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칼럼]각 계에 유일한 박사가 필요하다 최의종 편집국장 우리는 간편한 곽 화장지 ‘크리넥스’를 자주 사용한다. 크리넥스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71년 ‘유한킴벌리’로부터이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우리나라 제약회사 ‘유한양행’과 미국의 제지회사 ‘킴벌리 클라크’가 4:6으로 합작 투자해서 만들어진 회사이다. 이 유한양행이 2017년 기준 3년 연속 매출 1조 원을 달성한 유일한 제약회사로 2016년에는 매출 1조 3209억 원을 기록해 국내 제약사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 유한양행의 설립자는 이제는 우리들에게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유일한 박사’다. 유일한 박사는 유년기 평양에서 재봉틀 장사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유기연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을 갔다. 미국으로 간 유 박사는 1909년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학한다. 유 박사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유학생활을 했다. 성인이 됐을 때는 항일집회에 참여,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후 1926년 귀국해 유 박사는 현재 종로2가에 유한양행을 설립하고 당시 한국인들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약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1942년에는 미국에서 한인국방경비대(맹호군)을 창설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썼다. 그런 그는 노년이 됐을 때 재산 중 자신의 손녀의 등록금을 제외한 407억 원을 기부했다. 무엇보다 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서 언급되는 이유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사람을 유한양행의 후임 사장으로 지명했다는 점이다. 회사를 자신의 가족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9월 13일 명성교회 예배에서 김삼환 원로 목사는 “교회세습은 일반적으로 기업세습과는 전혀 다르다”며 “교회는 세습이 아니라 십자가를 물려주는 것, 고난을 물려주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교회를 세습차원의 시각으로 보는 건 그들이 타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로목사는 마귀란 단어를 사용하며 세습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들을 비난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14일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 논평에서 “명성교회 세습은 탐욕 때문에 벌어졌다”며 김 원로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자진 사임을 촉구했다. 우리 사회에 다시 유일한 박사가 필요하다. 회사, 교회를 가문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이제 내세를 바라보고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가 기업처럼 세습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귀라고 폄하하고 타락했다고 비판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런 사회는 투명한 사회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경에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엎으며 비판했던 점을 생각하면, 기독교에서의 신은 기업처럼 돼버린 교회를 보고 어떨지 궁금해진다. 최의종 편집국장 chldmlwhd73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징비록(懲毖錄)』이 다시 생각나는 까닭? 신병주 사학과 교수 최근 한일관계가 강경한 대치 국면을 보이면서, 역사 속 한일관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1592년 4월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 조선이 크게 침략을 당한 사건이다. 7년간의 전쟁 끝에 침략군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임진왜란이 끼친 파장은 컸다.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을 다시는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의 분위기도 크게 대두되었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1598년 11월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하회마을로 돌아와 『징비록』을 남긴 것이 대표적이다. 『징비록』에는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쳐 전개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및 전황에 대한 반성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징비록』의 제목 '징비'는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문장인 "여기징 이비후환(予其懲 而毖後患)"을 인용한 것으로, "나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 라는 반성의 뜻을 담고 있다. 유성룡은 서문의 첫머리에서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 중에서 임진왜란 전의 일을 가끔 기록한 것은 그 전란의 발단을 규명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여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를 밝히려는 목적에서 책을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나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어지러운 시기에 나라의 중책을 맡아서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어 일으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임진왜란 때 영의정 등의 중책을 맡았으면서도 전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책을 썼음을 밝히고 있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전쟁에 대한 경과뿐만 아니라 전란 발생의 원인과 조정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전쟁의 전개 상황과 명군의 참전과 강화 회담의 뒷이야기, 백성들의 참상과 함께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에서 급박하게 펼쳐지는 외교 전략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유성룡은 평양을 떠나 의주로 피난하려는 선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해 놓고 백성들을 외면한 채, 또 골짜기 까지 들어간다면 다시는 한양을 수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유성룡이 선조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까지 기록이 되어 있다. 