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 미디어 교내 건대신문,학원방송국,영자신문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본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게시글에 대해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전체 건대신문 672 KU ABS 55 KU 영자신문 1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건대신문 [문화상]사진부문 당선작-<물고기를 통한 죽음에 관한 고찰> 어렸을 때부터 난 물고기들을 좋아했다.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외형이나 우아한 움직임, 종에 따른 다양한 색감, 나와 달리 물 속에서 자유롭다는 점 등 물고기는 나에게 항상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죽음에 관한 생각을 물고기에게 까지 뻗쳤을 때 어항 속에서 한 순간도 감지 않는 그들의 눈에서 더없이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이미 알고있었음에도 한 발짝 더 멀어진 느낌. 그래서 난 그 이후로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도 한참동안 어항 속 물고기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항상 죽음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과 작업들을 통해 생선을 못 먹게 됐다던가 하는 변화는 나에게도 없고 남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응시하는 눈 1 응시하는 눈 2 응시하는 눈 3 응시하는 눈 4 응시하는 눈 5 응시하는 눈 6 수용1 수용2 수용3 수용4 흐름1 흐름2 김승균 (예디대·영화애니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소설부문 당선작-<영원의 순간> 영원은 글라스를 닦다 말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담배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흐릿하게 퍼지는 담배 연기가 좋아 아직도 끊지 못했다. 여자가 뭔 담배냐는 핀잔도, 멘솔이 무슨 담배냐는 놀림도 영원은 굴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게 문을 닫아버릴까 생각하다가 바깥에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곱게 마음을 접었다. 애플 마티니 하나랑 아디오스 하나요. 밀려오는 주문에 잔을 내려놓고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더더욱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나갈 시간은 손톱 끝만큼도 없었다. 우현이 도와주고 있는 데도 바빴다. 정신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우현이 바에 주문서를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덩달아 영원의 손길이 빨라졌다. 흔들흔들. 셰이커가 흔들릴 때마다 영원의 시야도 흔들흔들 거렸다. 영원은 종종 이럴 때마다, 셰이커가 흔들릴 때 세상도 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많이 바쁘죠. 우현이 파란 칵테일이 찰랑이는 잔을 들고 얼굴을 들이 밀었다. 머리카락 끝은 살짝 젖어 있었다. 영원은 낯선 사람을 보는 얼굴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노란 핀 조명 아래에서 빛나던 금색 머리카락이 아직도 생생했다. 건반 위에서 달려 나가던 긴 손가락이 아는 사람의 손이 맞나, 의문이 생겼다. 영원은 갑자기 눈이 쓰라렸다. 눈이 부신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은 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핸드폰이 11시를 알리며 울었다. 아직도 바깥은 깜깜했고 사람은 북적였다. 마감은 세 시간이나 남았다. 영원은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로감에 셰이커를 내려놓았다. 탁, 하고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연, 이름이 이우연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게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흐릿한 이력서를 가져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잉크가 부족했던 건지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고 사진은 얼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져있었다. 본인이 직접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바로 버려버렸을 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아뇨. 우현, 이 우현이요. 영원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으면 안 될 것을 물었나, 머쓱해하면서 눈으로 천천히 살펴봤다. 끝부분이 갈라져 노랗게 물든 밝은 갈색 머리카락부터 잔뜩 굳어있는 손끝까지. 하얗게 튼 손끝이 영원의 눈에 들어왔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가락에서 문득 유화 물감 냄새가 났다. 혹시 그림 좋아해요?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대방이 경영학과이면 더욱이나. 꼭 작업 거는 것도 아니고. 영원은 순간 창피해졌지만 조금 뻔뻔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다잡았다. 아뇨? 생뚱맞은 질문에 우현도 당황했는지, 말끝이 조금 올라가 의문형이 되어버렸다. 그런 건 왜 묻나요, 하는 순수한 20대의 얼굴을 보면서 영원은 이상하게 안도했다. 이력서를 반으로 접어 파일 안에 곱게 끼워 넣었다. 무언가를 더 묻거나 설명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출근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영원은 우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는 되지도 않는 확신으로 자신을 설득하면서까지 영원은 우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끝만 노란 갈색 머리도, 하얀 손끝을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손동작도, 어색한 20대의 눈빛도. Stay there, soft and blue. 전체 반복을 눌러 놓은 팝송 100선 중 한 곡이 익숙하게 귀를 스쳤다. 검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계산대에 서 있는 우현은 영원의 생각대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메뉴 이름을 외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평일 내내 나오는 것치곤 오래 걸리는 거지. 영원의 놀림에 우현은 눈을 아래로 내리며 죄송해요, 하고 웃었다. 노란 머리는 점점 갈색 머리끝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커피 좋아해? 아, 네. 우현이 차가운 라테를 홀짝였다. 일회용 잔 겉에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우현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한 모금 더 마셨다. 슬그머니 가까워지는 눈썹 사이가 우현의 말이 귀여운 거짓말임을 보여줬지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카페 모카와 카페 라테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우현이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영원은 그래도 그 점 또한, 우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하지만 노력하는 밝은 아르바이트생. 펍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카페에는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카페가 특이하네요. 영원이 가게 문을 열고 가장 많이들은 말 중 하나였다. 영원의 가게는 누군가에게는 카페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펍이었다. 낡은 흑백사진들이 벽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었고, 구석에는 불이 꺼진 네온 장식도 있었다. 