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칼럼]대학 축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가동민 편집국장 대학 축제는 대학 문화 중 하나다. 누군가는 대학 축제가 대학생의 로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 축제의 주인이 학생이 아니라 연예인이 된 것만 같다. 대학 생활의 낭만과 학우들의 소통을 위한 축제보다 연예인 콘서트장이 된 느낌이다. 사람들은 축제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보다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에 더 집중한다. 학교나 총학생회 또한 매년 축제 시즌만 되면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 라인업을 발표하며 홍보하기 바쁘다. 사람들은 라인업으로 그해 축제의 흥망을 판단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 라인업을 보고 찾아갈 학교를 결정한다. 연예인이 대학 축제에 등장한 시기는 1990년대부터다. 당시 대학 축제가 많은 학우들에게 외면받자 유명 연예인을 불러 관심을 끈 것이다. 연예인 초청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자 많은 대학에서 연예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후 대학 축제에 유명 연예인이 자리 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학 축제에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2012년 서강대학교 축제에 인디 밴드 20여 팀을 섭외하자 학우들이 주변 학교와 비교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연예인을 축제에 초청하는 것을 두고 찬반의견이 팽배하게 갈린다. 2017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응답자 중 92.3%가 대학 축제에 연예인을 초청해야 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연예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연예인이 있어서 그나마 축제가 유지될 수 있고 연예인이 없다면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어진다는 의견이다. 연예인에 집중된 축제에 부정적인 입장은 비용적인 부분과 안전상의 문제를 지적한다. 실제로 연예인 섭외 비용은 축제 전체 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연예인이 오면서 재학생뿐만 아니라 외부인까지 들어와 인파가 몰리게 된다. 그로 인해 아찔한 사고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부산의 모 대학교에서 여대생 2명이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건물 채광창 위로 올라갔다가 채광창이 부서지는 바람에 7m 아래 지하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축제에 연예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연예인이 축제의 흥행과 학우들의 즐거움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예인 공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연예인에 의지하게 되면 학우들은 대학 축제의 주인이 아닌 그저 들러리, 구경꾼이 될 뿐이다. 대학 축제인 만큼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예인에 의지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우리대학 축제에서 일감호(호수)에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처럼 학교 특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가동민 편집국장 syg10015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대리출석, 보는 사람이 없어도 박가은 부편집국장 무심코 저지른 사소한 행동이 종종 큰 대가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일이고 나만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걸린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 하다. 무단횡단으로 벌금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무단횡단의 벌금은 최소 2만 원에서 최대 3만 원이다. 무단횡단을 하다 걸려본 적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심리상 무단횡단으로 벌금을 물게 되면 일단 화부터 난다. 나만 하는 것이 아닌데, 평소엔 잘 안 하는데 등 별별 생각이 들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무단횡단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지만 그렇다고 무단횡단을 하는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의 양심에 맡길 문제인 것이다. 최근 우리 대학 에브리타임에 비슷한 일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A단과대학의 학생회장이 태도 및 출석점수가 40%를 차지하는 강의에서 지속적으로 대리출석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었다. 해당 수업을 수강하는 한 학우가 고발 글을 올리자 A단과대학 학생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다. ‘대출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냐’고 말할 수 있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출석점수 1점이라도 지속적으로 감점되면 성적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은 점수일지라도 결코 관대해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학교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대리출석은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 누구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대학의 출석시스템은 이캠퍼스를 이용한 ‘스마트 출석’으로 출석번호만 알고 있으면 강의실 밖에서도 출석이 가능하다. 대리출석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출튀(출석하고 튀기)’등의 편법으로 부정행위를 할 수 있지만 모든 부정행위를 감시하기는 힘들다. 에브리타임에서 있었던 대리출석 논란은 우리 대학 전자출석 제도의 허점부터 학생회장 개인의 잘잘못을 넘어 소속집단까지 비난이 향했다. 모범을 보여야 할 학생대표가 지속적으로 대리출석을 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과 사과가 늦었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석 부정행위에 대해 모든이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리출석으로 인해 성실히 출석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은 공정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권리가 있다. 단순히 출석을 위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떳떳하게 출석을 하고 실력에 따라 자신의 점수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박가은 부편집국장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당신이 내가 될 때 성자들이 있다. 제 몸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의사, 도망쳐 나오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과, 민주사회를 위해 스러진 이들이 있다. 