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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한국문학의 위기론과 함께 ‘문학권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문학의 특권화’에 대한 저항과 ‘문학의 상업주의’ 비판이 주요한 논의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15년, 신경숙 작가의 표절 스캔들을 기점으로 다시금 문학권력이 문제의식으로 떠오르면서 문학계의 권력구조와 폐쇄성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전의 논쟁과 달리, 문학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문학이 상업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통념이, 불과 15년 만에 ‘낡은 편견’으로 치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계에 불어온 변화의 돌풍은 젊은 문예지 창간으로도 옮겨 붙었다. 고리타분하게 여겨져 대중들에게 좀처럼 읽히지 않던 기존의 문예지로부터, 드디어 탈피하게 된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 초심자부터 마니아까지, <미스테리아>
새로운 문예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2015년 6월 15일, 출판사 문학동네의 독립 브랜드인 ‘엘릭시르’가 내놓은 문예지 <미스테리아>이다. 제호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문예지이다. ‘미스테리아(Mysteria)’는 '미스테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의 합성어로, 영어권에서 '미스터리를 미칠 듯이 좋아하는 성향'을 일컫는 속어다.
그렇다곤 하지만 사실 <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를 미칠 듯이 좋아하지 않는 초심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범죄의 기운에 관한 발랄한 에세이 코너나,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위원으로 출연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유성호(법의학과) 교수가 실제 경험한 사건들을 법의학적 관점에서 기록하는 연재 코너처럼 이른 바 ‘진입장벽’이 낮은 콘텐츠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매니아들이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가 빈약하다고 느끼지만, 사실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해서 바라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나가는 기획, ‘미싱 링크’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한국의 미스터리 소설 연재만으론 만족하지 못하는 ‘미스테리아’들을 위해, 외국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해 소개해주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이렇듯 <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라는 장르 아래 수많은 틈새들을 매호 새로운 기획기사와 단편소설을 통해 샅샅이 탐색한다.
<미스테리아>의 성장을 기점으로, 그동안 국내 문학계에서 등한시되던 ‘장르 문학’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장르 문학이란 SFㆍ무협ㆍ판타지ㆍ추리ㆍ호러ㆍ로맨스 등 이전에는 ‘대중소설’로 통칭되던 소설의 하위 장르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인데, 코드나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다며 순문학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미스테리아>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이야기의 힘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확장이야말로 출판 시장에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답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는 <미스테리아> 포부를 증명하듯, 격월 발행되는 <미스테리아>는 매호 평균 3,000∼4,000부씩 판매되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미스테리아>가 그동안 독서를 통한 재미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소설을 위한, 소설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Axt>
같은 해 7월 8일, 출판사 ‘은행나무’에서는 문예지 <Axt(악스트)>를 선보였다. 격월 발행되는 <Axt>는 아트(Art)와 텍스트(Text)의 결합어이기도 하면서 독일어로는 ‘도끼’를 의미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한 문장에서 따온 제호다. 소설을 다루는 문예지이니만큼 편집위원들 역시 소설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학계 원로들이 많이 참여하는 기존의 문예지와는 달리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기존의 문예지에서 항상 다루던 시와 평론은 제하고, 오롯이 소설과 소설평에만 집중했다. 매호 국내 소설과 해외 소설을 각각 10종씩 선정해 소설 서평을 싣는데, 신간보다는 구간에 중점을 두어 주목받지 못한 채로 묻혀 있던 소설을 발굴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커버스토리에서는 매호 소설가 한 명의 작품들을 집중 조명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작가의 인터뷰나, 작가들의 일기를 게재하는 ‘일기 픽션’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밖에도 현재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소설가의 자전 산문과 최근작을 만나볼 수 있는 ‘바이오그래피(Biography)’ 면이나, 번역가가 원작자에 대해, 또 편집자가 번역가에 대해 말하는 ‘크로싱(Crossing)’ 기획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다양하고 색다른 구성으로 <Axt>는 매호 7,000부에서 10,000부가 판매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서평도 한몫 했겠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가격이다. 한 권의 가격이 겨우 2,900원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에 양질의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안의 고독을 일깨우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아직도 책이, 문학이 그런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도끼가 가장 먼저 쪼갤 것은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입니다”라는 <Axt>를 통해 즐거운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릿(Lit)’한 당신을 위한 <Littor>
2016년 8월 2일, 출판사 ‘민음사’는 1976년부터 지난 40년간 발행해오던 <세계의 문학>을 지난해 겨울호 158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고 문예지 <Littor(릿터)>를 창간했다. 이는 ‘문학’이라는 뜻의 ‘리트러처(literature)’의 어근(lit)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tor’을 붙인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제호다.
여기서 문학하는 사람이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글을 쓰고, 읽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민음사는 <Littor>를 글을 읽고 쓰는 ‘릿한’ 사람들을 위한 문예지라고 소개한다. 개성 있고 세련된 사람이나 사물에 ‘힙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듯이, ‘릿한’ 사람이란 활자를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Littor>는 크게 매호 특정 주제를 둘러싼 짧은 이야기들과 깊이 있고 학술적인 담론을 담은 커버스토리와, 여러 작가들의 산문ㆍ에세이ㆍ시ㆍ리뷰ㆍ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는 ‘쓰는 존재’와 ‘읽는 당신’ 이렇게 두 코너로 나뉘어 있는데, ‘쓰는 존재’에서는 말 그대로 쓰는 존재인 작가들을, ‘읽는 당신’에서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다. 이를테면 창간호의 ‘읽는 당신’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었다. 이러한 인터뷰이의 다양성은 새로운 독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을 읽어 왔던 이들에게는 즐거운 읽을거리가, 문학을 멀리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즐길 거리가 되고자 한다”는 민음사의 포부와 들어맞는 구성이다.
사실 <Littor>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집어든 이유를 ‘표지가 감각적이고 예뻐서’라고 말할 정도로 디자인이 압권이다. 매호 달라지는 주제를 그래픽이나 그림으로 담아낸 표지는 보기에도 좋고, 문예지로서의 진입 장벽을 확 낮춰준다.
세심한 디테일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연재소설의 경우 페이지를 넘길수록 종이의 바탕색이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점차 밝아진다. “끝을 향해 갈수록 선명해지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 보려 고민했다”는 박연미 북디자이너의 설명은,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의 외부 편집위원의 참여 없이 민음사의 젊은 편집자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 <Littor>의 큰 특징이다.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해내는 데에 주안점을 두던 기존의 문예지들과는 달리, 보다 독자 중심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처럼 젊은 감각의 새로운 문예지들을 통해 사람들이 문학과 조금 더 친해지고, 문학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당신도 올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심미성과 유용성 모두 갖춘, 젊은 문예지 한 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명 기자 wisemew@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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