이외에 『징비록』에는 이순신, 신립, 원균, 이원익, 곽재우 등 전란 당시에 활약했던 주요 인물들의 공적과 인물평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임진왜란 당시 인물들의 활약상과 처신까지 확인할 수가 있다. 『징비록』은 그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개인의 저술로는 이례적으로, 국보 제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징비록』에서 제시했던 내부의 철저한 반성과 일본에 대한 냉철하고 정확한 인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도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신병주 사학과 교수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박다은 대학1부장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고객들의 갑질에 고통받는 직원들을 위해 일부 사업장은 이런 멘트를 써붙였다. 하지만 아랑곳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갓 성인이 된 알바생들은 크고 작은 갑질에 아주 자주,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이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일명 ‘진상’이라 불리는 고객들을 응대한 경험에 대한 한풀이가 빠지지 않는다. 경험담을 풀어놓다 보면 도무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진상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지기 일쑤다. 기본적인 예의를 모르는 고객부터, 획기적으로 신선한 갑질을 선사하는 고객까지. 고작 8,350원에 자존심이 팔려나간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혹자들은 아르바이트 중 갑질에 시달려 속앓이를 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회생활 제대로 해보면 그건 별거 아니다”, “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는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일리있어 보인다. 우리가 살아나갈 세상은 더 각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일리 있는 세상에 산다는 걸 직시하는 순간, 더 비참해진다. 현실의 냉정함을 너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뎠는데, 너무 힘든데, 나아갈 사회는 그게 아무것도 아닐 만큼 더 냉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사회를 바꿀 순 없을 것 같다. 바뀌지도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이제 막 시작하며 상처받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현실적인 조언도,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거창한 혁명이나 변화도 아니다. 쌀쌀맞은 고객 뒤, 힘내라든가, 고맙다든가 하는 말을 건네는 다른 고객의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륵 풀리고 위로받은 느낌까지 드는 경험을 꽤 많은 알바생들이 해봤을 것이다. 가끔 각박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하다고 느끼게까지 된다. 그러다 보니 알바생이 아닌 고객의 입장으로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도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내뱉으려고 노력하게 되곤 한다. 지친 나에게 희망을 준 누군가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딱 한 마디의 따뜻한 말이 모여, 이제 사회로 발돋움할 이들이 상처부터 받은 채로, 세상을 신뢰하지 않은 채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기업이나 고용주의 차원에서 알바생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 그게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일인 것 같다. 뭐 거창한 말이 따뜻한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맙다’는 말로도 충분하다. 물론 싫다면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그저 ‘따뜻한’ 한마디가 싫다면 적어도 ‘차가운’ 한마디를 던지진 말자. 너무 이상적인 말일 수 있지만 모두가 노력해주면 좋겠다. 자신이 지불하는 그 대단한 돈으로 절대 사람의 인격을 해칠 권리까지 살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모두가 아는 그날까지. 박다은 대학1부장 daeunn011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You don't listen, do you?” 문화부 공예은 기자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 함께 사이좋게 지내야지”라는 말을 하며 서로를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말은 아이들이 지키기에는 생각보다 어렵다. 어른들도 ‘다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는 매우 서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조커’는 어른들의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영화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사회 속에 방치돼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는 심리 상담을 하며 과거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가 더 좋았다는 말을 한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그에게는 더 감옥 같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주인공 ‘아서 플렉’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진 채 잔인하게 살인을 하는 ‘조커’가 돼버린다. 이때 영화를 보며 우리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이 영화 속 악당은 ‘조커’ 뿐일까? 