낮에는 나뭇잎과 꽃잎에 가려지다가도 밤이 되면 조명과 낡은 사진들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노래는 보통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의 팝송들이 대다수였는데, 그게 묘한 매력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곳에 있으면 꼭, 옛날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 아나요? 미드나잇 인 파리. 그 영화 진짜 재밌는데. 영원은 그 말을 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냥 누군가 그런 말을 했고, 가끔 손님들이 카페, 혹은 펍이 특이하네요, 하고 말을 걸어올 때 그 말을 그대로 들려주곤 했다. 특이하다고 어딘가에 소문이라도 난 건지 종종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들이 다녀가곤 했다. 카메라는 흐르는 음악과 커피 향을 뚫고 철커덩, 묵직한 소리를 바닥에 내뱉었다. 영원은 그 때만큼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던 카페도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바닥의 나무 무늬가 영원의 눈앞에 어지러웠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바닥만큼은 대리석으로 할 걸 그랬어. 종종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카페를 생각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흔하게 있는 두어 개의 카페처럼 무난한 나무문을 걸고 나무 탁자를 들여놓고 푹신한 소파와 각진 의자 몇 개를 늘여놓고. 그 계획이 바뀐 건 순전히 사월의 탓이었다. 카페를 차릴 거야. 통장 정리를 하던 영원이 펜을 내려놓고 오늘 날씨 참 좋지, 하는 말투로 흘리듯 이야기를 꺼냈다. 햇빛에 사월의 긴 머리가 반짝이고 있을 때였다. 흐르듯 바닥을 향하는 머리카락은 종종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기도 했다. 사월은 신경도 쓰지 않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당근을 썰고 있었다. 통통통. 경쾌한 소리에 사월의 노래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요리하는 사월의 손끝은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영원은 머릿속에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숫자들을 끌어안고 하얀 종이에 옮겨 담았다. 따뜻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사월이 웃으며 말했다. 다 썰어진 당근은 프라이팬 위에서 밥과 함께 볶아졌다. 잘게 부딪히는 빗소리가 났다. 순간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질녘도 되지 않은 낮이었다. 영원은 한가한 시간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떠올렸다. I don't know who you are, Henry……. But I dream about you almost every night. 사월과 영원의 사이로 여자주인공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빗소리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사월은 분홍빛의 꽃이 그려진 그릇 위에 예쁘게 볶음밥을 담고 있었다. 그냥 대충 먹지. 예쁜 밥이 더 먹기도 좋은 법이야. 빨리 이리 와. 밥 먹자. 영원은 통장과 노트를 덮고 사월에게 다가갔다. 연한 물감 향기가 났다. 그리고 영원은 바로 다음날 부동산을 알아보았고, 또 그 다음 날 인테리어 업자를 찾아갔다. 따뜻한 색이었으면 좋겠어요. 뜬구름 잡는 영원의 말에 업자의 얼굴이 난감하게 웃었다. 아, 예쁘면 더 좋고요. 덧붙인 영원의 말에 웃음은 더 짙어졌다. 무슨 색이라고요? 따듯하고 편안한 색이요. 업자는 따뜻하고, 에 힘을 주는 영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곤 ‘따듯’에 동그라미까지 쳤다. 톡톡 책상을 연필로 두드리는 모습이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가 톡, 톡, 톡, 으로 다시 느려지고 있었다. 끝내 아예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반대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 아까보다 더 무거운 소리였다. 영원은 굵은 손가락 끝을 바라보다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따듯한 색이면 아무거나 괜찮아요. 따듯하고 편안한 공간.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공간. 영원은 뭉개진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업자는 머리를 몇 번 긁더니 커다란 책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안에는 다양한 가게들의 사진이 늘어져 있었다. 모델 하우스 같이 예쁘게 찍힌 사진들은 온기는 한 점도 없었다. 영원은 엇비슷한 공간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다양한 이름들을 눈으로 훑기만 했다. 모던, 심플, 블랙 앤 화이트. 주르륵 다음 장으로, 다음 장으로 향하던 영원의 눈에 나무가 잔뜩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커다란 나무 사이에서 잠자듯 놓여있던 피아노 사진이 떠올랐다. 사월이 보던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 자신을 연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낡고 검은 피아노. 젖은 소리로 울던 피아노, 소리가 난다고 소리치던 더벅머리의 아이. 그 장면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걸로 할게요. 이걸로요? 업자는 갑자기 마음을 정한 영원이 의외라는 듯 손끝을 바라보았다. 관리하기 힘드실 텐데요. 상관없어요. 업자는 조심스레 사진을 꺼내 영원에게 내밀었다. 영원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월에게 사진을 전송하곤 다시 사진을 업자의 손에 돌려보냈다. 매장 이름은 생각해 보셨어요? 아니요. 영원은 아차,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업자는 한숨을 내쉬며 영원을 돌려보냈다. 아니, 이름도 생각 안 해보셨어요? 마지막에는 난감한 얼굴을 넘어서 한숨까지 내쉬었다. 다음번에 오실 때에는 좀 더 생각해 보시고 오세요. 그대로 쫓겨난 영원의 핸드폰엔 사월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쁘네! 영원은 그치, 딱 이 정도가 좋아, 하고 사월에게 웃는 이모티콘을 한 아름 보냈다. 그래서,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어요? 우현이 불쑥 영원에게 물었다. 영원은 조심스레 케첩을 짜다말고 메뉴판을 들었다. 영어와 한글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메뉴판에는 그림 하나 없었다. 사실 카페 겸 펍이라고 해도 메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방 직원이라곤 한 명 밖에 없었고, 주방장이자 그냥 직원인 그 사람이 쉬는 날에는 영원이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영원은 썩 좋은 요리사는 아니었다. 제일 많이 나가는 건 나초에 치즈. 아니면 칠리소스. 혹은 감자튀김. 감자튀김을 만들 때면 영원은 그 옆에 최대한 작게, 많은 양의 케첩을 짜냈다. 뾰족한 세모 모양으로 케첩을 쌓다보면 가끔 주르륵 옆으로 흐를 때도 있었다. 제일 덜 나가는 메뉴는 동그란 닭튀김이었다. 아예 안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메뉴에 비하면 열 번 중 한 번에 불과했다. 감자를 튀기건 고기를 튀기건, 전부 똑같은 사람의 손에서 똑같은 기름을 써서 똑같이 만든 음식이라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차이점이라곤 감자와 고기라는 점뿐이었다. 뭐가 더 맛있는지는 주인인 영원도 몰랐다. 샐러드가 제일 맛있을 것 같아요. 치킨 샐러드. 애매한 메뉴였다. 가장 중간쯤의 가격에 가장 중간쯤의 판매량. 영원은 딱 그만큼 애매하게 웃었다. 반면 우현의 입 꼬리는 저 위로 올라갔다. 올라갔을 것이다. 목소리가 그랬다. 주방의 환한 불빛에 바 건너편의 우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슬슬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점차 길어지고 있는 해는 건너편 빌딩 너머에서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내비추고 있었다. 오늘 공연 팀은 언제 온대요? 글쎄. 그건 가누가 알 텐데. 영원의 펍에서는 한 달에 단 한 번 무료로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호스트는 영원이었지만 실질적인 호스트는 하우스 밴드 멤버인 가누였다. 능력 좋게도 가누는 매번 다른 가수들을 섭외해왔다. 