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KU ABS [수습국원] ABS방송국 63기 수습국원 홍보영상 2018.03.10 22:29 ABS 조회 수 : 4175 추천 수 : 0 댓글 수 : 7 PD 노주현 ENG 이준협 ANN 이황희 김현진 첨부 1 ㅋㄴㄴㅁ.PNG 57.5KB 추천 비추천 목록 신고 댓글7 카톡카톡카 18.06.29 22:47 신고 잘 봤어요 모팔모 18.10.05 19:39 신고 잘봤습니다 abs 화이팅! 긍밍 18.10.09 23:21 신고 잘 봤습니다 메타몽 18.11.28 17:04 신고 좋아유 만두먹고싶어요옹 19.04.23 05:17 신고 잘봤어요 만두먹고싶어요옹 19.05.29 16:45 신고 좋아요 생명19짱! 19.10.07 21:56 신고 좋네요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보도]그가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까닭은 그가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까닭은 글로컬 캠퍼스, 총학생회장 직위 두고 여섯 달째 내홍 지난 8월 22일 퇴거하기 직전까지 행정관 앞에 설치됐던 김진규 학우의 농성 텐트다. 지난 5일 서울캠퍼스 전체학생대표자회(전학대회)는, 6개월간 논란이 됐던 김진규(글로컬ㆍ경영경제4) 학우의 총학생회장 직위와 관련한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의결된 내용은 “김 학우의 총학생회장 당선 절차는 적법한 과정이다”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김 학우는 지난 3월 치러진 총학생회장 보궐선거에서 투표율 53.5% 중 찬성 78.1%로 당선됐으나, 7학기 등록자 정족수 포함 등의 이의제기로 선거가 무효처리 됐다. 그는 “선거 과정은 적법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5월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70주년 행사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총장과의 면담을 위해 행정관 앞에서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천막 농성을 하는 등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최근엔 ‘총학생회장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서를 청주지법 충주지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졸업예정자의 정족수 포함 대상 두고 ‘갑론을박’ 2015년 11월에 2016년도 총학생회 선거가 진행됐으나, 투표율 50%를 넘지 못해 무효처리 됐다. 이듬해 3월, 보궐선거를 김 학우가 포함된 <암행어사> 총학생회 후보 단의 단독선거로 치렀다. 53.5%의 투표율은 4학년 재학생을 졸업예정자로 보고, 정족수에 투표 참가자만 포함한 수치다. 하지만 당선 직후, “보궐선거는 3월에 치러졌기 때문에 4학년 재학생 중 7학기 등록자는 모두 유권자 수에 포함해야 한다”는 이의가 제기됐다. 7학기 등록자를 유권자로 포함하면, 투표율은 46.38%로 반수를 넘지 못해 선거가 무효처리 된다. 글로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위)는 선거세칙 39조 ‘이의제기 시 위원 재적 2/3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의 조항에 따라 회의를 개최했고, 중선위 위원 13명 중 찬성 11표로 선거를 무효처리 및 재투표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암행어사> 측은 “당선과정은 적법했다”며 재투표를 거부했다. 김학우는 4학년 재학생 모두를 졸업예정자로 두고 투표 인원에만 정족수를 포함하는 것이 선거 관례라는 입장이다. 글로컬 총학생회칙 16장 77조엔 ‘회칙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은 관례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다. 또한, 회칙은 졸업예정자에 대해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학생회선거는 2013년 12월부터 선거 시기와 관계없이 4학년 이상의 재학생을 졸업예정자로 두고 진행돼 왔다. 또한, 2016년도 단과대학 대표자 선거도 4학년 이상의 재학생은 투표인원만 유권자 수에 포함되는 등 관례로 충분히 인정할 만 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비대위? 총학생회? 갈등 잇따라 중선위는 4월 1일 재선거를 거부한 김학우에게 자격박탈을 통보하고, 해산했다. 중선위가 해체되고, 김 학우가 재투표를 거부하자 글로컬캠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 구성원들은 차준헌(글로컬ㆍ경영경제4) 국제비즈니스대학 학생회장을 중운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차 학우는 전학대회를 통해 비상대책위원회장을 인준받았다. 반면, 전학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4월 25일엔 김 학우가 임원진과 함께 ‘총학생회 발대식’을 열며 “비대위를 즉각 해체하라”고주장했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에 최 학우를 선정하며, 사실상 비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갈등이 지속하자 대학본부는 두 차례의 절충방안을 <비대위>와 <암행어사>에 제시했다. 글로컬 캠퍼스 학생복지처 김승호 주임은 “두 절충안 모두 암행어사 측에서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 학우는 “양측 대화 없는 일방적 합의엔 동의할 수 없다”며 거절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소송을 신청한 배경에 대해 “이미 대학본부는 비대위를 총학생회로 인정하고 있다”며 “원만한 합의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비대위와 대학본부, 그리고 김 학우 모두 “법원의 판단에 순응 할 것”이라고 합의한 상황이다. 