무엇이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나. 부귀와 안락을 기꺼이 놓게 했는가. 사랑이다. 사랑을 정의해 본다. 설레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이나 보고싶다. 입을 맞추며 꼭 안아주고 싶다. 이 감정들은 시간에 무뎌져 옅어지고 바쁜 삶에 묻혀 종종 일어날 뿐이다. 이 마음들은 단지 사랑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본질은 공감이다. 제 배가 고플 때만 칭얼거릴 줄 알던 아이는 사랑을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한다. 그 사람이 웃는 모습에 벅차게 행복해 한다. 털어놓는 아픔에 가슴이 찔리며 시련이 차라리 눈을 돌려 자신에게 오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면 어느새 당신은 나다. 그 결은 다르더라도 가족, 친구, 동료, 모든 인간 관계는 이 사랑, 즉 공감에 뿌리를 둔다. 오감에만 통제받던 자아는 그렇게 확장되며 성숙한다. 그렇기에 관계를 상실 할 때, 어딘가가 한 뭉텅이 때어져 나가는 통증을 느낀다. 떨어져나간 부분이 감당 할 수 없이 거대하면 본 자아마저 지탱 할 수 없이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앞서 말한 성자들은 거대한 사랑에 빠진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큰 공감폭을 지녀 거대한 자아를 형성한 거인들은 모두를 보듬는다. 삼자가 봤을 땐, 완벽한 타인임에도 제 살을 깎아 내어 헌신한다. 미쳐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이 생기면 사지가 떨어진 사람처럼 괴로워한다. 비단 이렇게 눈에 띄는 희생을 하는 사람만 거인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이가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이들.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싹 싹 닦아내는 청소 노동자, 배고픈 대학생들을 위해 밥 반주걱 얹어주는 식당 아주머니, 친절하게 웃음 한 번 더 건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 모두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인이다. 반면 사랑이 결여된 치들이 있다. 단지 유희만을 위해 같은 학교 학생을 죽음까지 내몬 학교폭력 가해자들, 아들을 살해한 모친. 공감이 결여된 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은 차마 잔혹해 맘편히 들을 수 조차 없는 악행을 죄악감 없이 저지른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라도저 밖에 모르는 자아를 가진 소인들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한다. 특히 그 소인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가면 문제는 심해진다. 힘에는 다른 이들을 보듬을 책임이 따른다. 이 소인들은 좁은 자아에 그 보듬어야 할 이들을 품을 수 없기에 오히려 그 힘을 폭력으로 휘두른다. 지도자 선출에 있어 양심이 무엇보다 엄격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타인’을 허물어라. 더 공감해라. 그제야 힘들게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낮아보이는 턱이산처럼 힘든 장애인이 보이며 무거운 배를 안고 서 있는 임산부가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사랑 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김예신 기자 yesin979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당신을 듣다, 진실을 말하다! 가동민 대학부 스포츠팀 기자 「건대신문」은 1955년 7월 16일 캠퍼스의 뉴스를 보도함과 교내 민주적 여론을 창달하는 한편, 학술연구와 학생 활동의 정화, 그리고 교육 효과의 앙양과 학생지도의 사명을 띠고 「정대」라는 이름으로 창간됐다. 그 해 10월부터 월 2회 발행하기 시작했다. 1959년 종합대학 건국대학교로 승격 후 「건대신보」로 변경하면서 순간(旬刊)으로 발행했다. 1961년 2월 건대신보사를 건대신문사로 개칭하고 신문 제호도 건대신문으로 바꿔 이번 제1349호까지 64년간 이어지고 있다. 1983년부터는 신문의 부분적인 면에서 가로쓰기를 보였다. 1984년 제711호부터 전면적으로 신문 전체 가로쓰기 체제를 유지했다. 기존에는 충주 캠퍼스를 위해 1개의 지면을 배정했다. 1989년 충주 캠퍼스 신문이 건대학보로 독립 발행하면서 서울 캠퍼스만의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2003년 온라인으로 건대신문의 기사를 전달하기 위해 「건구기」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2008년 「popkon」으로 명칭을 바꾸고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popkon으로 기사 제보, 독자 응모, 학우 기고를 받고 있다. 현재는 페이스북 ‘건대신문’ 페이지를 통해 학내 구성원의 여론을 수렴하고 신속한 보도를 하고 있다. 건대신문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5·16 군사정권이 들어선 시기에는 일반 사회의 언론들과 함께 학보사들도 정부와 학교의 감시가 심했다. 그 속에서도 좋은 기사를 전하기 위해 힘썼다. 1979년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하고 학교는 잠시 동안 물을 닫았고 그 후 학보사도 검열을 걸쳐 발행됐다. 2011년에는 주간 교수의 편집권 침해로 1260호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사건 사고를 거쳐 건대신문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현재 건대신문은 △대학부 △디자인부 △문화부 △미디어부 △스포츠부 △시사부로 구성돼 ‘당신을 듣다, 진실을 말하다’라는 슬로건을 갖고 보다 학우들에게 필요한 기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부는 학내 이슈를 보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자인부는 만평을 그리고 전체적인 신문 편집을 점검한다. 문화부는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며 축제 소개, 여행, 인터뷰 등의 기사를 담당한다. 미디어부는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페이스북 ‘건대신문’ 페이지와 ‘popkon’을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부는 대학부의 취재를 도와주고 우리 대학 운동부의 성적을 보도한다. 시사부는 대학생의 시선으로 사회 문제를 지적하며 학우들의 관심을 도모한다. 앞으로 건대신문은 이전과 동일하게 학우들과 학내 구성원을 위해 진실을 공정하게 보도하도록 힘쓸 것이다. 가동민 대학부 스포츠팀 기자 syg10015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노약자석보다 교통약자석이 필요한 시대 박가은 홍보미디어부 기자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오후 6시경,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이 임산부석 앞에 서있었고 그 자리에는 한 여성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 여성은 피곤한지 바로 앞에 임산부가 서있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주위 사람들 역시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임산부를 보지 못했다. 오전7시, 오후6시는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통학하는 대학생들로 지하철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이다. 특히 퇴근길에는 하루 동안 일하느라 지쳐 지하철에서는 졸음을 이기기 힘들다. 지옥철을 타고 한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누적된 피로는 5일 동안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임산부석을 항상 비워두기는 어렵다. 