사진을 찍는 카메라도, 소리를 담을 녹음기도 없는 공간에서 공연을 한 가수들이 벌써 열 손가락을 두 번 접었다 펴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낡은 흑백 포스터와 사진 사이에서 그들은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 반이었다. 여덟시가 공연 시작이었는데 아직도 가누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너는 오늘도 공연 보고 가려고? 공연이 있는 날, 우현은 그 날들만큼은 일이 끝나도 가지 않고 공연을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영원은 칵테일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종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그래도 최대한 겹치지 않게 영원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기도 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뿐이기에 저번 달에 뭘 만들어 줬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영원은 오늘도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데킬라에 럼, 진, 보드카까지 조금씩 섞은 후 이것저것 집어넣고 대충 저어서 우현에게 내밀었다. 블루 큐라소가 들어가서 그런지 새파랬다. 우현은 우와, 한 마디만 하고 잔을 받아들었다. 너무 파래서 눈이 시린 칵테일을 받아들고 우현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르겠어요, 하고 중얼거렸다. 감성적이긴. 영원이 가볍게 놀리자 얼굴을 붉혔다. 순진한 반응에 영원은 우현의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왜, 호수라는 생각은 안 드니?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도 이제 제법 맞받아치기도 했다. 발간 얼굴을 숨기려 움츠러들던 목도 옛날 얘기였다. 적어도 움츠러들진 않았다. 거북이가 진화했다며 또 놀림 받을 거리가 늘어났긴 했지만. 이름이 뭐에요? 우현이 잔을 들어 빛을 비춰보며 영원에게 물었다. 아디오스. 아디오스요? 응. AMF라고도 하고. 뭐야, 빨리 가라고 주는 거 아니죠? 살짝 붉은 기가 떠있는 얼굴이 말갛게 웃었다. 부끄러움은 조금 덜 타게 된 우현이지만 저 말간 웃음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영원은 저 얼굴을 볼 때마다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표정만큼은 펍에도 잘 어울렸다. 서로 다른 낮과 밤의 가게에 모두 어울리는 것은 우현뿐일 거라고, 종종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아, 맛있다. 우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영원은 그때 처음 알았다. 눈동자는 진한 고동색이었구나. 평소보다 조금 더 즐거운 것 같았다. 바다가 보고 싶어. 이젤을 세워놓고 앉아있던 사월이 말했다. 영원은 세필 붓으로 먼지를 털어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바다? 동해 바다가 보고 싶어. 사월이 물감을 주욱 짜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파란 색이었다. 동해? 응. 서해 말고? 응, 동해가 보고 싶어. 동해는 너무 멀어. 그리고 더 파랗지. 더 깨끗하고. 더 맑아. 해도 더 빨리 뜨잖아. 사월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허밍은 이리저리 마음대로 음을 바꿨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다가도, 전혀 알 수 없는 노래로 바뀌기도 했다. 영원은 순간 사진을 찍고 싶어 묵직한 카메라를 집어 들었지만 필름이 없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되지 않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사월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담았다. 붉은 노을에 갈색 머리가 빨갛게 보였다. 창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바다 놀러갈까. 충동적으로 한 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입 밖으로나마 꺼내보고 싶었다. 동해 바다에 가서 회도 잔뜩 먹고 바닷가 공연도 보고. 끝말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언제? 아마도 우리 둘이, 같이 쉬는 날에. 나는 언제나 휴일인걸. 사월은 손을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바다 냄새가 손끝에서 물씬 풍겼다.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냄새가 났다. 영원은 눈을 감았다 떴다. 쉬는 날에 바다로 가자. 그렇지만 넌 바쁘잖아. 생각해봐. 바로 내일도 스케줄 있지 않아? 음, 그렇긴 하지. 봐봐. 사월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잔뜩 토라진 얼굴로 손놀림을 좀 더 바삐 하는 모습이 딱 토라졌을 때였다. 벽 한 쪽에 걸려있는 달력에는 동그라미 쳐지지 않은 날을 세는 것이 쳐진 날을 세는 것보다 빨랐다. 영원은 카메라를 매만졌다. 조금쯤 미안해졌다. 괜한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았다. 대신 이번엔 꽃 보러 가자. 벚꽃을 보러 가는 거야. 나는 거기서 사진을 찍고, 너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이 많을 텐데? 사월은 다른 물감을 꺼내 다시 한 번 죽, 짜냈다. 그래도 상관없어. 어쨌든 우리 둘이 같이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손끝에서 천천히 구름이 솟아났다. 꼭 동해 같네. 영원의 말에 사월이 그래? 하고 웃었다. 아니야? 글쎄. 사월은 손을 계속 움직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한 바닷가에 두 사람이 있었다. 손을 잡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는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가 있었다. 그 사이에서 동해인지, 서해인지, 아니면 호수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늘인지 모를 파란 색의 틈으로 희뿌옇게 구름이 피어났다. 그냥, 바다도 가고, 벚꽃도 보러가자. 그 다음엔 장미를 보러가고, 그 다음엔 낙엽을 보러가는 거야. 그리고 다시 바다를 가자. 영원은 꿈꾸듯 중얼거렸다. 바다가 금방이라도 바로 앞에서 파도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원은 지금도 꿈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피아노 세션이 잠수래요. 가누의 말에 영원은 오늘 공연을 취소할까 고민했다. 어차피 사정에 따라서 공연 시간도 마음대로 바꾸고, 출연 가수도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많았다. 공연이 없다면 손님들이 조금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아노가 빠지면 어쩌지. 영원은 그냥 이대로 해, 라고 하려다 가누가 무슨 말이라도 더 해 주길 기다렸다. 사장님. 갑자기 우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높다란 머리 위로 손이 불쑥 솟았다. 꼭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표시간에 맨 앞에 앉은 꼬맹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영원은 손끝을 보다가 왜, 하고 답했다. 오늘 공연 곡, 봄노래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우현의 말에 영원은 고개를 살짝 틀었다. 공연 내용은 영원의 구역이 아니었다. 영원이 하는 일은 가게의 구석을 조심스레 내어주는 게 전부였다. 영원의 시선 끝에서 가누가 그렇긴 한데, 하고 긍정했다. 그럼 제가 할 게요. 저 진짜 잘 할 자신 있어요. 공연 안 망치게 잘 할게요. 반쯤은 주눅 들고 반쯤은 흥분해서 빠르게 내뱉는 우현의 말에 영원이 손을 살짝 들었다. 영원이 아는 한, 우현은 경영학과였다. 피아노와는 거리가 먼. 우현은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너 전공이 음악이었나? 아뇨. 그건 아닌 데요……. 영원은 우현의 하얀 손끝을 떠올렸다. 단단하게 굳은 손끝. 네모난 손끝. 영원은 그 동안 그걸 몰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현이 처음 왔던 게 지난여름의 입구였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 짧다는 걸 감안하면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간 셈이었다. 밴드랑 얘기 한 번 해봐. 여기 가누도 있겠다. 좋네. 어차피 정해진 공연이고 밴드 멤버는 가누를 필두로 어쩌다 모인 사람들이었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공연까지 한 시간 남았으니까, 적당히 맞춰보자. 