서울캠퍼스 전학대회에서 김 학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로 한 만큼 소송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U 영자신문 [Campus Briefing] Present Condition of The PRIME Project Recently, there are seven questions about PRIME project in KU hompage’s Q&A (Question and Answer). Most of these questions are about the effect of PRIME project to their major. KU Student Union also wrote two questions which contain some details about PRIME project. Above these, you can easily search PRIME project in KU by just accessing the KU homepage. (There are many banners about PRIME project) Many labs which are for the College of Information & Communication are transferred to the New Engineering building, and Engineering building from New Millennium Hall. For the College of Animal Bioscience & Technology students, sunggwan which is dormitory made for mentioned students would be demolished. Therefore the students who want to move in to the dormitory should register by KU:L House. Additional department merging will not occur. There are two new scholarships which are related with PRIME project ; PRIME superb grade scholarship, and PRIME superb society of humanity scholarship. About 250 students will receive 650 million wons by these scholarships. 건대신문 [인터뷰] 학복위가 제시하는 '체계적인' 분실물 관리시스템 학복위가 제시하는 '체계적인' 분실물 관리시스템 "지하철 분실물센터에서 착안했다"…본부에 제안서도 전달해 지난 5일, 전학대회에서 학생복지위원회(이하 학복위)가 ‘통합 분실물 관리시스템’ 신설을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한 공간에 학내 모든 분실물을 보관해서 관리할 수 있는 ‘분실문 센터’와 온라인으로 학내 분실물 알림 게시판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분실물 처리에 대한 학사내부 규정 또는 안내사항이 존재하지 않아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 등도 담겨있었다. <건대신문>에서는 이 요구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박준영(생특대ㆍ생명과학4) 학복위장을 인터뷰했다. 박준영(생특대ㆍ생명과학4) 학생복지위원장 Q. 혹시 예전에도 이러한 제안을 대학본부에 제시한 적이 있나 올해 4월, 학생회 담당인 탁일호 주임에게 구체적인 기획안을 제시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진행과정 중에 무산되었다. 이 제안이 본부에서 제대로 다뤄지기 위해선 전학대회의 대표성이 필요한 것 같아 요구안을 제시하게 됐다. Q. 현재는 분실물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으며, 현재 시스템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분실물들은 습득 장소 주변의 단과대 관리실, 단과대 학생회실 또는 건국대 대나무숲(sns), 학복위실 등 여러 곳에서 개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분실물에 전화번호가 적혀있으면 연락해 전달해주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보관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분실물 관리시스템의 문제점은 물건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모를 경우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캠퍼스가 넓다보니 평소에 자주가는 곳만 가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실물 회수율을 조사해본 결과 상당히 낮았다, 하지만 분실물 관리 시스템이 통합되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회수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Q. 분실물 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다른 대학교가 있나 분실물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없었다. 우리는 대학교가 아니라 지하철역 분실물 센터에서이 아이디어를 착안해 고안했다. 왕십리역 유실물센터는 5호선, 8호선에서 발생한 분실물을 한 공간에 다 모아 보관하고, 보관된 분실물들을 홈페이지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회수율이 높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벤치마킹해서 이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Q. 분실물센터가 하나로 통합되면 분실물을 습득한 학우가 센터까지 전달하는데(캠퍼스가 넓어서) 불편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 문제에 관해서 학복위 사람들과 많은 논의를 하였다. 물론 거리가 멀더라도 습득한 분실물을 센터에 전달해주는 것이 맞지만 솔직히 귀찮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 내에 수거함 같은 것을 만들어서 거기다가 학우들이 분실물을 놓아두면 학복위 학생들이 수거해서 센터에 전달하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Q. 