비추고 있었다. 오늘 공연 팀은 언제 온대요? 글쎄. 그건 가누가 알 텐데. 영원의 펍에서는 한 달에 단 한 번 무료로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호스트는 영원이었지만 실질적인 호스트는 하우스 밴드 멤버인 가누였다. 능력 좋게도 가누는 매번 다른 가수들을 섭외해왔다. 사진을 찍는 카메라도, 소리를 담을 녹음기도 없는 공간에서 공연을 한 가수들이 벌써 열 손가락을 두 번 접었다 펴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낡은 흑백 포스터와 사진 사이에서 그들은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 반이었다. 여덟시가 공연 시작이었는데 아직도 가누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너는 오늘도 공연 보고 가려고? 공연이 있는 날, 우현은 그 날들만큼은 일이 끝나도 가지 않고 공연을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영원은 칵테일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종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그래도 최대한 겹치지 않게 영원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기도 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뿐이기에 저번 달에 뭘 만들어 줬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영원은 오늘도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데킬라에 럼, 진, 보드카까지 조금씩 섞은 후 이것저것 집어넣고 대충 저어서 우현에게 내밀었다. 블루 큐라소가 들어가서 그런지 새파랬다. 우현은 우와, 한 마디만 하고 잔을 받아들었다. 너무 파래서 눈이 시린 칵테일을 받아들고 우현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르겠어요, 하고 중얼거렸다. 감성적이긴. 영원이 가볍게 놀리자 얼굴을 붉혔다. 순진한 반응에 영원은 우현의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왜, 호수라는 생각은 안 드니?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도 이제 제법 맞받아치기도 했다. 발간 얼굴을 숨기려 움츠러들던 목도 옛날 얘기였다. 적어도 움츠러들진 않았다. 거북이가 진화했다며 또 놀림 받을 거리가 늘어났긴 했지만. 이름이 뭐에요? 우현이 잔을 들어 빛을 비춰보며 영원에게 물었다. 아디오스. 아디오스요? 응. AMF라고도 하고. 뭐야, 빨리 가라고 주는 거 아니죠? 살짝 붉은 기가 떠있는 얼굴이 말갛게 웃었다. 부끄러움은 조금 덜 타게 된 우현이지만 저 말간 웃음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영원은 저 얼굴을 볼 때마다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표정만큼은 펍에도 잘 어울렸다. 서로 다른 낮과 밤의 가게에 모두 어울리는 것은 우현뿐일 거라고, 종종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아, 맛있다. 우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영원은 그때 처음 알았다. 눈동자는 진한 고동색이었구나. 평소보다 조금 더 즐거운 것 같았다. 바다가 보고 싶어. 이젤을 세워놓고 앉아있던 사월이 말했다. 영원은 세필 붓으로 먼지를 털어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바다? 동해 바다가 보고 싶어. 사월이 물감을 주욱 짜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파란 색이었다. 동해? 응. 서해 말고? 응, 동해가 보고 싶어. 동해는 너무 멀어. 그리고 더 파랗지. 더 깨끗하고. 더 맑아. 해도 더 빨리 뜨잖아. 사월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허밍은 이리저리 마음대로 음을 바꿨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다가도, 전혀 알 수 없는 노래로 바뀌기도 했다. 영원은 순간 사진을 찍고 싶어 묵직한 카메라를 집어 들었지만 필름이 없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되지 않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사월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담았다. 붉은 노을에 갈색 머리가 빨갛게 보였다. 창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바다 놀러갈까. 충동적으로 한 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입 밖으로나마 꺼내보고 싶었다. 동해 바다에 가서 회도 잔뜩 먹고 바닷가 공연도 보고. 끝말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언제? 아마도 우리 둘이, 같이 쉬는 날에. 나는 언제나 휴일인걸. 사월은 손을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바다 냄새가 손끝에서 물씬 풍겼다.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냄새가 났다. 영원은 눈을 감았다 떴다. 쉬는 날에 바다로 가자. 그렇지만 넌 바쁘잖아. 생각해봐. 바로 내일도 스케줄 있지 않아? 음, 그렇긴 하지. 봐봐. 사월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잔뜩 토라진 얼굴로 손놀림을 좀 더 바삐 하는 모습이 딱 토라졌을 때였다. 벽 한 쪽에 걸려있는 달력에는 동그라미 쳐지지 않은 날을 세는 것이 쳐진 날을 세는 것보다 빨랐다. 영원은 카메라를 매만졌다. 조금쯤 미안해졌다. 괜한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았다. 대신 이번엔 꽃 보러 가자. 벚꽃을 보러 가는 거야. 나는 거기서 사진을 찍고, 너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이 많을 텐데? 사월은 다른 물감을 꺼내 다시 한 번 죽, 짜냈다. 그래도 상관없어. 어쨌든 우리 둘이 같이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손끝에서 천천히 구름이 솟아났다. 꼭 동해 같네. 영원의 말에 사월이 그래? 하고 웃었다. 아니야? 글쎄. 사월은 손을 계속 움직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한 바닷가에 두 사람이 있었다. 손을 잡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는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가 있었다. 그 사이에서 동해인지, 서해인지, 아니면 호수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늘인지 모를 파란 색의 틈으로 희뿌옇게 구름이 피어났다. 그냥, 바다도 가고, 벚꽃도 보러가자. 그 다음엔 장미를 보러가고, 그 다음엔 낙엽을 보러가는 거야. 그리고 다시 바다를 가자. 영원은 꿈꾸듯 중얼거렸다. 바다가 금방이라도 바로 앞에서 파도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원은 지금도 꿈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피아노 세션이 잠수래요. 가누의 말에 영원은 오늘 공연을 취소할까 고민했다. 어차피 사정에 따라서 공연 시간도 마음대로 바꾸고, 출연 가수도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많았다. 공연이 없다면 손님들이 조금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아노가 빠지면 어쩌지. 영원은 그냥 이대로 해, 라고 하려다 가누가 무슨 말이라도 더 해 주길 기다렸다. 사장님. 갑자기 우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높다란 머리 위로 손이 불쑥 솟았다. 꼭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표시간에 맨 앞에 앉은 꼬맹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영원은 손끝을 보다가 왜, 하고 답했다. 오늘 공연 곡, 봄노래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우현의 말에 영원은 고개를 살짝 틀었다. 공연 내용은 영원의 구역이 아니었다. 영원이 하는 일은 가게의 구석을 조심스레 내어주는 게 전부였다. 영원의 시선 끝에서 가누가 그렇긴 한데, 하고 긍정했다. 그럼 제가 할 게요. 저 진짜 잘 할 자신 있어요. 공연 안 망치게 잘 할게요. 반쯤은 주눅 들고 반쯤은 흥분해서 빠르게 내뱉는 우현의 말에 영원이 손을 살짝 들었다. 영원이 아는 한, 우현은 경영학과였다. 피아노와는 거리가 먼. 