가누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우현을 끌고 가게 구석으로 갔다. 어느새 전자 피아노가 자리를 펴고 서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하우스 밴드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우현이 어색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덟 시까지는 금방이었다. 펍이 가득 차는 것도 그만큼 순식간이었다. 나름 이름 있는 여가수는 안녕하세요, 오늘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평범한 인사 한 마디를 끝으로 내리 노래를 불렀다. 힘들어 하는 기색은 없었다. 영원은 스테이지 조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명을 꺼버렸다. 사람들은 불이 꺼지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공연 내내 영원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조명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라고, 영원은 가까스로 변명했다. 스테이지 바로 옆의 네온 조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Don't Break the Spell of a Life Spent Trying to Do Well. 푸르게 빛나던 글자가 나긋한 여가수의 허밍과 뒤섞였다. 어지러웠다. 밤 11시가 되자 펍은 더더욱 달궈졌다. 공연이 끝난 밴드 멤버들과 가수는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영원은 뒤돌아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주문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한낮의 커피 향이 묻어있던 손에 알코올이 옮겨 붙었다. 엉킨 냄새는 개수대에 흘려보내도 사라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 저 어땠어요? 칭찬을 바라는 아이의 얼굴을 들이민 우현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주었다. 영원 나름대로의 칭찬이었다. 우현은 그 와중에 영원의 젖은 손 덕분에 망가진 머리를 다시 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현의 머리카락을 따라 흐르던 물방울 몇 개가 바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영원은 젖은 우현의 머리카락도, 방울방울 무늬가 생긴 나무 표면도, 문득 낯설게만 느껴졌다. 피아노, 배운거야? 네. 난 몰랐는데. 아무도 몰랐을 걸요. 어차피 다들 관심도 없었고 말이에요. 우현은 다듬던 머리를 결국 포기하고 시원하게 뒤로 넘겼다. 앞머리로 덮여있던 이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영원은 얼룩하나 없이 깨끗한 우현의 이마를 보다가 탁, 하고 내려쳤다. 아프다며 끙끙대는 우현을 무시하고 영원은 물 묻은 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흘긋 남은 잔의 개수를 세어보니, 마감까지 잔이 모자를 것 같았다. 하얀 린넨 천을 탁탁 털고 물 자국을 닦아냈다. 뽀드득, 뽀드득, 시끄러운 펍 안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저 피아노 좋아해요. 노래도 좋아하고요, 사실 기타도 배우고 싶어요. 그랬구나. 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좋아하는 게 좋은 거지. 나도 그랬고 말이야. 용기 가득한 아이 같던 우현은 그래서 말인데요, 하고 다시 소심한 청년으로 돌아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얀 손끝은 아직도 영원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음, 저기, 사장님. 왜? 다시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열심히 흔들어야만 했다. 칵테일 만드는 사람이 하나뿐이라 쉴 수가 없었다. 영원은 적당히 흔들었다고 생각 될 때 쯤 잔에 옮겨 담았다. 파란색 칵테일이 잔 표면에서 넘실거렸다. 조금 양이 많았다. 걔도 아디오스에요? 아니. 블루 하와이. 흔하지. 만들어 줄까? 우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쳐 묶이지 못한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영원은 칵테일을 다른 잔에 조심스레 덜어냈다. 컵 표면을 타고 파란 칵테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원은 천으로 잔을 닦은 후 레몬 조각을 조심스레 꽂았다. 둥글둥글하게 말린 빨대만 꽂으면 끝이었다. 대충 흘린 칵테일을 닦아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는지, 나무 표면은 이제 고동색으로 변해있었다. 그거 제가 나갈 게요. 몇 번 테이블이에요? 7번. 갈 수 있겠어? 당연하죠. 저 이래보여도 일 년 전에는 서빙 했어요. 당당한 사람치고는 손끝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영원은 그래, 다녀와, 하고 개수대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 셰이커 안에 있던 파란 칵테일은 빠르게 씻겨 나갔다. 사월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나갔다, 라고 하기에는 그냥, 어느 순간 오지 않았다, 가 적당했다. 어차피 영원의 집에 사월이 놀러오는 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한 낮의 카페였다. 영원은 다이어리에 새로운 촬영 스케줄을 적고 있었고 사월은 그런 영원의 손을 그리고 있었다. 햇살은 아직도 따스했다. 가을의 햇살은 여름과는 달리 매끄러웠다. 영원은 햇빛을 찾아 사월을 끌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왜? 그냥. 시끄러운 카페 안에 있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월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맑은 얼굴은 햇빛 때문에 노랗게 빛났다.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맑은 손끝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물들어있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 한숨처럼 나온 말이었다. 다이어리를 덮고 손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림을 그리던 사월의 손이 멈추었다. 꼭 네 이름 같은 말이네. 사월이 작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래도 영원아, 곧 해는 지는 걸. 응? 해가 진다고. 지금은 저녁 시간이잖아. 여름인데 더 오래 있지 않을까? 글쎄. 시답잖은 얘기는 금방 끊겼다. 영원은 너무 바빴고, 사월은 그림에 빠져있었다. 중간 중간 저녁은 뭐 먹을까, 글쎄, 하는 너무 사소한 얘기가 몇 번 더 오갔다. 종종 이 때를 생각하면 영원은, 조금만 더 얼굴을 마주할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영원이 사월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마침내 결론내린 것은, 어느 날 벽에 홀로 서있는 이젤을 마주했을 때였다. 이젤 위에는 얇게 먼지가 앉아있었다. 그날 저녁 영원은 남은 짐을 한데 모아 장롱 안에 한 가득 쑤셔 넣었다. 커다란 이젤은 끝끝내 넣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영원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페 이름, 생각 해 봤는데요.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큼큼, 하고 몇 번 목소리를 다듬고 조심스레 꺼냈다. 영원은 카페의 간판을 올리던 날 사월을 떠올렸다. 피아노의 숲. 피아노의 숲 안에 영원은 사월의 그림 옆에 낡은 사진들을 걸어 널었다. 흑백 필름에 푹 빠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셔터만 누를 때의 사진들이었다.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낡은 차와 오래된 거리만 등장했다. 스튜디오 사진만 찍던 영원의 마지막 풍경 사진이었다. 엉망진창이라고만 생각했던 흑백사진은 카페와 펍 양쪽에 퍽이나 어울렸다. 우현은 비틀비틀하면서도 무사히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첫 공연이었던 주제에 손님들이랑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잔뜩 취한 공연 팀이 우현인지 우연인지 모를 이름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새로운 주문보다 원래 있던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일 시간이었다. 