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여성주연, 또 다른 흐름의 시작
여성주연영화의 흥행, 편견을 딛고 새로운 판을 짜다
최근 극장에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을 움직인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 배우들이 포스터의 중앙을 차지하는 영화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 주목받은 한국영화들만 해도 ‘아가씨’, ‘마녀’, ‘미쓰백’ 등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여성주연영화에서도 나타나게 됐다. 특히 최근 개봉작 중 단지 여성주연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논란이 되었던 ‘걸캅스’는 우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개봉 3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남성 위주였던 범죄 액션 버디물에서 여성 투톱 주연으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국영화의 4대 배급사 중 하나인 CJ가 이 영화를 택했을 만큼 여성주연영화의 흥행 흐름은 점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외면해오던 영화계가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여성 주연 영화, 그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18-19년 개봉한 다양한 한국 여성주연영화들/출처 네이버 영화 |
‘여성주연영화의 흥행은 어렵다’는 건 옛말!
예전부터 여성주연영화를 두고 흥행하긴 글렀다며 혀를 차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영화사업의 구조를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동안 일 년에 몇 백 편에 달하는 개봉영화 중 여성주연, 또는 여성서사영화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영화 관계자들도 하나 둘 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여성주연영화도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유명 히어로물 시리즈인 마블에서 제작한 첫 여성 주연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이 1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한 대기록을 세웠던 점이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됐다. 저예산 영화 ‘미쓰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영화 시상식의 상을 휩쓸며 놀라운 기록을 남겼던 점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또한 작년 12월, 미국 최고 매니지먼트업체 ‘CAA’와 영화기술업체 ‘Shift7’의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2017년 전 세계흥행 실적기준 상위권 할리우드 영화 350편 중 총 105편에 불과한 여성주연영화가 245편에 달하는 남성주연영화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제작비 1억 달러 이상 영화에 해당하는 19편의 여성주연영화가 75편의 남성주연영화보다 평균 흥행수입 7200만 달러를 더 벌었으며, 그보다 저예산 제작비인 영화에서도, 제작비 1000만 달러 이상의 영화에서도 여성주연영화가 남성주연 영화에 비해 더 높은 평균 흥행수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주연영화가 돈이 되지 못한다는 말은 이제 구닥다리 옛말에 불과하다. 흐름을 읽어야 수익을 창출하는 법, 이제는 영화계도 바뀔 때가 된 것이다.
2014-2017년 흥행 할리우드 영화 중 여성·남성주연영화의 수익비교/출처 주간동아 19.01.14 기사 |
관객의 힘, 새로운 관람문화를 만들어내다
당장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영화 제작, 투자자들은 여성주연영화 시나리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영화 ‘미쓰백’은 주인공을 남성으로 바꾸면 투자해주겠다는 투자자들이 많아 개봉에 난항을 겪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 실상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여성주연영화 산업 구조를 여실히 느낀 관객들이 모여 새로운 관객문화를 만들어 내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영혼 보내기’ 운동이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힘들게 개봉한 여성주연영화임에도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타 영화에 비해 영화관 수나 시간대가 턱없이 부족해 관객 수가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 관객들이, 그에 대한 연대와 응원의 의미로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상영시간의 영화표를 예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객들의 수많은 응원과 노력으로 영화는 70만이라는 손익분기점을 달성했고 이 운동은 또 다른 여성주연영화인 ‘걸캅스’로까지 이어졌다.
'영혼 보내기' 관객문화 보도사진/출처 19.05.14 연합뉴스TV 보도자료 |
일각에서는 이 운동을 ‘사재기’라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실상 관객이 이 영화의 흥행으로 이윤을 얻는 건 하나도 없기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이는 오히려 문화 다양성을 위한 관객들의 주체적 소비라고 볼 수 있으며 그저 새로운 관객들의 응원문화일 뿐이다. 이에 대해 감독과 배우 역시 감사의 의미를 표하며 감동을 더했고, 나아가 영화가 받게 된 수많은 상이 그의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여성주연영화가 특별하고, 여성주연영화만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 수많은 여성배우들이 갱스터 장르의 Gun-moll 역할이나 드라마 장르의 어머니, 아내, 또는 조연 역할에만 국한한 것이 아쉬웠기에, 보다 다양한 영화 속 여성캐릭터의 등장을 염원했기에 더 많은 여성주연영화의 등장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남성주연물이 만연하던 범죄액션영화나 히어로 장르에 여성주연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 듯, 앞으로 극장계는 또 다른 여성주연영화들이 계속해서 더 다양하게 등장할 것이다. 더 이상 여성주연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지 않아도 될 그 날이 올 때까지, 수많은 응원과 연대,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가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장예빈 기자 dpqls18@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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