우현은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너 전공이 음악이었나? 아뇨. 그건 아닌 데요……. 영원은 우현의 하얀 손끝을 떠올렸다. 단단하게 굳은 손끝. 네모난 손끝. 영원은 그 동안 그걸 몰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현이 처음 왔던 게 지난여름의 입구였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 짧다는 걸 감안하면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간 셈이었다. 밴드랑 얘기 한 번 해봐. 여기 가누도 있겠다. 좋네. 어차피 정해진 공연이고 밴드 멤버는 가누를 필두로 어쩌다 모인 사람들이었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공연까지 한 시간 남았으니까, 적당히 맞춰보자. 가누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우현을 끌고 가게 구석으로 갔다. 어느새 전자 피아노가 자리를 펴고 서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하우스 밴드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우현이 어색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덟 시까지는 금방이었다. 펍이 가득 차는 것도 그만큼 순식간이었다. 나름 이름 있는 여가수는 안녕하세요, 오늘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평범한 인사 한 마디를 끝으로 내리 노래를 불렀다. 힘들어 하는 기색은 없었다. 영원은 스테이지 조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명을 꺼버렸다. 사람들은 불이 꺼지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공연 내내 영원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조명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라고, 영원은 가까스로 변명했다. 스테이지 바로 옆의 네온 조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Don't Break the Spell of a Life Spent Trying to Do Well. 푸르게 빛나던 글자가 나긋한 여가수의 허밍과 뒤섞였다. 어지러웠다. 밤 11시가 되자 펍은 더더욱 달궈졌다. 공연이 끝난 밴드 멤버들과 가수는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영원은 뒤돌아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주문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한낮의 커피 향이 묻어있던 손에 알코올이 옮겨 붙었다. 엉킨 냄새는 개수대에 흘려보내도 사라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 저 어땠어요? 칭찬을 바라는 아이의 얼굴을 들이민 우현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주었다. 영원 나름대로의 칭찬이었다. 우현은 그 와중에 영원의 젖은 손 덕분에 망가진 머리를 다시 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현의 머리카락을 따라 흐르던 물방울 몇 개가 바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영원은 젖은 우현의 머리카락도, 방울방울 무늬가 생긴 나무 표면도, 문득 낯설게만 느껴졌다. 피아노, 배운거야? 네. 난 몰랐는데. 아무도 몰랐을 걸요. 어차피 다들 관심도 없었고 말이에요. 우현은 다듬던 머리를 결국 포기하고 시원하게 뒤로 넘겼다. 앞머리로 덮여있던 이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영원은 얼룩하나 없이 깨끗한 우현의 이마를 보다가 탁, 하고 내려쳤다. 아프다며 끙끙대는 우현을 무시하고 영원은 물 묻은 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흘긋 남은 잔의 개수를 세어보니, 마감까지 잔이 모자를 것 같았다. 하얀 린넨 천을 탁탁 털고 물 자국을 닦아냈다. 뽀드득, 뽀드득, 시끄러운 펍 안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저 피아노 좋아해요. 노래도 좋아하고요, 사실 기타도 배우고 싶어요. 그랬구나. 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좋아하는 게 좋은 거지. 나도 그랬고 말이야. 용기 가득한 아이 같던 우현은 그래서 말인데요, 하고 다시 소심한 청년으로 돌아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얀 손끝은 아직도 영원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음, 저기, 사장님. 왜? 다시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열심히 흔들어야만 했다. 칵테일 만드는 사람이 하나뿐이라 쉴 수가 없었다. 영원은 적당히 흔들었다고 생각 될 때 쯤 잔에 옮겨 담았다. 파란색 칵테일이 잔 표면에서 넘실거렸다. 조금 양이 많았다. 걔도 아디오스에요? 아니. 블루 하와이. 흔하지. 만들어 줄까? 우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쳐 묶이지 못한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영원은 칵테일을 다른 잔에 조심스레 덜어냈다. 컵 표면을 타고 파란 칵테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원은 천으로 잔을 닦은 후 레몬 조각을 조심스레 꽂았다. 둥글둥글하게 말린 빨대만 꽂으면 끝이었다. 대충 흘린 칵테일을 닦아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는지, 나무 표면은 이제 고동색으로 변해있었다. 그거 제가 나갈 게요. 몇 번 테이블이에요? 7번. 갈 수 있겠어? 당연하죠. 저 이래보여도 일 년 전에는 서빙 했어요. 당당한 사람치고는 손끝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영원은 그래, 다녀와, 하고 개수대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 셰이커 안에 있던 파란 칵테일은 빠르게 씻겨 나갔다. 사월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나갔다, 라고 하기에는 그냥, 어느 순간 오지 않았다, 가 적당했다. 어차피 영원의 집에 사월이 놀러오는 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한 낮의 카페였다. 영원은 다이어리에 새로운 촬영 스케줄을 적고 있었고 사월은 그런 영원의 손을 그리고 있었다. 햇살은 아직도 따스했다. 가을의 햇살은 여름과는 달리 매끄러웠다. 영원은 햇빛을 찾아 사월을 끌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왜? 그냥. 시끄러운 카페 안에 있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월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맑은 얼굴은 햇빛 때문에 노랗게 빛났다.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맑은 손끝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물들어있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 한숨처럼 나온 말이었다. 다이어리를 덮고 손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림을 그리던 사월의 손이 멈추었다. 꼭 네 이름 같은 말이네. 사월이 작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래도 영원아, 곧 해는 지는 걸. 응? 해가 진다고. 지금은 저녁 시간이잖아. 여름인데 더 오래 있지 않을까? 글쎄. 시답잖은 얘기는 금방 끊겼다. 영원은 너무 바빴고, 사월은 그림에 빠져있었다. 중간 중간 저녁은 뭐 먹을까, 글쎄, 하는 너무 사소한 얘기가 몇 번 더 오갔다. 종종 이 때를 생각하면 영원은, 조금만 더 얼굴을 마주할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영원이 사월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마침내 결론내린 것은, 어느 날 벽에 홀로 서있는 이젤을 마주했을 때였다. 이젤 위에는 얇게 먼지가 앉아있었다. 그날 저녁 영원은 남은 짐을 한데 모아 장롱 안에 한 가득 쑤셔 넣었다. 커다란 이젤은 끝끝내 넣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영원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페 이름, 생각 해 봤는데요.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큼큼, 하고 몇 번 목소리를 다듬고 조심스레 꺼냈다. 