혹시 학교측에서 힘들다고 하면 학복위에서 ‘통합 분실물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는 힘든지? 학복위에서 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학우들로 구성되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라든지 방학 기간 때 분실물 관리 업무를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연중무휴 운영되려면 학교직원들이 관리하는 게 맞다. 물론 오프라인 분실물 센터 외에 온라인 분실물 게시판이 생기면 학복위에서 관리하는 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이용우 기자 a6331602@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U 영자신문 [Campus Briefing] Welcome to KU, Mr. New Engineering Building The New Engineering building was built in Konkuk University (KU) during summer vacation. To build this building, KU spend 40 billion won, and it occupies about 25000 square meters. It is located in southern land of the Engineering building. Taeyoung and isu construction company had built this building from November, 2014 to August, 2016. The New Engineering building is the largest building in KU except for the KU hospital. This building contains some facilities which have not only high energy effectiveness but eco-friendly green energy. To improve the environment of existing engineering lab, most labs are transferred to the New Engineering building. The new building was designated with priority given to the lab. Therefore, there are a lot of labs in this building. It contains 127 labs of education which are for the College of Information & Communications and the College of Engineering, 29 labs which are for all colleges, two large lecture rooms, fourteen seminar rooms, and many amenities. Min Sang-gi, the twentieth KU president said, “The New Engineering building will be the symbol of KU to develop to the global university.” KU 영자신문 [Campus Briefing] New News About English Lectures English lecture means professor should use English to his lecture’s attendees. Many exchange students register these lectures because of its convenience of language, and communication with professors. Korean students also take these lectures thanks to their needs or conditions for graduation. There are several changes about English lecture from 2016. Largely, two contents are important things. From 2016 first semester, the method of grade evaluation changed. Previous method gives A, A+ to students by maximum 40 percentage and the rest receive grades as professor likes. Now, however, like other normal lectures (the number of attendees should be over fifteen) English lectures also have to apply existing relative evaluation standard. From February, 2017 graduate would be able to graduate more easily than before. Previous standard requires three English lectures to graduate. Now, however, the standard requires only two English lectures. More details are written as following table. Before After Grade evaluation Relative evaluation 40% (A+, A : lower than 40%) Relative evaluation (A+, A : lower than 35% B+, B : lower than 70%) The number of requires for English lectures Major : three lectures Double Major : two lectures Minor : one lecture Major : two lectures Double Major : one lecture KU ABS [건국 생활백서 ①] 대학 생활에 대해 궁금한게 많으실 새내기분들!! 그 궁금증 건국생활백서에서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건국 생활백서] PD 이서연 ENG 정희승 ANN 최지선 건대신문 [인터뷰] #1 현 시대에 필요한 민주화의 목소리, 건대항쟁이 중요한 이유 #1 현 시대에 필요한 민주화의 목소리, 건대항쟁이 중요한 이유 올해는 ‘10.28 건대항쟁’이 일어난지 30년 째 되는 해이다. <건대신문>은 10.28 건대항쟁의 의의를 재조명하고 그 이념을 계승하고자 당시 항쟁을 주도했던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연재 할 예정이다. 