영화에서는 이러한 ‘조커’를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서 플렉’처럼 가정 폭력, 신체적 장애, 심리적 장애, 빈곤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영화에 나오는 ‘조커’는 우리 사회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사회 속에서 우리는 ‘조커’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우리 또한 ‘조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은 차별을 낳는다. 누군가를 소외시키다보면 결국 그 화살은 우리 스스로를 향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결점이 있고 이를 다수와 소수의 경계로 나눌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다수와 소수로 구분하고 나아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나눠 결국 차별로 이어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다수와 정상의 범주 속에 머물기 위해 타인을 소수와 비정상으로 내몰다보면 모든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 ‘아서 플렉’처럼 차별과 소외라는 심판대 위에 서게 된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감옥 안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감옥 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바로 ‘다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듣던 말이고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쉽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되새겨도 지켜지지 않는 어려운 말이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은 심리 상담가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You don't listen, do you?" 이 대사를 통해 상담해주는 사람조차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다 함께’는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아서 플렉’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공예은 기자 yeeunkong@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학생대표’라는 자격을 가진 학생이라면 이준열 시사부장 국회에서 입법과 인준, 청문회 등이 진행된다면, 학생사회에서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은 ‘전학대회’를 들 수 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는 총학생회의 의결기구로, 정기적으로 개회하지 않는 학생총회를 제외하면 규모나 권한 등 모든 부분에서 가장 비중있는 학생 행사다. 필자는 다섯 번의 전학대회에 참관 했는데, 회의는 대개 낮에 개회돼 새벽까지 이어지며 심지어는 동이 틀 때까지 회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늦은 시간에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의결권을 행사하며 학생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학생 대표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건설적인 전학대회를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학대회는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 참석하는 대의원과 참석하지 않는 대의원 간의 마찰이 두드러진다. 중운위는 학생 최고 운영기구로, 중운위 구성원들은 모두 전학대회에 대의원으로 참석한다. 주로 학칙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부 개정안이 중운위의 권한 강화 및 전학대회의 권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운위 측은 전학대회가 자주 열리지 않는 만큼 중운위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효율성을 이유로 들지만, 일부 대의원들은 중운위의 ‘밀실 결정‘와 ‘날치기’를 우려한다. 실제로 중운위의 속기는 공개되며 대학언론이 출입 함에도 중운위는 일부 대의원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전학대회는 학생사회 내부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집중된 구조를 갖는다. 회의는 총학생회비 예결산안을 인준하고 회칙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후 논의 및 기타 안건에서 가서야 다른 문제를 논할 수 있는 구조다. 학사구조조정 등 사안이 엄중할 경우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의결을 거쳐 지쳐있는 대의원에게 연달아 다양한 학생사회의 외부적 문제들을 논의 하라는 것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전학대회에 적극적이지 않은 대의원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전학대회는 대의원의 집합이 어려워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한 번씩 정기개회한다. 심지어 하루 안에 많은 안건을 검토하기에 상당히 고되다. 그러나 전학대회 대의원으로 참석하는 것은 학생대표의 권리이며 의무다. 중대한 이유가 없음에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대표하는 단위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개회시간이 지났음에도 정족수 미달로 개회되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대의원들 사이로 운동을 하다가 마지못해 참석하는 듯한 대의원도 있다. 전학대회가 길고 따분해 학우들의 관심을 덜 받을 수 있지만, 이 회의의 힘은 학생사회를 바꿀 정도로 강하다. 대의원들도 그 중요성을 알고 밤을 새워가며 회의를 이어가지만,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부족할 정도로 다뤄야 할 사안은 엄중하다. 매번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더군다나 매년 대의원이 바뀌어 회의가 매끄럽지 못하게 흘러가는 부분도 있다.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점을 짚어내고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 학생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큰 전학대회가 더 제대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준열 기자 index545@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오늘 또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한 사회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몇 해 전 봤던 연극 중, 제목이 잊히지 않는 연극이 있다. 