영원은 카페의 간판을 올리던 날 사월을 떠올렸다. 피아노의 숲. 피아노의 숲 안에 영원은 사월의 그림 옆에 낡은 사진들을 걸어 널었다. 흑백 필름에 푹 빠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셔터만 누를 때의 사진들이었다.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낡은 차와 오래된 거리만 등장했다. 스튜디오 사진만 찍던 영원의 마지막 풍경 사진이었다. 엉망진창이라고만 생각했던 흑백사진은 카페와 펍 양쪽에 퍽이나 어울렸다. 우현은 비틀비틀하면서도 무사히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첫 공연이었던 주제에 손님들이랑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잔뜩 취한 공연 팀이 우현인지 우연인지 모를 이름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새로운 주문보다 원래 있던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일 시간이었다. 영원은 담배를 쥐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전부 져버린 벚꽃 나무 옆에 한참을 서 있다가 불을 붙였다. 노란 가로등 밑에서 나뭇잎이 반질반질 빛났다. 후, 숨을 뱉으니 몽글몽글 연기가 올라왔다. 연기는 뭉치기도 전에 허공에 흩어졌다. 지금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때도, 지금도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이미 오늘의 해는 졌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코앞으로 분홍색 꽃잎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발가락을 간질거릴 수 있을 만 한 거리에서 꽃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영원은 손끝으로 조심스레 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만 봤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햇빛의 냄새가 났다. 이윤경 (문과대·국문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사진부문 당선작-<물고기를 통한 죽음에 관한 고찰> 어렸을 때부터 난 물고기들을 좋아했다.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외형이나 우아한 움직임, 종에 따른 다양한 색감, 나와 달리 물 속에서 자유롭다는 점 등 물고기는 나에게 항상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죽음에 관한 생각을 물고기에게 까지 뻗쳤을 때 어항 속에서 한 순간도 감지 않는 그들의 눈에서 더없이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이미 알고있었음에도 한 발짝 더 멀어진 느낌. 그래서 난 그 이후로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도 한참동안 어항 속 물고기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항상 죽음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과 작업들을 통해 생선을 못 먹게 됐다던가 하는 변화는 나에게도 없고 남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응시하는 눈 1 응시하는 눈 2 응시하는 눈 3 응시하는 눈 4 응시하는 눈 5 응시하는 눈 6 수용1 수용2 수용3 수용4 흐름1 흐름2 김승균 (예디대·영화애니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건대신문 문화상 응모 안내 <2019 건대신문 문화상> 감성 가득한 가을, 건대의 숨은 문인을 위한 문화상이 열립니다❗️ 응모는 소설, 시, 사진 세 부문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명 작가와 시인 그리고 기자에게 평가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어마어마한 상금까지! 지금 바로 응모하세요!!! ✅응모 분야 및 상금: 단편소설(100만원), 시(80만원), 사진(60만원) ✅응모 형식: 소설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 시 1~3편 / 사진 최대 4개, 사진 설명 필수 ✅심사위원:소설 정한아 작가, 시 박성현 시인, 사진 홍인기 기자 ✅응모 마감:2019년 11월 10일 '총장상'에서 'KU미디어센터장상'으로 변경된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당선작은 12월에 발행될 건대신문 2학기 종강호를 통해 발표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건대신문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 건대신문 문화상 응모 안내 건대신문 문화상 건대신문에서 2016년 문화상 응모를 받습니다! 유명 작가와 시인 그리고 기자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에 상금까지~?! 지금 바로 응모하세요! ✑응모 내용 응모분야 및 상금 : 단편소설(100만 원)/ 시(80만 원)/ 사진(50만 원) 응모형식 : 소설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시 1~3편/ 사진 10장 이하(제목 또는 캡션 포함) 응모마감 : 2016년 11월 6일까지 당선작 발표 : 2016년 12월 5일 응모방식 : kkpress@hanmail.net으로 송부 메일제목 : 건대신문 문화상/ 응모분야/ 홍길동(단과대, 학과, 학년) 심사위원 -소설 김홍신 작가 -시 나희덕 시인 -사진 곽윤섭 기자 “당신을 듣다” “감성을 말하다” 건대신문 [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 눈물과 바람이 쓰는 시 일러스트 최은빈 기자 울음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눈물은 너무도 무거워 참을 수 없다는 것과 눈물의 무게는 마음의 무게와 같다는 것을. 눈물을 훔쳐내느라 애쓰고 나면 단단해진 마음은 한층 더 깊은 바다 속처럼 흔들림이 없다. 눈물의 색깔은 까맣고 짙은 회색들 사이 어디쯤일 것 같다. 형형색색의 마음들 다 잊게 해주고 세상의 모습위로 다 덧칠하듯 엉겨서 내면의 나와 오롯이 마주하게 만든다. 눈물의 온도는 엄마 손의 온도와 같다. 그 온도를 느끼고 있으면 더 눈물이 나는 그런 온도. 가을 갈대 끝에 걸린 바람은 내 마음도 어루만지다가 내 눈물을 훔쳐선 저 멀리로 날아간다. 아, 저기 저 낙엽에도 호수에도 모든 이의 슬픔을 갖고 가는 바람이 보인다. 바람이 들린다. 눈을 감으면 바람의 마음이 들린다. 많은 슬픔의 사연을 어깨에 짊어 지고선 떠나가는 바람이 들려온다. 그리고 내 곁을 스치며 속삭인다. 봄 바람 되어서 따스한 행복을 갖고 다시 온다고. 너무도 따뜻할 테니 겨울 한철 눈물쯤은 인내해볼 가치가 있다고. 이정도면 봄을 기다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느냐고. 그리고 그 따뜻함의 온도는 희망의 온도라는 것도 너는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정희영(문과대·미커14)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구원 나는 실직했다. 갑작스럽게 회사가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사원증을 반납하고도 한동안 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간신히 취직했다고 생각했더니 회사가 망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두 달 동안은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전전했다. 매일같이 새롭게 올라오는 공고를 보고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신의 경험 중 실패한 경험을 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쓰시오. 결과조차 보지 못한 지난 회사의 프로젝트를 적어 내려갔다. 이 실패 경험을 디딤돌 삼아 귀사에서……. 뒤에 이어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방음이 되지 않는 벽을 뚫고 익숙한 고함이 들렸다. 으아, 으어, 어떻게 해도 옮겨 적을 수 없는 소리는 항상 이 시간이 되면 나타났다. 몇 번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결국 노트북 덮개를 덮어버렸다. 날카로운 비명이 어지러운 머리를 파고들었다. 