이번호에서는 그 시작으로 이상근 기념사업회 공동준비 위원장과 이중기 청년건대 동문회장을 만났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당시 10.28 건대항쟁 구속자 변호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건대항쟁 30주년 학술 심포지엄에 보낸 축사내용이다. 박 시장의 말처럼 현대 민주주의는 6월 민주항쟁을 통해 형식적인 틀은 갖추어졌으나,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직 ‘진행 중’ 이다. 우리대학 민주동문회 ‘청년건대’와 ‘애학투련 건대항쟁 30주년 준비위원회’는 학생운동의 의의를 재조명하고, 아직까지 유효한 ‘애학투련’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들은 ‘애학투련 건대항쟁 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발족하며 현 시대에 필요한 민주화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건대항쟁의 정신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건대신문>이 들어봤다. 이중기(물리ㆍ87학 번) 청년건대 동문회장과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이상근(연세대ㆍ85학번) 공동준비 위원장에게 건대항쟁을 재조명하는 일의 의의와 향후 활동계획을 물었다. Q. ‘기념사업회’를 발족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10.28 건대항쟁은 군부독재에 항거한 학생운동입니다.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형식적 민주화’도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때문에 민주화 요구운동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6월 민주항쟁을 통해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의 틀이 갖춰졌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형식적 구조만으로 보장된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총선으로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이 확실시됐지만, 그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들은 ‘탄압국면’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저희가 학생일 때, 군부독재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간 정부는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 수많은 사건에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좌경용공’이라 몰아세웠던 것처럼, 지금 정부도 ‘종북 프레임’으로 이름만 바꿔 여전히 많은 얘기들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는 잘못된 정부에게 문제제기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때문에 현 상황에서 과거 건대항쟁의 의미는 더욱 소중합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이 나마 이뤄진 결정적인 계기엔 학생운동이 있었습니다. 건대항쟁은 당시 학생운동들의 상징이자 중심이 됐고, 이때 주장했던 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요구는 지금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목소리입니다. 저희는 건대항쟁의 이념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80년대에 군부독재에 항거한 학생들의 주장들이, 폭발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내세운 학생들의 요구들이, 현시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현 사회에 필요한 문제제기의 구심점을 위해 발족했습니다. 이 사업회를 중심으로 여러 활동을 이어나가고, 개별적인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닌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Q.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건대항쟁 30년을 기념하며 발족한 기념사업회의 활동 목적은 명확합니다. 16개 대학 민주동문회와 4개의 추모사업회 소속 150여명이 기념사업회란 이름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 실현’을 위해 모였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를 통해 건국대학교 동문뿐만 아니라 건대항쟁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을 형성하고, 건대항쟁의 이념을 계승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 네트워크 구축 △세월호 연대 활동 △정기적 심포지엄 △당시 구속인들의 재심청구 △건대항쟁 형상화 사업 △건대항쟁 관련 도서출판 △대학의 정상화를 위한 활동 등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했습니다. 모든 활동이 중요하고,의미가 있겠지만 <민주주의 네트워크 구축>과 <대학 정상화>의 사업들은 더욱 중요합니다. 민주주의 네트워크를 구축 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에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단체들과 연합해 조금 더 공식적이고, 조직적인 요구를 사회에 전달하자는 의미입니다. 