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46 추천 수 0 댓글 1

 

10736_12591_4634.jpg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나는 지금 ‘생각하기/이해하기’라는 1학년 수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학사 커리큘럼이 개편되며 새로 생긴 과목인지라, 스타트를 끊는 입장에서 나름의 수업 목표를 설정해봤다. ‘디자인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인문 지식을 습득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 필드에 실제 출현한 디자인 작업의 생애를 정리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공포심을 해소한다.‘

말이야 쉽지! 조형 능력을 갈고닦기에도 시간이 늘 부족한 신입생이 잠시라도 언어로 사고하는 기회를 갖고, 글을 매개로 감각과 의견을 명징하게 전개하는 시도를 통해, 훗날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길 소박하게 소망 중이다.

얼마 전 디자인 다큐멘터리 3부작을 보여주고 감상문 세 편으로 중간고사를 대체했다. 오타나 비문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다큐멘터리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밝히라 종용하며 감상문을 받았다. 186편을 채점한 후 전체적인 결과를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흐름이 포착됐다. 경험이 많아 유리할 거라 생각했던 고학년보다 갓 들어온 신입생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이다.

원인은 바로 솔직함이었다. 1학년은 의식의 흐름을 적거나, 편지처럼 의견을 말하고, 좋고 싫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등 형식은 중구난방이었지만 내용 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감정, 경험, 생각, 교훈에 이르기까지 아주 명확하고 정직하게 내뱉는 반응은 무척 신선했다. 정형화된 감상문에서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고학년은 형식 면에서 정갈하고 유려했지만 생기가 없는 글이 자주 보였다. 신입생과 1년 차이인 18학번에서도. 심지어 다큐멘터리 자막을 모아 기술적으로 재배열한 경우까지 있었다.

어쩌면 나는 한국 고등교육의 큰 비밀을 엿본 것일까.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들어와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동화되는 데 1년이면 차고 넘친다는 사실 말이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학점을 체크하며, 어느새 ‘눈치’와 ‘노하우’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주관과 목소리는 얼마나 쉽고 허무하게 사그라드는가. 자유롭기로 학교 대표 격인 디자인학과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면, 과연 다른 단과대학은 어느 상황일지 감히 생각하기도 두렵다.  

사람들은 요즘 대학생이 너무도 자유분방하다 흉보지만, 어쩌면 진실로 자유로운 순간은 입학 이후 단 몇 개월일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샘솟는 곳에 미리 우물을 파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땅은 굳어 단단해지고 훗날 순수한 주관을 퍼올리기란 영영 힘들어진다. 지식과 지혜, 스킬과 노하우 모두 좋지만, 새내기에게 정말 필요한 건 거칠고 서툴지라도 비정형적 사고의 틀을 자유롭게 유지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유의 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독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347 리뷰게시판 세종대 학식 후기 secret 아라디으 19.07.06 0
12346 리뷰게시판 노래추천 검귀 19.07.03 66
12345 리뷰게시판 맘모스커피 [1] robins9506 19.06.29 172
12344 동아리 모집 대학생 연합 가치투자학회 '바이시그널'에서 6기를 모집합니다!! file 디니진 19.06.26 29
12343 리뷰게시판 아맞다 [1] 엠알도 19.06.20 102
12342 리뷰게시판 돈가스는 [4] 엠알도 19.06.20 163
12341 리뷰게시판 건대 중문 디저트집<스모모>..발굴했습니다 줄넘기마스터 19.06.20 305
12340 리뷰게시판 팔공티는 가지 않을 것 [4] 꾸꾸리꾸 19.06.19 374
12339 리뷰게시판 테이큰 [1] 꾸꾸리꾸 19.06.19 100
12338 리뷰게시판 훠궈 후기 검귀 19.06.19 76
12337 리뷰게시판 건대 삼겸싸롱 후기 [1] 검귀 19.06.19 120
12336 리뷰게시판 건대 도쿄라멘후기 검귀 19.06.19 129
12335 리뷰게시판 흑당밀크티 후기 검귀 19.06.19 142
12334 리뷰게시판 롱리브더킹 유익한 신천옹 19.06.18 116
12333 리뷰게시판 경영관 딸기치즈샌드위치 [9] 유익한 신천옹 19.06.18 328
12332 리뷰게시판 경영관 딸기치즈샌드위치 유익한 신천옹 19.06.18 149
12331 리뷰게시판 클리오 킬커버 유익한 신천옹 19.06.18 67
12330 리뷰게시판 friends 유익한 신천옹 19.06.18 84
12329 리뷰게시판 기생충 [1] 유익한 신천옹 19.06.18 158
12328 리뷰게시판 라화쿵푸 대 탕절대부 [1] 유익한 신천옹 19.06.18 143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621 Next ›
/ 621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