지하철로 등하교하며 자리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겪다보니, 배려받지 못하는 임산부석과 노인들만 이용하는 노약자석, 두 좌석이 왜 따로 존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임산부석은 교통약자 중에서도 특별히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좌석이지만 임산부가 앉아있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다. 반대로, 노약자석에 임산부나 아이들이 앉아있는 경우도 드물다. 노약자석의 원래 이름은 노약자·장애인·임산부 보호석이지만 오랫동안 뿌리박힌 편견 때문에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힘들다. 2017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14.2%로 추산돼 17년 만에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그에 맞춰 시내버스에는 노란 커버가 씌워진 좌석이 많아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고령인구도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인구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늘어 다른 나라보다 인구변화가 빨리 진행됐다. 독일과 미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각각 40년, 73년 걸렸고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도 24년 걸렸다. 이대로 가다간 노약자석이 늘어난 교통약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양보와 배려 문화는 인구 비율이 변화하는 속도보다 더디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약자석을 우선석이라고 부른다. 몸이 불편하거나 영유아를 동반한 자, 말그대로 교통약자를 위한 좌석이다. 역 곳곳에는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교통약자석에 앉았을 때 자리를 쉽게 양보하기 위해서다.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고 큰소리로 통화해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다른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교통약자석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노약자석’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되려 기분 나쁜 눈초리를 받으며 역차별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이용하는 사람도 교통약자라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앉아야 한다. 양보는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다만, 배려가 필요한 자리에 앉았다면 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필 필요는 있다. 박가은 기자 qkrrkdms924@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너무 많이 버리는 세상 이준규 기자 영화관에서 일하다 보면 빈 좌석에 남겨진 쓰레기들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양손 가득 들어와 두 손 가볍게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단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까? 2016년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쓰레기 무단투기 적발은 해마다 늘어나 결국 10만건을 넘겨 10만9868건을 갱신했다. 이 수치도 서울시에 설치된 총 821대의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용 CCTV에 적발된 건수만 포함한다. 가볼로지(garbology)는 사회학의 한 분야로 쓰레기를 연구해 사회 실태를 파악하는 학문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쓰레기학’ 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쓰레기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양심이나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섰다.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게는 지역사회 크게는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문제가 됐다. 특히 대학가는 쓰레기 무단투기 지역중에서도 으뜸이다. 우리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흡연 장소 근처 담배꽁초, 후문 주변 쓰레기 무단투기와 같은 쓰레기 문제에 학우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증가하는 쓰레기 문제에 지자체들은 쓰레기통과 감시용 CCTV 추가 설치나 과태료 증가 등과 같은 대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쓰레기 무단투기는 줄어들기는커녕 앞서 말했듯이 치솟고 있는 중이다. 이런 물리적 쓰레기 무단투기 대책들의 효과가 미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리 물리적인 기반을 제공하거나 제재를 가해봐도 결국 쓰레기 문제는 우리의 인식 문제이기 때문이다. 쓰레기 문제는 결국 시민의식 문제이다. 우리가 가진 책임감의 이야기다. 내가 사용하고, 내가입고 먹은 것들을 내가 아닌 누군가 치워주겠지 라는 책임 전가가 쓰레기를 낳는다. 우리는 조별 과제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버리는 모습엔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나무라면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엔 한없이도 너그럽다. 내가 만들어낸 모든 행위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책임이고, 그러한 책임을 중요시하는 감정이 책임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면서 ‘환경미화원분이 치워주시니까’, ‘다른 사람들도 여기다 버렸으니까’와 같은 마음으로 책임감도 같이 버려버린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인지 쓰레기가 버리는 나인지 헷갈린다. 그렇다면 이제는 버려진 나의 책임감을 주울 시간이다. 이준규 기자 ljk223@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남자현 의사를 아시나요? ‘배화여고 6인’. 평소 다양한 플랫폼의 뉴스를 즐겨본다면, 하다못해 광복절 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면 한 번 쯤은 읽어봤을 타이틀이다. 일제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3·1운동 1주년을 맞아 독립을 외치다 옥에 갇혔던 그들이 독립운동가로서 진정으로 인정받은 해는 2018년, 무려 98년 만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물론 내가 역사에 무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다. 98년 간 조용히 역사를 빛낸 이 6인의 독립 운동가들은 모두 공교롭게도 여성이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을 기준으로 찾아낸 여성 독립 운동가는 약 1900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인전에서, TV프로그램에서, 일상 속에서 다루고 있는 독립운동가들 중에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몇 분이나 될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분이자 모두가 알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분은 아마 유관순 열사 한 분일 것이다. 