내년에 예정돼있는 6월 민주항쟁 기념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체와 연대하는 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소통의 창구를 다방면으로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현재 취업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학원처럼 변해버린 대학을 다시 지식의 상아탑으로 정상화시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대학 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Q. 재심청구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당시 정부는 건대항쟁에 참여한 1,289명을 구속하였으며, 이 가운데 398명을 기소했습니다. 이중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살이를 한 인원은 100여명이 됩니다. 민주화의 요구가 ‘유죄’라며 좌경용공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민주화가 실현 됐다’고 말하는 현 사회에서 말이죠. 물론, 노태우의 6.29선언 후 건대항쟁으로 징역살이를 하고 있던 대부분이 사면됐습니다. 하지만 사면의 의미는 유죄이나, 석방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몇몇 인원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조금의 명예가 회복됐고, 구속일수 등에 관한 소액의 재정적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별적 차원의 보상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건대항쟁에 대한 성격을 조작해 ‘좌경용공’ 누명을 씌운 것을 인정하며 무죄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개별적 차원의 보상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건대항쟁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일이죠. 실제로, 건대항쟁이후 집단적 폭력에 의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생겨 자살까지 한 인원이 있습니다. 건대항쟁의 성격을 정부가 조작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은 이런 인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일입니다.이번 학술심포지엄은 학술적으로 건대항쟁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부분이 최선을 다해도, 전체적인 변화는 힘들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회 구조에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경제적ㆍ사회적 선이 있습니다. 이는 현 대학생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사회구조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하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리 노력해 스펙을 쌓아도 취직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이는‘경제민주화’, ‘노동민주화’ 등의 요구로 사회전반의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대 학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 사자들이 직접 나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목소리로 사회구조가 변화하려면 부분의 노력으론 어렵습니다. 전체가 나서 변화를 요구해야합니다. 청년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대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내줬으면 합니다. *레임덕 : 대통령의 지도력이 저하되는 현상으로, 임기 말이나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주로 나타난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인터뷰] #2 건대항쟁, 66시간 50분의 외침 #2 건대항쟁, 66시간 50분의 외침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행운일지도 모르겠어요” 10.28 건대항쟁에 참여한 오도엽(경제ㆍ86)시인은 시<기억하지 않아도 기념하지 않아도-스물의 청년이 된 시월이십팔일 생 건대항쟁에게>에서 최동근(경제ㆍ84)동문을 기억하며 “검게 불타 화상을 입은”이라 적었다. 경찰의 강경 시위 진압에 맞서 사회과학관(현, 경영대)에서 끝까지 투쟁하며 66시간 50분을 버틴 최 동문은 인터뷰 중 당시를 기억하며 “불의에 맞서 싸웠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66시간 50분 동안 우리가 걷고 있는 캠퍼스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더위에 드러난 최 동문의 팔과 다리엔 아직도 선명한 10.28 건대항쟁의 외침이 새겨있다. 전경의 진압봉에 맞아 기억을 잃을 정도로 격렬히 불의에 맞서야 했던 86년 가을, 그 뜨거운 현장의 기억을 <건대신문>이 최 동문과 주승혜(영문ㆍ85)동문에게 물었다. 주승혜(영문ㆍ85)동문(좌)과 최동근(경제ㆍ84)동문(우) Q. 1986년 10.28일부터 66시간 50분 동안 건국대학교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 동문(이하 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건대항쟁은 ‘준비된 농성’이 아니었단 사실입니다. 애학투련의 당초 목적은 결성식을 통해 사회에 학생들의 통일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었고, 농성은 전경의 강경진압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물론, 결성식을 전경으로부터 사수하기 위한 준비는 있었습니다. 