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73 추천 수 0 댓글 1

 

10736_12591_4634.jpg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나는 지금 ‘생각하기/이해하기’라는 1학년 수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학사 커리큘럼이 개편되며 새로 생긴 과목인지라, 스타트를 끊는 입장에서 나름의 수업 목표를 설정해봤다. ‘디자인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인문 지식을 습득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 필드에 실제 출현한 디자인 작업의 생애를 정리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공포심을 해소한다.‘

말이야 쉽지! 조형 능력을 갈고닦기에도 시간이 늘 부족한 신입생이 잠시라도 언어로 사고하는 기회를 갖고, 글을 매개로 감각과 의견을 명징하게 전개하는 시도를 통해, 훗날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길 소박하게 소망 중이다.

얼마 전 디자인 다큐멘터리 3부작을 보여주고 감상문 세 편으로 중간고사를 대체했다. 오타나 비문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다큐멘터리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밝히라 종용하며 감상문을 받았다. 186편을 채점한 후 전체적인 결과를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흐름이 포착됐다. 경험이 많아 유리할 거라 생각했던 고학년보다 갓 들어온 신입생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이다.

원인은 바로 솔직함이었다. 1학년은 의식의 흐름을 적거나, 편지처럼 의견을 말하고, 좋고 싫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등 형식은 중구난방이었지만 내용 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감정, 경험, 생각, 교훈에 이르기까지 아주 명확하고 정직하게 내뱉는 반응은 무척 신선했다. 정형화된 감상문에서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고학년은 형식 면에서 정갈하고 유려했지만 생기가 없는 글이 자주 보였다. 신입생과 1년 차이인 18학번에서도. 심지어 다큐멘터리 자막을 모아 기술적으로 재배열한 경우까지 있었다.

어쩌면 나는 한국 고등교육의 큰 비밀을 엿본 것일까.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들어와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동화되는 데 1년이면 차고 넘친다는 사실 말이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학점을 체크하며, 어느새 ‘눈치’와 ‘노하우’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주관과 목소리는 얼마나 쉽고 허무하게 사그라드는가. 자유롭기로 학교 대표 격인 디자인학과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면, 과연 다른 단과대학은 어느 상황일지 감히 생각하기도 두렵다.  

사람들은 요즘 대학생이 너무도 자유분방하다 흉보지만, 어쩌면 진실로 자유로운 순간은 입학 이후 단 몇 개월일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샘솟는 곳에 미리 우물을 파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땅은 굳어 단단해지고 훗날 순수한 주관을 퍼올리기란 영영 힘들어진다. 지식과 지혜, 스킬과 노하우 모두 좋지만, 새내기에게 정말 필요한 건 거칠고 서툴지라도 비정형적 사고의 틀을 자유롭게 유지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유의 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독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38 자유홍보 2013년 취업준비전략 3월 4차 공개설명회 초코회오리 13.03.16 968
337 자유홍보 [KUSPA 단편소설 공모전]에 참가하시고 아이패드 타가세요! 임지수 13.03.16 724
336 동아리 모집 강연동아리 레뮤제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3] 카카오당 13.03.15 1323
335 자유홍보 [위자드웍스] 위자드웍스 마법학교 4기를 뽑습니다! (~3/26) wzd 13.03.15 920
334 자유홍보 오니츠카타이거 멕시코 66이 아닌 희귀 슈즈 ULTIMATE TIGER CLASSIC shot [1] 임순화 13.03.15 966
333 대외활동 수도권 4년제 대학생 연합 동아리, 시각장애학생 교육봉사동아리 "참우리"에... [1] file 이숭기 13.03.15 498
332 자유홍보 영어 회화!! 스터디 하실분!! [1] 파크애비뉴 13.03.15 522
331 자유홍보 대학생 공모전&대외활동 관심있는 후배님들~ 레골라스 13.03.14 962
330 자유홍보 [오늘마감]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1] Lee효리 13.03.14 964
329 자유홍보 [건대후문] 스터디룸 채움입니다!!! 채움 13.03.14 855
328 자유홍보 오니츠카타이거 멕시코66이 아닌 JAVELIN 미발매 모델 시리즈 [1] 정충무 13.03.14 848
327 자유홍보 [봉사활동] 새학기 농촌봉사활동단 모집! (~3/15) 요정 13.03.14 978
326 자유홍보 공인2급 한자자격증 10일만 준비하라~~ 강추~!!!!! [1] 이지승 13.03.13 1575
325 자유홍보 대학생 인턴기자 모집합니다! 소나기업 13.03.13 873
324 자유홍보 [Crowd Media Flatcle] 대학생 인턴기자 모집 소나기업 13.03.13 824
323 자유홍보 데드스탁 오니츠카타이거 멕시코66 Limited Version 수집하다. [1] 임순화 13.03.13 1020
322 자유홍보 대학생이 해야할 101가지! 대학연합동아리 일루젼에서 13년 신입회원을 모집... file 매지션 13.03.13 914
321 대외활동 20대에 해야할 101가지, 대학연합동아리 일루젼에서 13년 신입회원을 모집합... [1] file 매지션 13.03.13 663
320 청심대 일상 춘천골 [98] file 문화국 13.03.13 2480
319 자유홍보 제 1회 KU 리그오브레전드 배틀 file 이정태 13.03.13 1160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599 600 601 602 603 604 605 606 607 608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