영원은 담배를 쥐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전부 져버린 벚꽃 나무 옆에 한참을 서 있다가 불을 붙였다. 노란 가로등 밑에서 나뭇잎이 반질반질 빛났다. 후, 숨을 뱉으니 몽글몽글 연기가 올라왔다. 연기는 뭉치기도 전에 허공에 흩어졌다. 지금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때도, 지금도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이미 오늘의 해는 졌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코앞으로 분홍색 꽃잎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발가락을 간질거릴 수 있을 만 한 거리에서 꽃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영원은 손끝으로 조심스레 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만 봤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햇빛의 냄새가 났다. 이윤경 (문과대·국문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상]시부문 당선작-<가랑눈> 가랑눈 너의 온도로 눈이 내렸다 피부에 서성거리는 내 열을 밀어냈다 늙은 골목길 폭우처럼 멈춘 시간 텁텁한 가로등 불빛 내 발을 본다 발과 바닥의 위치가 자꾸만 뒤바뀌고 나는 아예 눈이 되려는데 다신 울지 않으려고 네 앞에서 너를 묘사할 수 없다하더라도 눈이 내린다 두 눈을 감으면 온몸이 행복해져 울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하얘지는 걸까 영영 사라져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눈이 불빛을 침범하고 구름이 되고 싶다 했잖아 구름 물방울 양털 바람 누군가가 닿는 소리 포개져도 아프지 않은 것들 바닥에 스며든 눈처럼 구름처럼 아프고 싶어 눈이 닿은 불빛이 나를 침범하고 모든 색이 뒤섞인다 어두운 건 차갑다 밀폐된 속삭임 같이 사랑을 말하고 김세중(상경대·경제3)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사설]지진,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15일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지진이포항에서 발생했다. 경주지진이 일어난 지약 1년만이다. 지진은 전국에서 감지됐고, 포항일대는 외벽이 붕괴되고 건물과 땅이 갈라지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하였다. 하필 수능 전날 일어난 지진이라 수능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관계자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정부의 수능일정 변경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더 이상의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음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에게 지진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선 큰 인명·재산 피해를 낳은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경주, 포항에서 잇따라 일어난 큰 지진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길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게 되어버린 지진의 반복 발생에 어떻게 대비할 것 인가 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밀집해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이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으로 범위를 넓히면 울진, 부산, 울산까지 모두 18기의 원전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곧 지진에 대한 공포가 원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매우 다르게 제시되고 있다. 정부차원의 정확한 진단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한다. 뿐만 아니라 지진 발생 예상 지역에 분포하는 수많은 공단의 건물과 철도, 도로 등이 내진설계가 제대로 돼 있는가도 새로운 고려의 대상이다. 규모 5.4의 강도에 포항의 모대학교 건물이 금이 가고 외벽에 무너졌다. 강도가 더 셌다면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대학 건물과 같은 공공건물이 부실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말한다. 굳이 예방을 위한 접종이론의 주장을 근거하지 않더라도 지진에 대한 위기관리 프로그램 구축과 교육은 더욱 강조되어야만 한다. 이미 지진에 대해 많은 경험과 학습이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진에 거의 무방비 상태인 게 사실이다. 경주 지진 이후 지진에 대한 국가적 대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지진 대응 시스템이 재정비된 것은 사실이다. 이번의 경우 지진발생 이후 학교 등에서 신속한 대피가 이루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진 진동이 감지되기 전에 알림문자가 도착하는 등 초기 대응에서 경주지진 때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 점 등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진과 재난 경보시스템의 완벽한 구축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불모지에 가까운 지진예측 연구에 관심과 투자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재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훈련을 통해 대응이 일상화, 내면화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천재(天災)가 인재(人災)가 되지 않으려면 생명 중심의 재난대응을 적극 교육해야 한다. 지진의 속성상 자칫 천재가 인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사태는 무엇보다 거듭되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면 엄청난 재앙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건대신문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사설]관행보다 원칙이 앞서야 최근 우리학교에서는 단과대 장학금 대리수령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캠퍼스에는 관련 대자보도 여러 개 붙은 바 있다. 논란이 된 이유는 단과대 학생회장에게 지급돼야 할 장학금이 학생회장이 받을 수 있는 요건에 충족되지 않자 학생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급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격이 되지 않는 학생회장 대신 다른 사람이 장학금을 받는 것은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내려왔다. 70, 8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많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또 대부분의 학생회장들은 앞장서서 이러한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수업에 착실히 참여할 수 없었고, 수배를 당해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이들이 학교 수업에 참여해 좋은 학점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학생회 활동 장학금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전과 현재의 장학금 관련 학칙은 다르겠지만, 현재 우리대학 단과대 학생회활동 장학금을 받으려면 △한 학기 활동 (1~8학기생) △15학점 이상 수강 △평점2.0 이상 등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해야한다. 이처럼 단과대 학생회 장학금을 받으려면 일정 학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70, 80년대에는 여러 상황으로 인해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회장 대신 다른 사람이 대신 장학금을 수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번 단과대 학생회장 장학금 대리 수령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어졌을것이다. 