심지어 교과서에 기재된 독립운동가 중 여성 독립 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딱 한 분 만이 기재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어나갈 학생들에게 이는 다소 편협한 지식 습득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자아낼 것이다. 이렇게까지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가 발굴되지 못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머물러있던 남성 중심적 역사관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무관심’이라는 단어에 사실 나 자신부터가 뒤통수가 따끔했다. 일전의 나를 돌아보자면 입시 성공을 위해서 한국사를 공부했지 순수하게 역사를 알아보자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영화 ‘암살’을 보고 전지현에 감탄하면서 그의 실존 인물 남자현 의사의 업적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1900여 명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존재에 대해 더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성별에 관계없이 발굴되지 못한 이들의 아픔을 알지도 못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했는데 나는 미래를 꿈꾸면서 그 발판을 잊고 있었다. 광복절이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 다시 역사에 대한 기사는 키워드가 입력되어야 찾을 수 있고 한국사에 가장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아마 수능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수험생들 일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역사‘광’들을 제외하고는. 이러다가 어쩌면 다시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해볼 시기를 놓치게 될 수 도 있을지 모른다. 얼굴을 보지도 못할 후손들을 위해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지켜내신 수많은 분들의 노고를 1년에 단 하루, 광복절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미래인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태도이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다”는 정부의 말과 같이, 그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발견은 우리나라의 빛나는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꽤나 오랫동안 묻혀있던 1900여명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용감한 투사에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이 글을 접한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여성 독립 운동가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는 건 어떨지. 장예빈 기자 dpqls18@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날개가 하나인 새 이준열 대학부 기자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냐, 난 너와 말다툼해서 친구를 잃을 생각은 없어” 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지금도 일상 속에서 말싸움이 싫다고 토론을 피하거나 실제로 종종 말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언제부터 토론은 말싸움으로까지 전락하게 됐을까. 우리는 남을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한 원조를 대한민국 안보의 심각한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보수를 진보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70년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진보를 보수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종북좌파, 수구꼴통으로 보며 ‘방해존재’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이 갈등은 상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채워질 수 있다. 둘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진보와 보수는 비로소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 있다. 이해가 없다면 각자의 주장을 펼치다가 의미 없는 말싸움으로 번질 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타자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도 않으면서 남들은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길 바라고 있다. 이런 의미 없는 소통을 지속하다가, 한계를 깨닫고 남에게 자신의 의견을 더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다. 이 주제에 대해 다룬다면, 페미니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젠더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이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주류가 됐고, 이외의 페미니스트는 포스트 페미니즘(안티 페미니즘)으로 남녀 구분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하게 된다. 래디컬 페미와 안티페미는 인권신장으로 그 논리가 기본적으로 같음에도, 우파남성주의자가 안티페미의 이름으로 활동하자 래디컬 페미와 안티페미의 오해가 깊어져 지금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단지 ‘방해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 갈등도 상호간 이해로 조금씩 메꿀 수 있지 않을까? 안티페미와 소수의 남성주의자를 구분하고, 래디컬페미와 안티페미가 오해를 풀어야 한다. 래디컬 페미가 그 근본이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며, 안티페미는 결코 남성우월주의이거나 페미니즘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건전한 토론을 진행한다면, 먼 얘기로만 들리는 두 세력의 화합은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견제세력이 없는 일당독재는 정지하고 부패하며 망한다. 날개가 하나인 새는 추락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날개가 두 개라도 서로가 합을 맞추지 않는다면 새는 사인 곡선을 그리며 나는 참사가 일어난다. 양립하는 두 날개로, 건전하게 토론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 우리나라와 사회가 새롭게 더 비상(飛上)하길 바란다. 이준열 기자 index545@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나의 진로 설계와 SW 송용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 지난 4월에 우리 학교가 SW중심대학으로 선정되는 경사가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서로 융합된 SW중심사회는 이미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이 보편화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는 모든 것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융합되는 세상으로, 바로 SW중심사회가 실현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수준을 넘어, 미래 사회를 이끌 핵심인재로 성장하는데 SW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격적인 SW교육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본교의 SW중심대학 선정은 매우 잘된 일이다. 