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719 추천 수 0 댓글 1

10843_12649_3059.jpg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몇 해 전 봤던 연극 중, 제목이 잊히지 않는 연극이 있다. 바로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채 살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과거 상처에 갇힌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살고 있었다. 제목처럼 주인공의 시간은 전쟁 당시의 ‘오늘’에 멈춰있어, 전쟁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 뿐,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 보였다.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주인공은 번번이 삶의 주도권을 과거 기억에 내어주어야만 했다.

4~5월을 보내는 동안, ‘오늘 또 오늘’이라는 연극 제목이 떠올랐다. 줄거리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오늘’이라는 그 제목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왜 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 특정 기억의 수인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상을 준 특정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사건의 기억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거나 망각되기 마련이지만 트라우마적 기억에서는 외상을 준 사건이 잊히지 않고 오히려 뚜렷해질 때가 많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사람들에게 상실감과 상흔을 남겨준 사건들이 많았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 삶에는 숱한 생명들이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질 정도로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의 이미지들은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이에 대한 애도는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애도가 충분하지 않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트라우마적 기억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애도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애도 담론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애도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고 개인이 감정 통제를 통해 슬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취급함으로써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는 상실의 애도를 개인이 의지와 정신력을 통해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환원하였다. 또한 상실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은 은폐된 채 상실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 또는 문제적 성향에서 찾아 낸다거나 불가항력적인 우연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탈사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상실이 개인화되거나 개별화되면, 표면적으로는 다를지라도 그 이면에서 동일한 원인의 상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특히, 억울한 죽음의 경우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애도 주체로 나서 망자가 죽은 원인을 파악하고 망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애도가 이뤄질 수 있다. 사회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애도함으로써 ‘오늘 또 오늘’의 악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오늘을 지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내일’의 서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지혜 상허교양대학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227 동아리 모집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건국대 모임을 소개합니다. ^^ [6] file 김무석 13.03.01 2697
12226 자유홍보 [알바]공부방 감독관을 구합니다(자기공부시간 충분히 확보). 짬뽕 13.03.01 1519
12225 자유홍보 각종 취업자소서 첨삭 정보 입니다 양작 13.03.02 1365
12224 자유홍보 [마케팅리베로] 대학생 리얼 마케팅 소사이어티, "마케팅 리베로" 16기 모집! 북곽선생 13.03.02 1418
12223 자유홍보 [오감도] 오감만족 서울경기연합 여행동아리 오감도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 [1] 오감도 13.03.02 1266
12222 자유홍보 하숙집 소개해 드립니다 몽e 13.03.02 2176
12221 자유홍보 [서울/경기 연합 동아리]생명, 환경동아리 소자운 회원을 모집합니다^_^ 청년대세 13.03.02 1153
12220 자유홍보 2013년 취업준비전략 3월 1차 공개설명회 초코회오리 13.03.02 1140
12219 자유홍보 [20세상 청년국토대장정단] 2013년도 하계 국토대장정, 제주도 대종주 대원 ... 국토보이 13.03.02 2094
12218 자유홍보 [인터넷양도,이전비 지원] 계약약정 1년 6개월 남은 KT인터넷 양도합니다. 김아나 13.03.02 1408
12217 자유홍보 [교육봉사] Project TEACH 3기 멘토 모집! 아으으아 13.03.02 1213
12216 자유홍보 사트 스터디 모집합니다. 화학과학 13.03.03 797
12215 자유홍보 [대학연합레저스포츠] 연합동아리 유니트에서 신입모집합니다~ 유니트 13.03.03 1470
12214 자유홍보 국가공인한자시험 필승합격 로드맵~!! 이지승 13.03.03 1524
12213 자유홍보 2013년 대학생성경읽기모임 신입생을 위한 모임 소개 [1] 좋은열매 13.03.03 1678
12212 자유홍보 ★★서울경기연합★★여행동아리★★오감도★★당신은 특별한 동아리를 할 자격이 있... [1] 오감도 13.03.03 1322
12211 자유홍보 공무원 영어 / 출석형 스터디 (아침 8시 30분) 신우진 13.03.04 825
12210 자유홍보 행사&모임 스폰서쉽 찾고 계신가요? 스폰북 13.03.04 1672
12209 자유홍보 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1] Lee효리 13.03.04 1308
12208 자유홍보 [아이온유,EyeOnYou]봄을 위한 선글래스와 RED패션 [1] 임순화 13.03.04 1718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621 Next ›
/ 621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