예전부터 장학금 수혜 대상이지만 받지 못하는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이 받는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다보니 같은 소속에 있는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단과대에서도, 관련 행정부처에서도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관습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돈을 더 받아야 겠다’라는 나쁜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장학금 수혜 명단에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관행처럼 해온 장학금 대리 수령도 이른 바 ‘적폐’다. 이제는 이를 청산할 때가 됐다. 규정을 더 잘 지켜야하고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처벌을 받는 시대가 됐다. 현재 우리학교 장학복지팀에서는 장학금 환수 등 후속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단과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계속해서 논의 중이라고 한다. 또한 장학복지팀은 이 단과대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들까지 장학금이 규정에 어긋나게 지급된 사례가 없는지 전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는 ‘情(정)’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라는 생각을 버리고 원칙에 맞게 공정하게 장학금 지급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건대신문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무심코 던진 말 불교에서는 10가지 종류의 지옥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 중 하나가 발설지옥(拔舌地獄)이다. 발설지옥은 말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인데, 혀를 길게 뽑아 늘이고,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으로 혀를 갈아버리는 형벌을 준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저런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실존 여부를 떠나 불교는 무시무시한 벌을 주는 발설지옥의 이야기를 통해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공기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금방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목구멍을 통해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조직적으로 소리를 내면 그것이‘말’인 것이다. 금세 사라져버리는 말은 하기 쉽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적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무책임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쉽게 “생각 없이 말했어요. 죄송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에는 ‘해야 하는 것’이 따른다.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도로교통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도로 위에서 살아남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말’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 함부로 휘두른 말은 섬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가 한 말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기억조차 못하는 말 중 다른 사람에게큰 상처를 준 말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섬뜩하지 않은가? 물론, 화가 난 상태라면 말을 함부로 하기 쉬워진다. 화가 나있다는 사실이 나의 무책임한 말에 정당성을 부여할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난 상태의 우리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말은 본인이 생각을 전해야 하는 것이지만, 화를 내기 위해 그 생각을 왜곡해서 그냥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적인 감정도 나의 ‘막말’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상처가 되는 말이라면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말은 하는 게 맞겠지. 그냥 우리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거다. 말을 내뱉는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려고 노력하자. 한 번 뱉은 말은 어떤 애를 쓰더라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금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야하는 때, 말 정말 조심히 해야 한다. 이다경 기자 lid041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갈등 관리하기 아마 모두가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너무나도 흔한 말이라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라고 느낄 법한 이 말의 뜻을 다시 한 번 짚자면, 인간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수업시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등하굣길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다. 또 바로 옆에는 없어도 SNS를 통해 친구와 서로 연락하며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요즘 거의 모든 일을 할 때 우리 옆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가지각색의 취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사람들 모두와 언제나 즐거운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갈등이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선호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를 잘 다스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질수도 있고 더 돈독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선가 ‘갈등관리를 즐겨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갈등은 어찌됐든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이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 상황을 계속해서 접하면서 더 단단해질 수도 있고 한 번씩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많은 갈등 상황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은 갈등을 겪은 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마다 힘들기도 했고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됐다. 갈등을 관리하는 것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여전히 갈등 상황은 불편하고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다양한 갈등을 접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다. 2017년은 여러 의미로 뜻깊은 해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최수정 편집국장 popo6778@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당신이 내가 될 때 성자들이 있다. 제 몸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의사, 도망쳐 나오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과, 민주사회를 위해 스러진 이들이 있다. 무엇이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나. 부귀와 안락을 기꺼이 놓게 했는가. 사랑이다. 사랑을 정의해 본다. 