애학투련이 연세대에서 열린다고 거짓정보를 흘리거나, 혹여 있을 전경과의 충돌에 방어선을 미리 구축하거나, 건대 본관(현, 행정관) 앞에서 결성식이 무산됐을 경우 학생회관과 공대 사이에서 결성식을 진행하는 방안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성을 위한 준비는 전혀 없었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나름의 준비 끝에 결성식은 시작됐습니다. 오전에 학교별 참가인원을 조사했는데, 제 기억으론 3000여 명 가량 모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경들이 들어 닥치기 시작한 건 결성식이 끝나갈 무렵이었죠. 특히 건국대 부속 고등학교방향에서 물밀 듯이 들어왔습니다. 순식간에 본관에 있던 학생들은 포위됐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곤 근처 건물이었습니다. 본관은 물론, 사회과학관, 이과대(현, 법과대), 학생회관, 도서관 등 전경의 포위망 안에서 건물로 숨었습니다. 우리대학 학생인 경우, 학생증을 보여주고 포위망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타대학생인 경우는 그게 불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전경에게 잡히면 바로 구타와 연행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사회과학관으로 몸을 피했는데, 처음만 하더라도 하루정도 뒤에 전경이 빠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전경의 포위로 인해 농성이 진행된다면 하루 뒤에 상황이 해제 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예상한 것이죠. 하지만 9시 뉴스에 애학투련의 대자보나 홍보물을 왜곡 보도하며 저희를 ‘좌경용공 세력’으로 모는 것을 보곤, 심상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저희는 농성으로 이어질 줄 몰랐기에 먹을 음식도 몸을 데울 땔감도 없어 농성이 길어진다면 절망적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경의 포위망은 3박 4일간 유지됐습니다. 방송을 통해 저희를 좌경용공 세력으로 몰은 이튿날부턴 투항하라는 방송과 함께 헬기로는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이 전단지를 들고 나오면, 선처해주겠다는 내용이었지요. 하지만, 구속이 됐던 수많은 학생들은 더욱 뭉쳤습니다. 심지어 본관에선 결성식에 사용한 앰프를 통해 “투항하라”는 방송에 맞서는 방송을 하고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란 팜플렛을 걸기도 하며 맞섰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불의에 맞섰습니다. 사회과학관에선 주인아주머니가 없는 매점에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가져갑니다”란 쪽지 함께 돈을 모아 올려놓고, 음식을 가져다 먹기도 하면서 말이죠. 도서관에선 공부를 하러 온 학우의 도시락을 같이 나눠먹기도 했습니다. 또,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학생들은 서적이나 주요 기물들엔 손대지 않았습니다. 전경이 학교 벤치를 부셔서 땔감으로 사용한 모습과는 대조적이죠. Q. 농성은 어떻게 마무리 됐나요? 최: 이렇게 소모전이 계속되자 4일째 되는 날 전경과 *백골단의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과학관은 마지막에 진압됐는데, 대부분 백골단이 투입돼 진압의 정도가 심했습니다. 사회과학관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옥상이 아닌 5층 계단에서 전경과 맞서자는 계획을 세웠죠. 하지만 진압 중 화재가 발생했고 모두 옥상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마지막까지 계단에서 물품을 옮기고 있었는데, 순간 불길이 솟으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화상을 입게 됐죠. 그렇게 정신을 잃었지만, 딱 하나 기억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워 있는 저를 학우들이 옮기는 중, 백골단이 휘두른 진압봉에 맞아 계단에 구르며 잠시 정신이 들었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살아있는 게 다행이죠. 그렇게 농성은 전경의 폭력에 마무리 됐습니다. 최 동문은 당시 백골단의 진압과정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사진ㆍ정두용 기자 주 동문(이하 주): 저는 전경의 포위 당시 학생회관으로 숨었는데, 학생회관은 결성식이 있던 본관과 거리가 멀어 비교적 적은 3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4일째 진압과정에선 남학우들의 보호를 받아 다른 학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맞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면 남학우들이 몸으로 막아주었죠. 하지만, 당시 전경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모습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었죠. 너무 무서웠고, 두려워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건대항쟁 진압의 마지막입니다. Q. 현 대학생들은 건대항쟁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요? 