월급도 없이 약간의 저금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내 말에 엄마는 그거라도 있으니까 됐다,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란 말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네가 살 길은 네가 찾아야 해, 라는 말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출근할 필요가 없어지니 생활패턴은 엉망이 되었다. 한밤중에 이렇게 깨어 있는 일이 더 잦았다. 그 사이 고함은 조금 잦아들었다. 누군가 머리 위 창문 밖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목 뒤가 서늘해졌다. 비어있는 옆방이 유독 신경 쓰였다. 석 달 전 룸메이트가 나간 후로 쭉 비어있는 방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자꾸만 한기가 돌았다. 사실 룸메이트가 이사를 나갈 때, 나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SNS에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한 번 더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창밖에서는 아직도 누군가 서성거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와 방바닥을 훑었다. 몸을 둥글게 말았다. 삑, 하는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생각도 못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재이. 떠오르는 얼굴은 흐릿했다. 연락하지 않은지 5년이 다 되어갔고, 딱히 사이가 좋지도 않았다. 재이는 월세 조건과 집 위치만 물었다. 홍대 근처에 월 25면 딱 좋지. 반지하여도 좋고 좁아도 좋아.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올 수 있다는 태도였다. 재이는 내가 집을 보러 오라고 한 그 날 바로 이사를 들어왔다. 대충 정리는 해 두었지만 퀴퀴한 흙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재이는 냄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로 짐부터 내려놓았다. 캐리어 하나와 키보드 하나. 군데군데 벗겨진 캐리어 속 짐은 생각보다 잘 정리되어 있었다. 급하게 집을 찾던 사람의 짐 같아 보이진 않았다. SNS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 너 홍대 사는 줄도 몰랐는데. 나 여기 산 지 오래됐어. 재이를 알고 있을 때부터 살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6년이다. 햇수를 세고 나니 새삼스러웠다. 그땐 이 집도 금방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딱히 우리 둘 다 서로한테 관심 없었잖아. 너도 나 어디 살았는지 모르지? 재이는 낄낄 웃으며 옷가지를 하나둘 바닥에 늘어놓았다. 재이답게 하나같이 화려했다. 급한 대로 내가 쓰던 빨래 건조대를 옷장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좁은 방이어서 책상 하나와 책장, 빨래 건조대가 들어가니 금세 꽉 찼다. 미리 틀어 놓은 보일러 덕분인지 바닥은 따끈했다. 재이는 흥얼거리며 옷을 종류별로 분류해 걸어두었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재이와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취향도 비슷하고 입맛도 비슷했다. 가장 좋은 건 생활 패턴이 똑같다는 점이었다. 밤새도록 내가 자기소개서를 쓸 때, 재이는 영화를 보거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가끔 재이가 술을 과하게 마시거나 내 이불을 빼앗아 자는 걸 빼면 대부분 좋았다. 재이는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내 방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갔다. 내 이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나보다 길었다. 누워있다 그대로 잠드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재이는 나보다 더 빨리 내 불면증을 눈치 챘다. 너 근데, 이 정도면 불면증 아니야? 재이는 내 베개를 끌어안고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고, 나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재이가 무슨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침에 자는 데 너는 아니잖아. 너 자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랬나. 한 번 신경 쓰기 시작하니 눈에 쉽게 들어왔다. 왜 여태 몰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재이는 밤에 자지 못한 걸 채우기라도 하듯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잠에 빠졌다. 나는 그런 재이를 보다가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할 일을 마저 했다. 항상 그랬다. 너는 왜 매번 밤을 새우는데? 나는 내가 아니라 재이가 불면증이라고 생각했다. 재이는 기를 쓰고 잠을 깨려고 애썼다. 가끔 아침에 자고 있는 재이의 눈가를 보면 너무 비벼서 빨개져 있기도 했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거니 불면증이라고 할 순 없나, 중얼거렸지만 재이는 거기까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밤에는 자고 싶지 않아. 평소의 재이 같으면 몇 마디고 덧붙였겠지만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더 물어보진 않았다. 사람마다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몇 개쯤은 있을 테니 말이다. 타이핑하고 있던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자기소개서는 아직도 2500자나 남아있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재이는 깜짝 놀라 펄떡 뛰었다. 나에겐 익숙한 일이지만 재이에겐 아직 아니었다. 재이는 슬금슬금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밖에서는 익숙한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그대로 켜 놓고 노래까지 틀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재이는 입 모양으로만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방이 두 개인데 굳이 함께 밤을 새워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 차라리 너랑 나랑 여기서 같이 자고 네 방을 창고 방으로 쓸까. 저기 있는 내 옷장을 네 방으로 옮기면 되니까. 새벽에 자꾸만 내 쪽으로 몸을 붙이는 재이를 밀어내며 중얼거린 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기도 했다. 재이는 득달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르기 없다, 나중에 방 돌려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하고 몇 번이나 확인하려 들었다. 결국 우리는 내 방을 작업실 겸 생활공간으로, 재이의 방을 창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낡은 책상은 버리고 커다란 작업실용 테이블을 새로 들였다. 노트북 두 개를 올리고 남은 공간에는 건반을 올렸다. 그렇게만 있어도 방이 꽉 차 보였다. 누가 보면 사무실인 줄 알겠다,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잘 때는 책상을 밀고 남은 공간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자기 위해 누우면 재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발을 조금이라도 넓게 벌리면 왼쪽 다리엔 테이블 다리가, 오른쪽 다리엔 재이의 다리가 부딪혔다. 몸을 모로 돌리고 이불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살짝 밖으로 빠져나온 재이의 발끝에는 어슴푸레한 빛이 걸려 있었다. 창밖의 고함은 여전히 들려왔다.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 부스스한 재이의 머리카락은 자꾸만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한숨을 쉬며 테이프로 머리카락을 치우고 치웠지만, 끝이 나지 않았다. 재이의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동화 속 마법의 샘처럼 자꾸만 어디선가 퐁퐁 솟아났다. 머리카락 좀 치워봐. 에이, 많이 안 떨어져. 