설레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이나 보고싶다. 입을 맞추며 꼭 안아주고 싶다. 이 감정들은 시간에 무뎌져 옅어지고 바쁜 삶에 묻혀 종종 일어날 뿐이다. 이 마음들은 단지 사랑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본질은 공감이다. 제 배가 고플 때만 칭얼거릴 줄 알던 아이는 사랑을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한다. 그 사람이 웃는 모습에 벅차게 행복해 한다. 털어놓는 아픔에 가슴이 찔리며 시련이 차라리 눈을 돌려 자신에게 오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면 어느새 당신은 나다. 그 결은 다르더라도 가족, 친구, 동료, 모든 인간 관계는 이 사랑, 즉 공감에 뿌리를 둔다. 오감에만 통제받던 자아는 그렇게 확장되며 성숙한다. 그렇기에 관계를 상실 할 때, 어딘가가 한 뭉텅이 때어져 나가는 통증을 느낀다. 떨어져나간 부분이 감당 할 수 없이 거대하면 본 자아마저 지탱 할 수 없이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앞서 말한 성자들은 거대한 사랑에 빠진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큰 공감폭을 지녀 거대한 자아를 형성한 거인들은 모두를 보듬는다. 삼자가 봤을 땐, 완벽한 타인임에도 제 살을 깎아 내어 헌신한다. 미쳐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이 생기면 사지가 떨어진 사람처럼 괴로워한다. 비단 이렇게 눈에 띄는 희생을 하는 사람만 거인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이가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이들.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싹 싹 닦아내는 청소 노동자, 배고픈 대학생들을 위해 밥 반주걱 얹어주는 식당 아주머니, 친절하게 웃음 한 번 더 건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 모두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인이다. 반면 사랑이 결여된 치들이 있다. 단지 유희만을 위해 같은 학교 학생을 죽음까지 내몬 학교폭력 가해자들, 아들을 살해한 모친. 공감이 결여된 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은 차마 잔혹해 맘편히 들을 수 조차 없는 악행을 죄악감 없이 저지른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라도저 밖에 모르는 자아를 가진 소인들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한다. 특히 그 소인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가면 문제는 심해진다. 힘에는 다른 이들을 보듬을 책임이 따른다. 이 소인들은 좁은 자아에 그 보듬어야 할 이들을 품을 수 없기에 오히려 그 힘을 폭력으로 휘두른다. 지도자 선출에 있어 양심이 무엇보다 엄격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타인’을 허물어라. 더 공감해라. 그제야 힘들게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낮아보이는 턱이산처럼 힘든 장애인이 보이며 무거운 배를 안고 서 있는 임산부가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사랑 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김예신 기자 yesin979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칼럼]때론 협상 대신 외고집 부리는 총학생회 되기를 49대 총학생회 <청春어람>을 학생기자로서 지켜보면서 크게 느낀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는 하지 말아야지’다.내가 옆에서 지켜 본 밤샘만 수십 번이 넘는다. 학우들이 보든 보지 않던 정말 바쁘게 일하는 총학생회를 보고 대단하지만 나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아쉬운 점이었는데 학우들 목소리를 합리성이라는 체로 걸러 전달한 점이다. <청春어람>은 기숙사생들의 불편함을 느끼고 기숙사비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기숙사 운영 현황 정보공개 소송을 했고 일부 승소해 제한된 정보공개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는 합리적인 인하 근거를 찾을 수 없어 항소를 했다. 항소는 현재 진행 중이며 결국 올해 인하는 물 건너갔다. 그 상황에서 항소보다는 기숙사비 인하 시위 같은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더 학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등록금 인하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회의 과정을 걸쳐 인하를 피력했지만 실패했으면 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거부하는 강력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우들이 바라는 총학생회는 합리성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때로는 본부와 대립하더라도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합리적 체계 속에서 학우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협상가가 아닌 학생대표자이기 때문에 합리성의 틀을 항상 가져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학생들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때론 융통성이 없고, 본부와 대립을 하더라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제50대 총학생회로 당선된 <利:action>도 학우들 목소리를 그대로 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청회에서 <利:action> 김유진 학생회장은 학군단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정치 발언은 부학생회장과 업무분배해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학군단 훈육관과 상의를 통해 나온 답이다. 학생회장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군인 신분의 훈육관과 상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이 합리성 추구를 넘어서 너무 타협적이고 의존으로 보인다. <利:action> 공약 중 학사구조조정위원회 창설 및 대응메뉴얼 작성 등을 제외하고는 본부 비판적 공약을 찾아보기 힘든 점도 이런 걱정을 부과시킨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총학생회가 본부와 타협을 할 때도 있어야 하지만 갈등 상황일 때도 있어야 하고 사이가 안 좋을 때도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만약 <利:action>이 본부를 타협의 대상으로 본다면 그 시선을 내려놓고 좀 더맞서야 하는 대상으로 봤으면 한다. 때론 합리적이지 않아도 학우 목소리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좀 더 고집을 부렸으면 좋겠다. <利:action> 총학생회가 아직 정식 출범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괜한 기우일수도 있다. 하지만 49대 총학생회에 아쉬운점이 50대 총학생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쓴다. 이용우 미디어부·대학부 부장 a6331602@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건대신문 [문화]언어가 담지 못한 마음을 전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말과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어디서나 이 그릇을 예쁘게 빚어내는 사람이 사랑 받으며 중요한 자리에서 사람들은 같은 의도를 가진 말도 단어를 신중히 벼려내서 말한다. 언어가 얼마나 인간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 방증한다. 사실 언어는 소통을 이루는 아주 작은 조각 하나에 불과하다. 김우룡·김해영 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대화는 7%의 언어로 이뤄지며 나머지 93%는 표정과 몸짓을 비롯한 언어외적 요소들이 결정한다. 실제로 진심된 행동을 수반한 말 한마디는 모든 진심을 아우르지만 천마디 말도 이를 뒷받침 해 줄 비언어적 수단 없이는 구구절절한 넋두리에 불과하다. <건대신문>에선 비언어적 행동 양식이 어떻게 습득되고 비언어적 요소인 △시간 △행동 △이모티콘에 대해 정리해 봤다. 시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도 똑같이 울고 웃는다 눈 먼 아이도 웃는 법을 안다 언어를 학습하듯 인간은 타인을 모방함으로써 비언어 양식을 습득한다. 