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736 추천 수 0 댓글 1

10843_12649_3059.jpg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몇 해 전 봤던 연극 중, 제목이 잊히지 않는 연극이 있다. 바로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채 살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과거 상처에 갇힌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살고 있었다. 제목처럼 주인공의 시간은 전쟁 당시의 ‘오늘’에 멈춰있어, 전쟁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 뿐,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 보였다.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주인공은 번번이 삶의 주도권을 과거 기억에 내어주어야만 했다.

4~5월을 보내는 동안,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 제목이 떠올랐다. 줄거리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오늘’이라는 그 제목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왜 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 특정 기억의 수인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상을 준 특정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사건의 기억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거나 망각되기 마련이지만 트라우마적 기억에서는 외상을 준 사건이 잊히지 않고 오히려 뚜렷해질 때가 많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상실감과 상흔을 남겨준 사건들이 많았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 삶에는 숱한 생명들이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질 정도로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이에 대한 애도는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애도가 충분하지 않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트라우마적 기억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애도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애도 담론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애도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고 개인이 감정 통제를 통해 슬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함으로써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는 상실의 애도를 개인이 의지와 정신력을 통해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환원하였다. 또한 상실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은 은폐된 채 상실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 또는 문제적 성향에서 찾아 낸다거나 불가항력적인 우연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탈사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상실이 개인화되거나 개별화되면, 표면적으로는 다를지라도 그 이면에서 동일한 원인의 상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특히, 억울한 죽음의 경우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로 나서 망자가 죽은 원인을 파악하고 망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애도가 이뤄질 수 있다. 사회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함으로써 ‘오늘 또 오늘’의 악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오늘을 지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내일’의 서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18 자유홍보 루아다 가방제작학원에서 20기 수강생모집합니다. wpalsl 13.03.13 926
317 자유홍보 [한국관광공사] 대학생 관광기자단 트래블리더 5기 모집 트래블리더 13.03.13 916
316 자유홍보 14일이면한자2급딴다!교내서용현한자특강 서용현한자 13.03.13 1576
315 자유홍보 ★삼성전자 I-Creator 4기★를 모집합니다!(~17일까지) [1] icreator 13.03.13 1162
314 자유홍보 토스.. [2] 이요우 13.03.12 563
313 자유홍보 KUSPA 단편소설 공모전에 참여하세요!! 임지수 13.03.12 1028
312 자유홍보 피아노 연습실 같이 알아보실(공유하실) 분 [7] 안녕하십쇼 13.03.12 881
311 자유홍보 국가공인한자시험 합격비법] 새로운 놀이터로 오세요~!! [1] 슈파더 13.03.12 1018
310 자유홍보 역발산 헬스장 같이 등록하실분~^^ 미지의사나이 13.03.12 576
309 자유홍보 ♥ 사랑이 넘치는 동아리, 한일학생교류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KJSE 13.03.12 945
308 자유홍보 건대근처 헬스 등록 같이 하실 학우분을 구합니다~(같이 등록하면 할인이 되... [1] 미지의사나이 13.03.12 864
307 자유홍보 뉴발란스 프리미엄 슈즈 hs77 로 코디하는 남자 봄패션에 어울리는 신발 [1] 임순화 13.03.12 1666
306 자유홍보 기분좋은 학생이사 전문 yongdal24 13.03.12 1109
305 자유홍보 대학생성경읽기모임(UBF) 신입생을 위한 모임 소개 시간 좋은열매 13.03.12 942
304 자유홍보 [차세대 HR 아카데미]저희와 함께 활동을 해 나갈 열정적이고 책임감있는 사... 알고보니못된 13.03.12 1268
303 동아리 모집 대학생이면 다룰줄아는 악기 하나는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건국대학교 클래... [17] 건대뮤즈 13.03.11 3833
302 청심대 일상 자린고비 [115] file 컹컹컹 13.03.11 3674
301 자유홍보 혹시 오픽이나 토스 공부하실 분 안 계신가요? 여대환 13.03.11 804
300 자유홍보 건국대 전화영어 스터디 모집합니다!! 엔씨 13.03.11 954
299 동아리 모집 K.U.S.A 한국유네스코학생협회 2013년 51기를 모집합니다! [3] 깝규 13.03.11 1745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00 601 602 603 604 605 606 607 608 609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