나 요즘은 그래도 머리 빠지지 말라고 묶고 다니잖아. 애교 부리지 말고, 빨리. 테이프를 꾹꾹 재이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재이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찍찍거리며 테이프를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결국 집 안 청소를 다 해버리겠다며 건반까지 집어넣고 청소기를 꺼내 들었다. 청소기를 피해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도망쳤다. 맞다. 그거 들었어? 청소기 소리에 파묻혀 재이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얘길 하는 것 같은데 입 모양만 보이고 소리가 흐릿했다. 삐이, 하는 이상한 소리가 섞였다. 뭐라는 지 안 들려! 목청껏 소리를 높이자 그때서야 재이는 청소기의 전원을 껐다. 순식간에 세상이 조용해졌다. 앞집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나 봐. 고작 5층짜리 빌라에서 떨어져 죽을 수 있는 것도 처음 알았어. 문득 새벽만 되면 들리던 고함이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이 낸 게 아닐까, 하는 동안 재이는 청소기를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해두었다. 책상과 의자까지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노트북과 건반을 연결하고 있었다. 있잖아. 아마 그 집은 아닐 걸. 엊그제 죽었다는데 나는 어제도 그 소리 들었거든.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은 거야? 소문 아니야. 어제 나 일하는 편의점으로 경찰 왔다 갔어. 재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낡은 스프링이 삐걱거리고 움직였다. 시소 타는 소리를 내면서 의자는 빙글빙글 돌았다. 재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연결하다 만 전선을 내팽겨치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우리야. 이사 갈까? 돈 있어? 당연히 없지. 근데 무슨 이사야. 이 집 계약 기간도 아직 일 년이나 남았어. 재이의 손끝에서 건반이 달각거렸다. 내 노트북만큼이나 낡았다는 재이의 전자 키보드는 한 번 누를 때마다 힘겹게 튀어 올랐다. 둥둥거리는 드럼 소리까지 확인한 뒤 헤드폰을 썼다. 나도 노트북 덮개를 들어 올렸다. 아무 말 없이 우리는 각자의 일에 매진했다. 재이가 건반을 두드리고 노트북 화면을 확인하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동안, 나는 자기소개서를 썼다가 지우길 반복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재이는 습관처럼 펜을 입에 문 채 우리 집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을 쳐다봤다. 근데 왜 하필 집에서 죽었을까. 글쎄. 집이 좋았나 보지. 우리 사는 건물은 너무 낮아서 떨어져도 못 죽는데. 부럽네. 쓸데없는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재이는 졸린 눈을 하고도 자지 않았다. 보다 못해 먼저 불을 꺼버렸다. 내일은 대타까지 있어서 12시엔 나가야 한다는 재이를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 노트북 불빛에 눈이 부셨다. 화면 밝기를 가장 어둡게 낮추고 스탠드를 켰다. 구직 사이트에 더 이상 새로운 공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올라와봤자 나와 관련 없는 것뿐이었다. 창밖에서 누군가 서성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옆을 흘끗 보니 재이는 자느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가로등 불빛이 반쯤 열린 창틈 사이로 어른거렸다. 재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위로하며 노트북 덮개를 닫았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끝으로 책상을 더듬어가며 이부자리를 찾았다.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야지.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너 혼자 가기 무서우면 같이 갈래? 됐어. 괜찮아. 출근한다는 재이를 따라 나왔다. 병원은 아기 엄마들이 가장 잘 안다며, 어디서 이름도 처음 듣는 이비인후과를 알려주었다. 애들이랑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가는 병원이 좋은 거야. 재이는 알 수 없는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유명한 병원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사람은 많았다. 간호사는 대기 시간이 길 수 있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왁자지껄한 병원 로비에서 화면에 떠 있는 내 이름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3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동네 아저씨처럼 생긴 의사는 피곤한지 자꾸만 숨을 몰아쉬었다. 아, 해보세요. 자동 응답기 같은 명령에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귀가 아픈데 왜 입을 여나요, 선생님, 하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 할 수 없었다. 별 이상은 없지만 큰 소리를 내지도 말고 듣지도 마세요.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진료는 단 2분 만에 끝나버렸다. 바로 앞에 있는 약국에서도 말없이 약 봉투만 내밀었다. 허무한 영화의 결말을 보는 기분이었다. 강우리, 라고 적힌 약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사이렌 같은 이명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발끝에 살짝 튀어나온 아스팔트가 걸렸다. 갑자기 떨어져 죽었다는 사람이 생각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일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고함은 여전했다. 심지어 오늘은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다. 서성이는 발소리도 작게 섞여 있었다. 재이는 의자에 앉아서 이불을 둘둘 감고 있었다. 같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세상이 무서워서 못하겠어. 저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 몇 번 했는데 별 소용없더라. 재이는 건반을 누르다가 깜빡한 게 있다며 가방을 뒤적였다.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네모난 상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안에는 기다란 폭죽같이 생긴 막대가 들어있었다. 이게 뭐야? 선물로 받아왔어. 너 스트레스성이라며. 이런 거 피워놓으면 좋다던데. 테이블 구석에 홀더를 세워놓고 향을 꽂았다. 라이터로 끝에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작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사상 앞에 꽂아두는 향처럼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재이는 향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향은 싸구려 마사지 숍에서 나는 향과 똑같았다. 재이는 이국적이라고 말했지만, 나에겐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항상 내 옆에서 자는 재이에게선 옅은 담배 냄새와 퀴퀴한 흙냄새, 바디샴푸의 라벤더 향이 났었다. 이제 거기엔 저 싸구려 향냄새가 섞일 것이다. 그게 무슨 냄새일까 상상했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너 다음다음주 금요일 밤에 약속 있어? 아니. 없지. 항상 없잖아. 나 매일 연습하던 그 공연 날짜 잡혔거든. 이 근처에서 해. 너도 올 거지? 약속이 잦은 재이와 달리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귀찮았다. 재이는 핸드폰 화면을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여긴데, 잠깐이라도 왔다가 가. 이거 봐봐. 멋있지 않아? 핀 조명이 화려한 무대에는 커다란 드럼 세트가 놓여 있었다. 이 드럼 옆에서 내가 연주한다니까. 