이에 학습하지 않은 외국어처럼 다른 문화권 비언어 행동은 원활히 해석되지 않는다. 미국 서부권에서 악수를 할 땐 눈을 바로 마주친 채 손에 힘을 꽉 주어야 예의다. 그러나 일본에서 손을 맞잡을 때 눈을 마주치는 행동을 결례며 중동 사람들은 꽉 붙잡는 손에서 불쾌감을 느낀다. 남미 국가에서 일상적인인사인 포옹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보통 조롱 할 때 내미는 혓바닥이 티베트에선 인사다. 이처럼 해당 문화권 비언어적 요소를 모르면 소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영어 회화에 있어서 제스쳐도 함께 학습하는 이유다. 이처럼 학습을 통한 같은 행동에서 나오는 다른 해석들 때문에 비언어적 표현은 모두 후천적으로 학습된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비언어를 날 때부터 지닌다. 오스트리아 행동 분석학자 아이블-아이베스펠트(Eibl-Eibestfeldt)는 두 살에서 열 살 사이 시청각 장애 어린이들의 표정을 일반 아이들과 비교했다. 놀랍게도 보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똑같이 울고 웃었다. 더불어 캐나다 사람인 데이비드 라이머(David Reimer)는 생후 8개월, 의료사고로 인해 성기가 절단된 후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12년간 호르몬 치료와 사회적 훈련을 받았음에도 일반적인 남성에게 두드러지는 행동 양식을 따랐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린 뒤 말을 건네야 한다. 타이밍이 메시지를 전한다 KBS 개그콘서트에 ‘생활의 발견’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한 남자가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다. 관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쓰러진다. 그 슬픈 순간을 어떻게 개그 소재로 쓰며 사람들은 눈물이 아닌 웃음을 보일까? 여자는 이별을 듣는 순간 밥을 한 공기 더 주문하고 있었다. 이처럼 ‘타이밍’은 즉 시간은 이별도 우스꽝스러운 정도로 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류준열은 말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소통도 마찬가지다. ‘언제’ 하냐가 중요하다. 주말에 시급한 일이 없는 이상 근로자에게 공적 업무 때문에 하는 연락은 금기다. 주말은 휴식이 보장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난 수험생에게 바로 성적을 물어보는 친구나 친척은 그 시험 성패여부를 떠나 배려심이 없다는 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다. 원활한 소통을 원한다면 차분하게 가장 좋을 때를 기다린 뒤 말을 건네야 한다. 썸녀 혹은 썸남이 메시지에 바로 대답을 하냐마느냐가 그 마음을 헤아리는 지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냥 틀린 말이 아니다. 정적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회신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 된다. 의식적으로 조작하기 힘들기에 더 진실되게 해석된다. 그해석은 매우 가변적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 즉답이 그 진실성을 의심받기도, 대답을 주저하는 그 자체가 부정을 뜻하기도 한다. 이 침묵이 잘 이용되고 해석 될 때야 진의가 오가는 소통이 이뤄진다. 때론 맞잡은 손이 천 마디 말을 대신한다. 행동이 무의식을 말 한다 ‘언제나 시선 끝에 네가 있었다’는 표현이 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그 마음을 표현한 어구다.이처럼 우리 신체기관은 발끝에서 머리까지 끊임없이 무의식 중에 메시지를 전한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특정 습관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하게 되는 행동이 그 예시들이다. 우리가 몸짓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들은 크게 △적응 행위 △상징 행위 △설명 행위 이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 적응 행위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달된 행위다. 춥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의도적으로 팔을 비비거나 몸을 떤다. 추울 때 몸이 열을 내기 위해하는 행위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두 번째, 상징 행위는 사회관습적으로 약속된 행동을 모방해 발달됐다. 엄지를 추켜세워 최고를 표현하는 모습이 그 예시다. 이 행위는 문화권 별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부시(G.W. Bush) 대통령은 호주에서 모욕을 주는 ‘V’ 손 모양을 승리를 뜻하는 손짓으로 써 곤욕을 겪었다. 마지막으로 설명 행위는 언어를 보강하기 위한 몸짓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연인을 껴 안는 행동이나, 분노에 멱살을 잡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단순한 언어 전달보다 더 극적으로 감정을 전달해 줄 때 쓰인다. 이목구비 중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이 들면 우리는 눈을 똑바로 보라고 이야기 한다.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인 눈은 감정 역시 여과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바라보며 경청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때론 눈짓의 작은 움직임이 놀람, 분노,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전한다. 이모티콘이 감정을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팀플조가 막 짜인 뒤 단톡방, 어색한 적막을 깨며 팀원 몇 몇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00학번 00학과 000입니다^^”, “00학번 000입니다~ㅎㅎ” 등. 그런데 꼭 인사에 ‘^^’이나‘ㅎㅎ’ 같은 이모티콘들이 따라 붙는다. 오히려 이모티콘 없는 인사가 삭막해 보일 정도다. 이모티콘은 그 형상 자체가 직관적으로 뜻을 전한다. 통신기술이 발달해 그림 메시지를 부담 없이 주고 받게 된 현재, 이모티콘은 그 시장 자체가 산업이 될 정도로 부상했다. 글로만 전하지 못한 의도들을 다양한 캐릭터와 아이콘으로 익살스레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최초의 이모티콘은 카네기멜론대학교 학생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웃는 모습이 대다수기에 ‘웃음 상징(smiley symbol)’이라고 불렸다. 이모티콘의 역사는 꽤 깊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편지를 쓸 때 ‘訶訶訶’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읽으면 ‘가가가’라는 소리가 나는데 지금의 ‘ㅋㅋㅋ’정도로 짐작된다. 더불어 『레미제라블』의저자 ‘빅토르 위고’도 출판사에 ‘?’한 글자만 보낸 적 있다. 자신의 책이 잘 팔리냐는 질문이다.이에 ‘!’라는 한 글자로 놀랍도록 잘 팔린다는뜻의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과한 이모티콘 사용은 자칫 대화를 피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영화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글로 이루어진 세세한 묘사가 자극하는 상상력을 꼽는다. 적절한 이모티콘 사용은 분위기를 풀어주며 직관적으로 의사를 전달 할 수 있겠지만 남용하는 습관은 감정을 정확히 집어내어 표현하지 못하게 만든다. 연인과 이별한 슬픔을 어떻게‘ㅠㅠ’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ㄳ’ 두글자보단 ‘고맙다’는 말이 주는 울림이 더 크다. 언어가 모든 마음을 전하진 않는다. 온 몸이 무의식을 말하고, 시간이 진의를 전하며, 다채로운 이모티콘이 언어에 색을 더해준다. 상대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비언어를 들어라.언어라는 포장에 감춰진 진심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예신 기자 yesin979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목+내용 댓글 닉네임 쓰기 Prev 1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83 Next / 83 GO / 83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