그런데, SW교육에 대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ICT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현재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앞으로 점점 더 많이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피한다거나 어쩔 줄 몰라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며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문제에 당당히 맞서며 직접 해결하려고 도전해 볼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래 사회에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부딪치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SW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문제를 분석해 모델로 추상화하고, 큰 문제를 보다 작은 단위의 문제들로 나눠 각각의 해결 방안을 논리적인 절차로 찾은 후 전체 해결 방안으로 도출하며, 문제의 패턴을 찾아 그에 맞는 해결 방안과 매칭하도록 생각하는 힘도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컴퓨팅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로서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2016년부터 교과목으로 제공하고 있다. 컴퓨팅적 사고는 스크래치 SW로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SW를 활용하는 자신감을 갖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SW로 표현하며,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창의적인 발상법까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SW를 활용해 새로운 문제를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SW중심사회에서의 진로를 설계하고 SW로 표현해 관리하는 과정도 함께 배우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진로 목표를 세우고, 향후 SW 등 미래 기술들이 그 진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예상하며, 그에 따른 나의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그에 필요한 역량을 어떻게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에 대해 친구나 교수 등 주위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법도 함께 배워야 한다. 이런 진로 계획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수정되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진로로 바뀔수도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자. 송용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나는 왜 종강을 원하는가 최유리 문과대·미커18 지난 달 27일, 건국대학교는 2학기 개강을 맞았다. 다른 대학교에 비해 비교적 이른 개강이다. 흔히 말하는 ‘개강병’에 걸린 나는 개강 첫 주부터 종강을 찾고 있었다. 나는 왜 항상 개강만 하면 병에 걸리는 것일까? 복합적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강신청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와 다르게 대학은 수강신청을 통해 원하는 수업을 원하는 시간대에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는 빠른 손놀림과 최적의 PC환경, 그리고 운의 삼박자가 맞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수강신청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했으나 계획한 18학점 중 성공한 학점은 단 3학점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시간표는 한 학기의 학점, 스케줄과 더불어 결국 삶의 질과 직결된다. 한순간의 클릭이 반년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 대학에서도 나름의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 수강바구니를 통해 수강신청 전 원하는 과목이 제한인원을 초과하지 않을 경우 자동신청이 되도록 하고, 학년별 수강신청 일시를 달리하여 전체 기간에 잔여석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등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선착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기과목은 수강바구니는 물론, 전체 기간 때도 신청을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추가신청도 제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상 학년별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이후의 성공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를 악용하여 강의매매 행위까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상당수 학생들이 현 수강신청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왜 선착순이 고집될까? 과연 선착순이 최선의 방안인가? 사실 다른 방안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 예로 연세대학교의 마일리지 선택제를 들 수 있다. 지난 학기 수강학점의 4배를 마일리지로 하여 원하는 과목에 마일리지를 배팅하는 방법이다. 해당 과목의 작년 마일리지컷과 배팅 학생 수를 학교에서 제공하여 배팅 시 전략을 세우기 쉽다. 물론 이마저도 최대치를 배팅했을 때조차 실패하는 경우가 있기에, 불가피하게 선착순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마일리지 선택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강신청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도했으며 그것이 꽤나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우리학교뿐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수강신청 선착순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한학기가 걸린 문제인 만큼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고입 때부터 진로를 정해 마침내 꿈에 그리던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와서 진정으로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새내기의 환상일 뿐이었다. 어느 새부터 체념한 채 나의 꿈과 관련 없는 수업들로 학점을 채우며 개강병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빨리 개강병의 처방전이 나오기만을 기대하는 바이다. 최유리 (문과대·미커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68 Next / 68 GO / 68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