기대되지, 하고 재이가 신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덕분에 내일부터 꼬박꼬박 연습실로 출근이라고 했다. 이제야 제이가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바닥을 뒹굴거나 헤드셋을 낀 채 건반을 두드리는 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룸메이트라고 해 놓고 아는 게 없어서 민망해졌다. 재이가 어쩌다 우리 집으로 왔는지도 모른다. 나도, 재이도, 서로에게 사정을 물어보진 않았다. 내가 재이에게 왜 집을 급하게 찾았는지 묻지 않는 이유와 재이가 내게 왜 출근을 하지 않는지 묻지 않는 이유는 똑같을 것이다. 티켓도 필요 없고 앞에서 전화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공연장 내부 분위기나,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공연이 끝나면 무얼 하고 놀지 신나서 떠드는 재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누군가 양화대교에서 자살 소동을 부렸다는 자막이 떠올랐다. 화면은 금방 겨울이 다가온다는 기상 예보로 바뀌었다. 슬슬 전기장판이라도 사야겠어, 그렇지? 재이가 속삭였다. 급하게 면접이 잡혔다. 면접 당일이 되니 시도 때도 없이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심장이 쿵쿵 뛰기 일쑤였다. 손바닥으로 심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꾹 눌렀다. 가라앉기는커녕 온몸으로 심장 박동이 번져나갔다. 면접을 엄청 급하게 보네. 재이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셔츠의 주름이 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재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겨진 주름은 완전히 펴지진 않았다. 재이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건반 대신 울퉁불퉁한 셔츠의 주름을 꾹꾹 눌렀다. 준비는 잘했냐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재이가 그렇게 물었으면 더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제출한 피피티를 띄워놓고 외워둔 대본을 중얼거렸다. 재이는 테이블 위에 물 한 잔을 따라 올려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어제 더 오랫동안 바깥이 시끄러웠다. 너무 시끄러워서 나와 재이가 틀어놓은 음악 사이로 들릴 정도였다. 우리가 볼륨을 키우면 고함도 더 커졌다. 재이는 아예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 누워서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게다가 창문 밖에서는 매일같이 서성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싶었지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이의 몸이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면접이 끝나면 주인아주머니께 전화라도 드려봐야 할 듯싶었다. 재이는 지난 한 달 동안 경찰서에 세 번이나 전화를 한 뒤 아예 포기해버렸다. 우리야. 면접 잘 보고와. 붙으면 이사 가자. 그래, 그래. 더 넓고 좋은 방으로 가면 되겠다. 면접 언제 끝나? 일찍 끝나는 데 좀 멀어서 집에 오면 두 시는 될 것 같아. 그럼 밤에나 볼 수 있겠다. 난 오늘 늦을 거야. 이따 가면서 문 꼭 잠그고 가. 면접 잘 보고, 하면서 재이는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때가 탄 이불솜이 재이의 발끝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왠지 이번엔 느낌이 좋았다. 첫 월급으로는 맛있는 것도 먹고, 이불도 새로 사야지, 생각하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 면접은 아주 완벽히 망했다. 면접관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면전에서 손을 흔들었다. 너무 긴장해서 말을 더듬고 슬라이드를 몇 번이고 앞뒤로 왔다 갔다 옮겼다. 준비해 간 대답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목 어귀의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을 샀다. 안주는 뭘 사야 하나, 하다가 아는 게 없어서 과자 몇 봉지만 집었다. 핸드폰 화면을 켰다가 끄길 반복해도 딱히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룸메이트가 있는 게 다행이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소주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누가 들을세라 비닐봉지째로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작지 않은 핸드백이 가득 찼다. 어깨가 무거웠다. 자꾸만 빠져나오려는 검은 봉지 끝을 계속해서 구겨 넣었다. 103호. 맞죠? 열쇠를 돌리는 데 옆집 문이 벌컥 열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피곤함에 찌든 얼굴은 밤에는 조용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죄송하다고 말할 틈도 없었다. 어제 우리가 틀었던 노랫소리가 많이 크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리는 바깥에서 들리는 고함에 귀를 막느라 바빴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안에서 과자 봉지가 눌리는 느낌이 선명했다. 대충 소주병을 냉장고 안에 쑤셔 넣고 재이가 개어둔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니 눈앞이 핑 돌았다. 이상한 소리가 귀에서 돌고 돌았다. 스트레스면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는 여전했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방은 아직도 조용했다. 재이는 오지 않았다. 다른 때였다면 늦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오늘따라 연락이 없는 재이가 맘에 걸렸다. 문자를 해 봤지만, 답장은 없었다. 남은 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켰다. 아나운서는 표정 없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누군가의 소식을 전했다. 옆집이 신경 쓰여 소리를 작게 줄였다. 텔레비전 소리가 작아지니 창문 밖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틈도 남기지 않고 이중창을 꼼꼼하게 닫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힐 것만 같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주병을 깠다. 술잔이 없어 머그잔 가득 술을 담았다. 재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새벽이 되자마자 득달같이 알 수 없는 고함과 비명, 경적이 뒤섞여 들렸다. 뉴스가 다 끝난 텔레비전에선 평화로운 지리산의 전경이 보였다. 결국 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재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기도 했고 화도 났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재이가 떨어져 죽었을까 봐 걱정했다. 재이가 어디 이상한 곳에 간 것도 아닌데 재이가 떨어져 죽어 버렸을까봐 무서웠다. 테이블 위 재이의 건반이 놓여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재이는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을 때 돌아왔다. 나갈 때는 분명히 건반을 들고 나갔을 게 분명한데 빈손이었다. 재이가 가지고 온 짐이라곤 캐리어 하나와 건반이 전부였다. 이제 집에는 캐리어 하나만 남았다. 재이에게선 찌든 담배 냄새가 났다. 평소에 나는 냄새완 달랐다. 어디선가 밤을 새우면서 옮겨온 게 분명한 냄새에 눈이 찌푸려졌다. 하나로 묶고 있던 머리를 풀자 냄새는 더 짙어졌다. 뭐야. 왜 연락은 안 받았어? 어제 바빴어. 내가 늦는다곤 얘기하지 않았어? 아예 안 들어온다곤 안 했잖아. 아. 뭐. 그래. 미안. 근데 나 씻고 바로 나가봐야 해. 