바로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채 살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과거 상처에 갇힌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살고 있었다. 제목처럼 주인공의 시간은 전쟁 당시의 ‘오늘’에 멈춰있어, 전쟁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 뿐,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 보였다.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주인공은 번번이 삶의 주도권을 과거 기억에 내어주어야만 했다. 4~5월을 보내는 동안,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 제목이 떠올랐다. 줄거리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오늘’이라는 그 제목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왜 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 특정 기억의 수인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상을 준 특정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사건의 기억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거나 망각되기 마련이지만 트라우마적 기억에서는 외상을 준 사건이 잊히지 않고 오히려 뚜렷해질 때가 많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상실감과 상흔을 남겨준 사건들이 많았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 삶에는 숱한 생명들이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질 정도로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이에 대한 애도는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애도가 충분하지 않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트라우마적 기억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애도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애도 담론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애도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고 개인이 감정 통제를 통해 슬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함으로써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는 상실의 애도를 개인이 의지와 정신력을 통해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환원하였다. 또한 상실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은 은폐된 채 상실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 또는 문제적 성향에서 찾아 낸다거나 불가항력적인 우연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탈사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상실이 개인화되거나 개별화되면, 표면적으로는 다를지라도 그 이면에서 동일한 원인의 상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특히, 억울한 죽음의 경우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로 나서 망자가 죽은 원인을 파악하고 망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애도가 이뤄질 수 있다. 사회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함으로써 ‘오늘 또 오늘’의 악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오늘을 지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내일’의 서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여성 단독 산행 자제’ 유감 시간이 날 때마다 오르는 집 근처 산에 갔더니 못 보던 현수막이 입구에 걸려 있다. ‘등산로 안전 예방이 최선입니다’ 라는 문구 아래, ‘이른 새벽 늦은 시간 산행자제’, ‘호루라기 후레쉬 휴대폰 소지’와 같은 구체적 행동 지침이 적혀 있는데,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눈에 띄었다. 빨간색으로 가운데에 배치한 것을 보면, 호평파출소와 생활안전협의회는 등산로 안전을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집에 와 남편에게 현수막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등산로에서 범죄-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가 종종 일어나니까, 예방 차원에서 건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건 나도 안다. 현수막을 건 이들, 즉 범죄 예방에 관심과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과 단체는 범죄가 발생하면 어쨌든 피해자가 손해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고, 피해자 중에는 여성이 다수이니, 그렇다면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결론을 내리고, 아마도 ‘선의’로 그 문구를 넣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해결책에 매우 익숙하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하여 여성은 밤늦게 외출을 하거나 유흥가를 출입해서는 안 된다. 가슴이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는 범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이 유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가 되므로 단정하고 조신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 그러한 지침들의 존재는 범죄 발생 시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느냐,” “왜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느냐” 등의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제 여성 혼자 동네 산을 오르다가 범죄 피해를 당한다면, “그러게 산에는 여자 혼자 왜 갔어?”라는 말을 듣겠다. 이런 지침들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피해자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 구조 안에 존재한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언급했듯, 법과 강간범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솔닛(Rebecca Solnit)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드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강간 사건이 일어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일몰 후에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공지했다. 