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75_12542_4035.jpg
최재헌 교수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고고학적 유적, 건축물이나 기념물을 대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 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닌 유산으로 정의한다.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한 문화권이나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이 아니라 인류에게 공통적인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독특하고 탁월한 가치를 말한다. 따라서 세계유산은 장소성과 지역성, 지리적 환경이 녹아있고 그 속에서 사는 인간과 주변 자연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인 셈이다.

한국의 세계유산은 2018년 7월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까지 모두 13개이다. 이 중에서 고인돌은 대륙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문화적으로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만나는 경계부에 해당하는 지리적 특성이 녹아있는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인돌은 고조선의 옛 강역인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부지방을 경계로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세계유산인 강화·화순·고창의 고인돌 유적은 북방의 유목문화와 남방의 농경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지대가 한반도에서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다. 한편, 바다와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무려 931번에 달하는 전쟁의 역사를 이 땅에 새겨 놓았다. 우리 선조들은 외침이 있으면 들을 비우고 산성에 들어가 겨울에 식량이 떨어진 적이 물러갈 때 기습공격을 하는 청야입보(淸野入保) 전술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 결과 예로부터 한국은 산성 국가로 부를 만큼 산성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고구려의 환도산성, 경주 명활산성, 공주 공산성, 부여 나성과 부소산성,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은 모두 세계유산이 된 성곽유산이다. 특히, 수원화성은 18세기 당시 정조의 꿈이 어린 신도시이면서 당시 발달한 화포술에 대비하여 쌓은 군사 축성기술의 결정판이었다. 더욱이 호국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까지 세계유산이 되었다. 현재에도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대한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10575_12543_4145.jpg
수원화성 팔달문/출처 수원시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서 높은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며 곳곳마다 분지 지형이 발달하였다. 분지는 주위가 오롯하게 산으로 둘러 싸인 평지에 하천에 흐르는 지형이다. 분지는 거주지로서는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배타적인 지역 특성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씨족마을이나 동족 취락은 소규모 분지에 자리 잡은 배타적 농경문화의 전통을 나타낸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경주의 양동마을은 양반 씨족 중심의 전통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례이다. 고대에는 이들 분지에 읍성 국가가 발달하였는데, 낙동강과 섬진강 일대에서 부족연맹체를 이룬 고대 가야왕국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가 현재 추진되고 있다. 고대 국가의 성쇠는 하천 유역의 배후지 면적에 달려있었기에 삼국시대 이래 한강 유역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만들었다. 잠정유산 목록에 들어있는 중부내륙산 성군은 유역 분지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시대 영토 확장과 군사적 안정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2014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나당 전쟁 당시 신라의 병참기지였던 주장성을 고쳐 쌓은 것으로서 경안천이 발원하는 넓은 성내에 청랑산이 둘러싼 포곡식 분지에 해당한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에 난공불락의 성으로서 이후에는 산성도시로서 조선왕조의 전란을 대비한 임시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리는 역사가 발생하는 무대이며, 역사는 지리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시간의 기록이다. 한국의 세계유산은 이땅에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증거이자 기록이기에, 여기에 배어있는 이 땅의 역사와 삶의 숨결이야말로 민족정기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우리가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인문학적 유산임이 분명하다.

 

최재헌 교수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167 KU 미디어 [보도]내년도 우리 대학 입시제도, 많은 변화 이뤄져 건대신문 19.04.07 784
12166 리뷰게시판 마라탕은 라화쿵부 마라샹궈는 매운향솥 [4] 사또밥 19.04.06 343
12165 리뷰게시판 [돼학생활] 그대들은 아는가? 후문 맛집?!! [7] file 돼학생활 19.04.01 583
12164 리뷰게시판 렌트 싸게하는 법 알려드려요! [1] z크르르릉 19.03.25 568
12163 리뷰게시판 오이도 조개구이집 추천합니다! z크르르릉 19.03.25 170
12162 리뷰게시판 건우건희 적절한 쇠왕부리 19.03.19 139
12161 리뷰게시판 카레당후기 [3] file 무심한 노란배딱새 19.03.18 192
12160 리뷰게시판 킬커버 후기 무심한 노란배딱새 19.03.18 78
12159 KU 미디어 [여행]겨울이 싫다면 따뜻한 ‘아랍에미리트’로 [4] 건대신문 19.03.16 1410
12158 KU 미디어 [사설]학생 장학제도 좀 더 신중한 운영 필요 [3] 건대신문 19.03.16 1133
12157 KU 미디어 [사설]숙제를 충실히 하는 삶 [4] 건대신문 19.03.16 1190
12156 KU 미디어 [칼럼]악기를 다룬다는 것 [2] 건대신문 19.03.16 1485
12155 KU 미디어 [칼럼]3·1혁명 100년과 ‘건국’의 뜻 [1] 건대신문 19.03.16 1142
12154 KU 미디어 [만평] [1] 건대신문 19.03.16 1244
12153 KU 미디어 [칼럼]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 건대신문 19.03.16 1154
12152 KU 미디어 [칼럼]처음엔 다 그래 건대신문 19.03.16 1239
12151 KU 미디어 [칼럼]“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건대신문 19.03.16 1946
12150 KU 미디어 [시사]조선인의 절규, 세계인의 시선 건대신문 19.03.16 922
12149 커뮤니티 [학술]최재헌 교수의 세계유산이야기 - ④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과 세계유산 [1] 건대신문 19.03.16 1058
12148 KU 미디어 [학술]통일인문학? 그래, 통일인문학! 건대신문 19.03.16 973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621 Next ›
/ 621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