어딘가 시큰둥하고 멍한 재이의 반응에 어젯밤 내내 재이를 걱정하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필요해서 함께 사는 사이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있던 정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재이는 내 방이 아니라 창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옆집은 시끄럽다는 듯 벽을 쿵쿵 두드렸다. 더 싸우고 싶지 않아 내 방 문도 닫아버렸다. 귓속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구석에 놓인 재이의 이불이 보였다. 재이는 오늘 뭘 덮고 자지,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창문 너머로 누군가 퍼석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싸운 이후로 재이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새로 올라오는 공고를 확인하고,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밥을 먹었다. 하루는 생각보다 짧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성격의 장점에 주변 사람을 잘 보살피며, 까지 적었을 때였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월세 날이 지났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6년 동안 한 번도 까먹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다음 주까지로 미룰 수 있었다. 어제까지 월세를 내야 했는데 잊은 것 같다고 재이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금방 오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밤에도 들어오니 그때 직접 말해도 된다. 재이에게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 아예 방 뺄 거면 미리 말해줘, 까지 적었다가 지웠다. 재이가 나가면 또 다른 룸메이트를 구하거나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이사를 할 때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봤다. 역시 이 집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내일모레면 재이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신나서 공연장의 분위기를 알려주던 얼굴이 떠올랐다. 테이블 위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재이의 건반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주변 사람을 잘 보살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까지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재이였다. 목소리가 웅얼거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재이는 핸드폰 건너편에서 몇 번이고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어이가 없어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재이 룸메이트 맞죠? 이번에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 주소를 알려주면 재이를 택시에 태워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숨을 쉬며 주소를 알려줬다. 결국 나가서 재이를 받아와야 했다. 재이는 완전히 정신을 놓고 택시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디서 구르다 온 건지 옷에는 군데군데 흙과 풀도 묻어 있었다. 택시기사님께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드린 후 택시비를 계산했다. 재이는 그동안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반쯤 죽어 있었다. 머리를 만져봤다. 이마가 뜨끈뜨끈했다. 재이는 밤새도록 열이 올랐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아침 즈음엔 간신히 눈을 뜨곤 하늘에 붕 떠오른 느낌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바닥 저 아래까지 처박혔다는 말에 턱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침 뉴스에서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출근길 교통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너 정말 괜찮겠어? 응. 괜찮을 거야.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빠질 순 없다고 했다. 재이는 급하게 사 온 약을 한입에 털어놓고 비틀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구김이 가 있는 겉옷을 몇 번 털어 건네주었다. 재이는 문 앞에서 나가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야. 내일 공연, 보러 올 거지? 오라며. 오늘은 못 들어오니까 내일 꼭 전화해야 해. 넌 가서 약이나 잘 챙겨 먹어. 술은 먹지 말고. 재이는 늦었다며 후다닥 뛰어나갔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내 노트북보다 오래되었다는 재이의 건반이 생각났다.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공고를 찾아 헤맸다. 이번에 올라온 회사의 자기소개서의 문항도 다른 회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경험 중 실패했던 경험과 성공했던 경험을 쓰고, 그로부터 어떤 점을 느꼈는지 쓰시오. 아무것도 느낀 건 없지만 그럴싸하게 꾸며냈다. 다 쓴 자기소개서를 읽다가 전부 지웠다. 자기소개서 속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오늘따라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어차피 마감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화면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재이가 함께 공연한다는 밴드의 노래라도 들어볼까 했다. 오랜만에 이어폰을 꼈다. 큰 소리를 듣지도, 내지도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무시했다. 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사람의 발소리도, 고함도 들리지 않았다.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 단차도 없는 작은 라이브 클럽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재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를 무대 옆으로 데리고 갔다. 공연 관계자에게 나를 소개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모르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재이를 보고 있자 멋쩍은 듯 웃었다. 몸은 괜찮고? 응. 지금은 좀 나아졌어. 여기 있으면 공연 끝나고 바로 올게. 사람들 사이에서 공연을 볼 자신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틀어놓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일부러 몸을 부딪치며 놀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왔다 갔다 하는 스태프들을 피해 스탠딩 테이블 근처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재이의 손만큼은 잘 보였다. 손아래의 피아노는 항상 보던 것과 다른 모양이었다. 곧 어제 듣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재이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몇 명의 사람이 재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려도 되냐는 물음에 재이는 당연히 된다고 대답했다. 꼭 아이돌 가수 같은 태도에 재이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진한 화장이 올려진 얼굴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재이의 공연 뒤에도 다른 밴드의 공연이 계속되었다. 재이는 우는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내 목에 팔을 두르고선 열심히 어깨를 흔들었다. 금방이라도 무대로 난입할 기세였다.