그 ‘해결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도 있음을 포스터로 알렸다: “일몰 후 캠퍼스에서 모든 남성은 나갈 것.” 그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솔닛은 적고 있다. 현수막에 “남성 단독 산행 자제”라고 쓰여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남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인 것만큼이나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언제쯤 유별난 불평이 아닌 자명한 것이 될까?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한참 설명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산의 입구엔 맞춤법의 오기만 교정되어 있을 뿐, ‘여성 단독 산행 자제’는 그대로다. 최하영 교수(사과대· 융합인재학과) ha0choi@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악플’에 대한 방책이 시급하다 이지은 대학부장 지난 10월 14일 연예인 설리의 비보가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설리의 죽음은 조사 결과 자살로 밝혀졌고 자살의 원인은 그동안 받았던 악성 댓글(이하 악플)과 루머에 의한 고통으로 알려졌다. 설리는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각종 인신공격 및 명예훼손을 당했으며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한다. 설리의 연예계 활동이 활발해 보였던 탓일까, 그녀가 연예계 활동을 할 당시 대중은 그녀의 우울증 및 고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특히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자신의 악플에 대해 읽고 댓글 문화에 관해 얘기하는 ‘악플의 밤’이었기에 그녀의 소식은 더욱더 슬프고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악플로 인해 고통받고 자살한 연예인이 설리가 처음은 아니다. 고인 최진실의 경우도 악플 때문에 자살한 사례로 그때 당시 큰 사건이었다. 최진실은 2008년 10월 2일 40세라는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 연예인의 길을 마무리 지었다. 그녀는 이혼 후 가족 및 그녀의 자녀에 대한 악플에 시달려 우울증으로 고통받아 자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진실의 자녀인 최준희 양의 경우 아직도 악플이 달려 그녀에 이어 그녀의 자녀까지 상처받는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연예인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악플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도 처음부터 자살이란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악플에 대한 강경 대응 및 법적 처벌을 통해 악플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고통은 증가하여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연예인들의 대응만으로는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설리의 문제로 악성 댓글의 심각성 및 문제성이 대두되면서 악성 댓글에 관해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비판적인 여론 이후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악플러 처벌법을 강화하라’라는 게재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시간이 흘러 묻히게 됐고 악플러에 대한 처벌은 판단 기준이 모호해 대부분 벌금형으로 처리되고 있다. 악플러 처벌법에 이어 다시 화자 되는 것이 인터넷 실명제인데, 이 발안은 최진실 사건 당시도 거론되었다. 인터넷 실명제란 인터넷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후 인터넷에 댓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로 익명성으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는 과거부터 여러 번 논의되었음에도 항상 무산되었던 사안으로 부분 실명제로 대체됐던 적이 있다. 부분 실명제 경우 발의되었지만 발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표현의 자유라는 항목과 맞물려 금방 폐지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도 악플로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악플'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폐지됐던 부분 실명제부터 인터넷 실명제, 악플러 처벌법 기준 정리까지 그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야한다. 상황이 벌어진 후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하기엔 늦다. 하루빨리 악플에 대한 방책을 찾아 제도에 변화를 두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emily909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물에 물 타기’ 같은 요즘 정치권 필자의 기억에 2002년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해였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 연평해전 등 2016년 겨울만큼 우리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다. 2000년 연말 한겨레21에서 정치학자와 정치 부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출마가능성 거론 후보 중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압도적인 예측으로 한나라당의 이회창씨였다. 그리고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정치학자 3.8%, 정치부기자 1.7%만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랬던 노무현 후보는 결국 2002년 대선에서 48.9%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3% 차이로 이겼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의 기억 속에도 노 대통령의 당선은 대역전극의 한 장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큰 힘은 ‘노사모’였다. 정치인 최초 팬클럽인 ‘노사모’의 힘으로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노사모’가 활성화 할 수 있었던 배경은 WEB의 등장이 가장 컸다. 