주: 우선 제가 기억하는 건대항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정부는 애학투련을 일순간 ‘빨갱이 집회’로 만들어 버렸고, 우리의 명예가 실추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개인의 명예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건대항쟁의 4일의 기억은 어쩌면 제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그렇게 하나 되어 마음을 모을 수 있을까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고, 그로인해 제 인생은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애학투련의 외침은 30년 전 끝났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단순히 건대항쟁을 과거의 기억으로 남겨두지 말고, 현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울로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백골단 : 1980∼1990년대 학내 시위자들과 시위 군중들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경찰부대를 일컫는 별칭으로,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이 특채되어 구성됐다. ※이 기사는 건대항쟁 30주년 특집 연재기사입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인터뷰]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3 김미희 전 국회의원, “건대 항쟁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김미희(서울대ㆍ84학번) 전 국회의원은 1986년 당시 약학대 학생회장 신분으로 건대 항쟁 참여했다. 건대 항쟁을 전환점으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정치계에 입문했다는 그녀는 19대 국회의원까지 당선됐지만,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며 의원직이 박탈됐다. 그렇게 그녀의 ‘진보 정치’의 길은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 전 의원의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며 웃음 짓는 그녀에게 ‘건대 항쟁’은 어떤 자양분이 되었을까? 김미희 전 국회의원 (사진ㆍ정두용 기자) Q. 건대 항쟁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저는 당시 서울대 약학대학 학생회장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과제는 부당한 군부정권을 마감하고,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현실적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대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과제였고, 우리의 미래와도 직접 연관돼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학투련의 결성식이 건국대학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은 크게 *<자민투>와 <민민투>로 나뉘었는데, 이렇게 양분된 학생운동을 반성하고, 애학투련으로 모아내며 실천방향을 정하는 결성식이었습니다. 또한 반외세, 반독재, 평화통일의 구호는 시대의 과제이며 꼭 필요한 목소리였죠. 저는 이런 애학투련의 의의와 구호에 동의했고, 뜻있는 약학대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Q. 건대 항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성식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찰나에 전경들에게 포위됐습니다. 우리는 잡히지 않으려고 본관(현, 행정관)으로 들어갔죠. 우리는 전경들에게 “우리는 평화시위를 진행했다.”고 말하며 ‘안전귀가’의 보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농성은 3박 4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농성에 본관의 학생들은 굶주림에 지쳐갔습니다. 전경의 포위를 뚫고 음식을 구해오는건 당연히 불가능했죠. 매점은 사회과학관(현, 경영대)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과정으로 가능했는지 세세히 기억할 수 없지만, 희망의 끈이 연결됐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밧줄을 연결한 것이죠. 학생들은 밧줄이 연결되자,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밧줄을 타고 음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전달된 돈은 사회과학관 매점에 놓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음식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20명 남짓의 학생들과 함께 어느 교수연구실에 있었는데, 그때 우리 방으로 온 음식은 초코파이 다섯 개와 수프 두 그릇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서로 양보했고, 누가 더 먹겠다고 싸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양의 음식이지만, 기분 좋게 옆 학생과 나눴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건대 항쟁에 참여한 경험이 이후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농성이 특수부대의 진압으로 끝나며, 많은 학우들과 함께 구속되면서 저 역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선배로서 후배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지 못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경험했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대 항쟁을 통해 제 삶의 지향점을찾을 수 있었습니다. 애학투련 결성식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건대 항쟁 이후, 저는 집행유예를 받기 전까지 100일 가량을 서울구치소에서 지냈습니다. 학교는 집행유예를 받은 학생들에게 ‘무기정학’을 일괄 통보했죠. 87년 2월 석방되어 7월 복학 통보를 받기 전까지 많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해답을 80년 광주항쟁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정학 기간 고향인 목포에 있었는데, 처음엔 막막하더군요. 