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바로 옆에 있는 재이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귀를 가까이 대야만 했다. 우리 언제 나가? 재이는 듣지 못한 건지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꼭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노래의 음을 엉망으로 따라 불렀다. 음정도, 박자도 틀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앉아있는 우리에게 누군가 술잔을 건넸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재이와 나는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들이켰다. 재이는 아프니까 술은 먹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네 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라이브클럽 안에 빈 틈이 생길 때마다 온도가 조금씩 내려갔다. 재이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관계자들에게 걸어가 뭐라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지만 멍한 귀로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재이가 갑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한 대 쳤다. 그대로 뒤로 돌아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 말 없이 달리기만 했다. 나와 재이는 겉옷도 입지 않은 채로 거리를 달렸다. 바람이 차가웠다. 뜨거운 열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새벽이 다가오는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는 사람이 우리 옆을 스쳐갔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이 그 앞에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간신히 재이를 붙잡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 앉혔다. 재이의 몸이 휘청거렸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내가 듣지 못한 걸 수도 있다. 아직도 귀는 멍했다. 삐이, 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재이는 펑펑 울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꼬인 목소리로 다 괜찮아, 하면서 재이의 등을 두드렸다. 공연비 못 받는대. 내 건반은 고장 났고, 월세도 못 내.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장 난 장난감처럼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재이의 울음소리는 계속 커져만 갔다. 텅 빈 머리로 다 지워버린 자기소개서를 떠올렸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자꾸만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두드리던 재이의 등 위로 몸을 기댔다. 볼에 닿는 등이 따끈했다. 누군가 오래된 표어처럼 불신 지옥 예수 천국을 크게 외치고 지나갔다. 그대들에게는 구원이 필요할 지니. 재이는 벌떡 일어나 다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라지, 하고 외쳤다. 재이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나는 재이의 몸을 힘겹게 받치고 집으로 향했다. 골목길에서 메아리치는 재이의 울음소리는 꼭 비명소리 같기도 했고, 고함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그래, 그래, 다 괜찮아, 하면서 재이를 달랬다. 사실 답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재이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덤 같은 집에서도 나가야 하고, 먹고 살길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할지 모른다. 아침 해는 아무리 기다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이윤경(문과대·국문15)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 당선작> 순간에 대한 기억 폭죽 / 2019.11.03 부산 광안해수욕장 F8 30mm(환산45mm) ISO100 노출 2''s "어느덧 불꽃 축제가 마무리 될 무렵, 폭죽 연기가 폭죽의 빛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관객들도 프레임에 담아 축제의 느낌을 살려봤다." 파도 / 2019.11.02 부산 경포대 F6.3 350mm(환산525mm) ISO800 노출 1/3200s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며 휘몰아치고, 사방으로 물방울이 비산하는 그 모습이 마치 바위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 했다. 파도의 생동감을 짧은 셔터속도로 전달하고자 했다." 전구 / 2019.07.21 팔당댐 근처 카페 F5.6 300mm(환산450mm) ISO400 노출 1/160s "흐린 날이었다. 흐린 날 특유의 우중충한 파란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데, 그 와중에 독특한 모양의 전구는 카페 안에 마음 편한 따스함을 전해 주고 있었다." 구름과 CCTV / 2019.07.21 F4.5 70mm(환산 105mm) ISO400 노출 1/1600s "홀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CCTV가 우중충한 하늘과 더불어 묘한 정서를 전달해 준다. 구름이 저렇게나 만져질듯하게 뭉쳐있기 때문일까. CCTV가 더 외로워 보이는 것은." 차현진(문과대·사학14)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 웹툰 부문 심사평]공감하며 마음에 위로를 받을법한 전선욱 네이버웹툰 프리드로우 작가 이번 건대신문 문화상 웹툰 부문에서 심사를 맡게 되어 굉장히 기대되고 설레었다. 응모작의 제목은 ‘바다와 나비’이며 제목을 보자마자 고등학교 수업시간인가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봤던 왠지 낯설지 않은 김기림 시인의 시 제목이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를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해 흥미롭게 작품을 들여다봤다. ‘바다와 나비’는 꿈꿔오던 이상향과 좌절, 냉혹한 현실을 1930년대의 시대상황이나 정서를 바탕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본 웹툰은 현대 청년들의 시점에서 공감이 가게끔 깔끔하고 무난하게 재해석했다고 생각한다. 꿈을 향해 열심히 도전하지만 냉혹한 현실을 겪으며 좌절을 맛보게 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법한 이야기이다. 작품과 비슷한 상황에서 좌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마음의 위로를 받을법한 내용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적은 분량이다. (응모 기준에 분량 제한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15컷 정도 분량의 본 작품은 ‘바다와 나비’의 시 구절에 맞춰 컷이 진행되는데 마치 분량 제한을 신경 쓴 듯한, 최대한 짧은 분량 안에서 작품을 마무리하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웹툰에서 분량에 제한은 없다. 짧아도 되고 길어도 되며 재미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웹에서 연재되는 웹툰은 아무리 짧아도 3~40컷이다. (단편작도 마찬가지) 개인적으로는 본 작품의 분량이 적어도 두 배 정도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추가적으로 캐릭터들의 말풍선과 대화 내용이 있었다면 독자들도 이 캐릭터들에게 좀 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전선욱 네이버웹툰 프리드로우 작가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 웹툰 부문 당선작]바다와 나비 배유진(예디대·커디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8 Next / 68 GO / 68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