컴퓨터가 점차 상용화되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의 뜻을 모으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우리 정치판의 온라인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의 기대가 커지고 스마트폰이 상용화 되면서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국민 참여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런 ‘국민 참여 정치’ 를 악용하기 시작한 악랄한 정치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첫 SNS선거라고 할 만큼 SNS상에서 활발한 정치적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안보와 삶에 최전선에 있어야 할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이 새누리당 정권재창출을 위해 댓글을 조작했고, 국정원 직원은 셀프감금까지 하며 여론전을 진행했다. 결국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51.6%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우리나라 정치계는 또 다시 도덕적으로 후퇴했다. 얼마 전 ‘새누리 매크로’에 대한 보도가 연일 터졌다. 지난 2012년 국정원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現 자유한국당) 선거 캠프 외곽 조직인 ‘서강바른포럼’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들을 조직적으로 리트윗 한 것으로 밝혀졌다. 매크로 프로그램에 사용된 계정은 2,866개라고 한다.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서 30억 원을 들여 댓글 조작을 했다고 드루킹이 진술했다. 10년 가까이 우리 정치계의 민주성을 퇴보시킨 야권이 과연 ‘드루킹 사건’에 대해 앞장서서 비난을 할 권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들은 ‘물에 물 타기’같은 야권의 행태를 지켜보면 과거 위정자들의 가식에 한숨만 나온다. ‘드루킹 사건’에 대한 특검이 진행됐고 27일 최종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10년 가까이 묵혀있던 적폐 세력을 단죄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미래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최의종 편집국장 chldmlwhd73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당연함’의 상실 박다은 대학1부장 두 번째 대학인 건국대는 거의 입학과 동시에 필자에게 ‘문화 충격’을 주었다. 전에 다니던 대학과는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OT현장에도, 캠퍼스 도로에도, 건물에도, 강의실에도 당연히 있어야할 무언가가 없었다. 노란색 점자블럭, 휠체어용 엘리베이터, 속기사, 수어 통역사 등. 첫 대학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곳에는 없었다. 또 한 번의 더 큰 충격이 남아있었다. 작년 대동제가 다가오던 봄, 장애인권동아리 ‘가날지기’는 노천극장에 베리어프리존을 설치해달라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베리어프리존’이라는 단어를 이 때 처음 접했다. 분명 전 대학에서 측제 공연장 맨 앞에 장애 학우들을 위한 자리가 준비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단어까지 알지는 못했다. 굳이 그 단어가 필요치 않았던 것 같다. 그 때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베리어프리존은 노천극장 맨 ‘뒤’에 조그맣게 마련됐다. 필자의 시선에서 전혀 장애 학우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못한 듯 보였다. 전 총학생회는 작년, 장애학생간담회에 참여해 자신들이 베리어프리존을 설치했다며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솔직한 말로 어이가 없었다. 이에 비하면 올해의 베리어프리존은 분명 발전됐다. 그러나 배정된 예산이 없었다는 이유로 속기사와 수어 통역사는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직접 지적해주지 않으면 문제를 인지조차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비교는 참 안 좋은 것이라, 전 대학과 현 대학을 계속해서 비교하기 참 싫지만 비교를 해야겠다. 내가 ‘처음’ 새내기이던 그 때, 예비대학과 OT, 축제 등 모든 행사에서 속기 자막이 제공됐다. 모든 행사가 그랬다. 언제라도 그 공간을 찾을 그들의 귀가 되어주기 위해 모든 말들이 실시간 자막으로 띄워졌다. 수어통역사는 물론, 베리어프리존까지 완벽했다.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속기지원을 하는 도우미 학생들부터 전문 수어통역사 선생님들이 모든 수업을 함께 들어갔다. 시각장애 학우들을 위한 기기들도 완비되어 있었다. 강의실 맨 앞자리는 늘 비워져 있었다. 반면 건국대학교에는 ‘당연함’이 좀 부족했다. 작년 가날지기의 시위 이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베리어프리존이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견고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틀렸다. 작년 장애학생간담회에서 학교 본부도 일부 문제에 대해 비장애 학우들이 ‘역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간담회 초반, 장애 학우들에게만 공결증이 제공되고, 비장애 학우들에게는 공결증이 제공되기 힘들 것 같다는 사실이 공지됐다. 이는 문제를 장애 학우들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대학의 짧은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애학생도우미 활동을 하는 비장애 학우들까지도 이 문제에 도통 끼워주질 않는다. 올해 총학생회 청심은 장애학생간담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직접 장애 학우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 학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한 이해 없이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은 총학생회의 태도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우선 듣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직접’ 마련한 자리는 장애학생간담회보다 분명 더 나아간 형태이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요구하지 않아도 그냥, 당연하게 돼야하는 것이다. 부디 학교도, 총학생회도 이점을 유념하길 바란다. 박다은 대학1부장 daeunn011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68 Next / 68 GO / 68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