그러던 중 5월, 친구에게서 자기네 학보에 실을 글을 부탁받았습니다. 주제는 광주항쟁이었죠. 그 글을 위해 광주항쟁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희망을 찾았죠. 80년 광주는 무정부상태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양심이 살아있던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초코파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던 저희처럼 말이죠. 광주항쟁이 실패가 아니듯이, 건대 항쟁의 의미도 뚜렷합니다. 또한, 광주항쟁을 공부하며 많은 시민들이 저와 같은 생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이 증명됐죠. 건대 항쟁은 제 삶의 방향을 굳히는 큰 계기였고 전환점이었습니다. Q. 사회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정치의 길을 걸으며, 암담한 현실에 직면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대 항쟁의 좌절이 6월 민주항쟁을 촉구했던 것처럼,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소수정당으로 지역구 의원 당선돼서 올바른 이야기를 국회에 전달할 수 있던 기회를 성남시민들께서 주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또, 최근엔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국민들이 만드셨을 때도 전 희망을 봤습니다. 86년 10월의 건국대 서울캠퍼스는 그런 희망이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대신문을 읽고 계시는 건국대 학생여러분은 뜻깊은 역사의 현장에서 공부한다는 자부심을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직업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서 같은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과제가 무엇이고, 그 과제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도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 같네요. *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 투쟁위원회(민민투)와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는 85년의 전학련 산하 삼민투위에서 학생운동권의 투쟁세력간의 노선 차이로 양분된 것으로서, 이후 여러 차례 개편과 이합집산을 거쳤다. * 이 기사는 3번째 연재기사로, 10.28 건대항쟁 30주년을 기념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보도] 공동 공간 대여 제한되는 연합동아리 공동 공간 대여 제한되는 연합동아리 학술 및 체육시설 공간 대여 공지 켑쳐본. 신청 대상을 '본교 재학생으로만 구성된 단체'로 규정하고 있어, 연합동아리는 대여가 일부 제한된다. 현재 학생복지처는 연합동아리의 학술및 체육시설 대여를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 이 방침에 대해 동아리 연합회(동연)는 지난 5일 열린 전학대회를 통해 “공간 대여를 제재한 대상 중 연합동아리는 제외해 달라”는 내용의 요구안을 대학본부에 전달했다. 학술 및 체육시설 공간 대여의 신청은 ‘우리 대학 재학생으로만 구성된 단체’로 제한하고 있어 △졸업생 △외부인 △연합동아리는 사용이 불가하다. 본교 학생들만 공동공간을 사용해도 이미 포화상태라는 게 학생지원팀의 설명이다. 실제로 제1학생회관 2층 중강당의 경우, 이미 9월 중순까지 주말을 포함한 대부분 시간에 예약이 잡혀있다. 학생지원팀 탁일호 주임은 “본교 학생들만 사용하기에도 공간이 부족해다른 대학생이 오는 행사에까지 공간을 대여해줄 수는 없다”고 전했다. 때문에 타대학 학생과 연계한 연합동아리의 행사엔 대여가 제한된다는 설명이다. 윤재은(정치대ㆍ정외4) 동연회장은 “우리대학엔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은 연합동아리가 10개 이상 활동하고 있다”며 “이 동아리들은 특성상 타 대학과 연계된 활동을 많이 진행하는데, 학생복지처의 방침 때문에 우리대학 재학생이 행사를 주도하더라도 학내에서 개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위와 같은 요구안을 제시한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자연대 학생 그룹 소속 김무석(수의대ㆍ수의학4) 학우는 “우리 동아리만 해도 학기당 2~4회의 연합행사를 진행한다”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더욱 풍요로운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학생지원팀의 비일관적인 조치도 지적됐다. 익명을 요구한 A 연합동아리 회장은 “저번 학기에 우리 동아리가 주최하는 연합행사를 본교 체육시설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다”며 “연합동아리라도 본교 재학생만 사용하겠다고 신청하면 받아준다”고 전했다. “공간대여 제한 방침 때문에 이렇게 신청해놓고 타대학생을 몰래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고백했다. 동연의 요구안은 학생복지처에 전달됐지만, 방침수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탁 주임은 “동연에서 의결한 내용이지만, 동연소속 학생은 전체 학생의 10% 미만”이라며 “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의 대여 방침을 수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정두용 기자 jdy2230@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2 3 4 5 6 7 8 9 10 83 Next / 83 GO / 83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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