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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 교수(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한국의 세계유산에는 유형유산의 가치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온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토양이 무형의 가치로 남아있다. 오천년을 자랑하는 우리의 역사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조차 300년 이상을 넘긴 왕조는 거의 없다. 삼국지로 유명한 위ㆍ촉ㆍ오 세 나라도 길어보았자 40년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왕조의 기본이 500년 이상이다. 신라는 천년왕국이었고, 백제와 고구려도 700년 왕조였다. 고려와 조선은 모두 500년 이상을 이어왔던 왕조였다. 이것은 축적된 문화코드를 대를 이어 전승하고, 혁명적 파국보다는 지혜로움으로 갈등과 의견을 조정하였으며,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한 뛰어난 정신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2개 문화유산의 면면을 살펴보자.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죽은 자와 산자의 공간을 구분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자 무덤이었다. 현실적 어려움을 경외감으로 초월하며 죽음에 대한 신적인 권위를 지배층의 권위로 환원하여 제정일치 사회를 유지한 비밀이 고인돌에 깃들어 있다. 불교유산은 어떤가?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 역사지구, 백제역사지구의 미륵사와 정림사지, 남한산성의 승영사찰, 산사는 모두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삶과 죽음을 하나로 꿰어 불국토를 만들고자 하는 불국토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뿐이랴 국난 극복을 위해 불살생의 계율보다도 나라 지키는 일을 더 먼저 생각 했던 호국 정신까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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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양원리고인돌/출처 문화재청

한국의 전통마을인 양동과 하회마을, 창덕궁과 조선왕릉 등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대립과 종속이 아닌 균형과 조화로움에서 찾았던 풍수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유산이다. 그뿐 아니라 지행합일과 조상 숭배, 충효정신을 바탕으로 한 성리학은 조선왕조 500년의 정신적 비밀이 되었다. 나라가 외세의 침략에 신음할 때 억압받던 피지배층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할지 모른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 대한 원망보다는 오히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항쟁을 일으킨 배경에는 혈연으로 뭉쳤던 씨족마을과 함께 그 마을을 지켜왔던 어른들의 선비 정신이 있었다.

지배층의 무덤인 조선 왕릉에도 백성을 하늘로 여겼던 왕조의 애민정신이 녹아있다. 무덤의 부장품을 소략하게 하고 크지 않은 소박한 왕릉 형식을 보이는 것은 어려운 백성의 살림살이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의 발로였다. 또한 도성에서 100 리 안에 왕릉을 만든 이유는 자주 부모의 묘소를 찾아 참배해야 한다는 충효사상을 왕이 먼저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왕조가 세계에서도 드물게 518년을 유지하였던 비밀은 창덕궁과 종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덕궁 주합루와 어수문에는 임금과 백성과의 관계를 물과 고기에 비유하였던 왕조의 철학이 녹아있고, 종묘에서는 조상에 대한 경모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종묘제례는 사람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경천애민의 전통이 오늘까지 살아있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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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대왕릉/출처 문화재청

과연 후일 우리 후손들은 우리 시대의 어떤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할까 또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세계유산과 정신문화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물질문화를 우선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산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도덕과 윤리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한국인의 정신문화가 세계유산의 무형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정신문화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이 땅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명이 되어야 함도 분명한 일일 것이다.

 

최재헌 교수(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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