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955 추천 수 0 댓글 1

10843_12649_3059.jpg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몇 해 전 봤던 연극 중, 제목이 잊히지 않는 연극이 있다. 바로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채 살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과거 상처에 갇힌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살고 있었다. 제목처럼 주인공의 시간은 전쟁 당시의 ‘오늘’에 멈춰있어, 전쟁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 뿐,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 보였다.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주인공은 번번이 삶의 주도권을 과거 기억에 내어주어야만 했다.

4~5월을 보내는 동안,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 제목이 떠올랐다. 줄거리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오늘’이라는 그 제목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왜 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 특정 기억의 수인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상을 준 특정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사건의 기억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거나 망각되기 마련이지만 트라우마적 기억에서는 외상을 준 사건이 잊히지 않고 오히려 뚜렷해질 때가 많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상실감과 상흔을 남겨준 사건들이 많았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 삶에는 숱한 생명들이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질 정도로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이에 대한 애도는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애도가 충분하지 않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트라우마적 기억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애도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애도 담론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애도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고 개인이 감정 통제를 통해 슬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함으로써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는 상실의 애도를 개인이 의지와 정신력을 통해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환원하였다. 또한 상실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은 은폐된 채 상실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 또는 문제적 성향에서 찾아 낸다거나 불가항력적인 우연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탈사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상실이 개인화되거나 개별화되면, 표면적으로는 다를지라도 그 이면에서 동일한 원인의 상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특히, 억울한 죽음의 경우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로 나서 망자가 죽은 원인을 파악하고 망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애도가 이뤄질 수 있다. 사회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함으로써 ‘오늘 또 오늘’의 악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오늘을 지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내일’의 서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86 동아리 모집 [건국대학교 인액터스]2017년 상반기 신입회원 모집 [1] file 12이승우 17.03.01 264
985 동아리 모집 [소모임] 스토리텔링 소모임 [2] file 건대솜 17.02.28 267
984 청심대 일상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리뷰 시작합니다 [5] 초라한 개구리 17.02.27 94
983 청심대 일상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리뷰 김노인의영화리뷰 17.02.27 41
982 동아리 모집 [중앙동아리] 중앙 서예동아리 건국서도회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 file 빼어날수고울연 17.02.27 288
981 KU 미디어 [ABS뉴스] 상경대 OT 기획단 성추행 논란 [9] file ABS 17.02.27 3698
980 청심대 일상 건대 초밥짓는원숭이 [7] 과감한 북방초원하늘소 17.02.27 417
979 동아리 모집 [중앙동아리] 건국대학교 공식 응원단 OX-K에서 신입단원을 모집합니다!! file 준희주늬 17.02.27 243
978 청심대 일상 찰리 카우프만 , 시네도키 뉴욕 리뷰 [2] 한가한 새우 17.02.27 51
977 KU 미디어 [보도] 상경대 성추행 사건으로 새터 전면취소... 학생회 “대학본부에서 일... [12] file 건대신문 17.02.26 5235
976 청심대 일상 코세척기 코코크린 [3] 건국엘리트 17.02.25 326
975 청심대 일상 신촌 닭갈비제작소 [4] 건국엘리트 17.02.25 340
974 동아리 모집 [중앙동아리] 기독교 동아리, IVF(아이브이에프) 에서 신입회원모집합니다!! [2] file 아벱퍼 17.02.24 244
973 청심대 일상 24번째 영화, 존 윅 - 리로드 (2017) [4] 김노인의영화리뷰 17.02.24 306
972 청심대 일상 허지웅 샤워기헤드(수압상승샤워기헤드) 리뷰 [6] 건국엘리트 17.02.24 1727
971 청심대 일상 공차 초코티라떼 비추.. [3] 달달호갱 17.02.24 199
970 청심대 일상 건대호야초밥 [8] 달달호갱 17.02.24 808
969 청심대 일상 23번째 영화, 문라이트 (2017) [9] 김노인의영화리뷰 17.02.23 129
968 청심대 일상 22번째 영화, 핵소 고지 (2017) [1] 김노인의영화리뷰 17.02.22 118
967 청심대 일상 21번째 영화, 싱글 라이더 (2017) [3] 김노인의영화리뷰 17.02.22 308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 129 Next ›
/ 129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