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47 추천 수 0 댓글 1

 

10736_12591_4634.jpg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나는 지금 ‘생각하기/이해하기’라는 1학년 수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학사 커리큘럼이 개편되며 새로 생긴 과목인지라, 스타트를 끊는 입장에서 나름의 수업 목표를 설정해봤다. ‘디자인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인문 지식을 습득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 필드에 실제 출현한 디자인 작업의 생애를 정리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공포심을 해소한다.‘

말이야 쉽지! 조형 능력을 갈고닦기에도 시간이 늘 부족한 신입생이 잠시라도 언어로 사고하는 기회를 갖고, 글을 매개로 감각과 의견을 명징하게 전개하는 시도를 통해, 훗날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기반을 다질 수 있길 소박하게 소망 중이다.

얼마 전 디자인 다큐멘터리 3부작을 보여주고 감상문 세 편으로 중간고사를 대체했다. 오타나 비문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다큐멘터리 내용을 충실히 요약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밝히라 종용하며 감상문을 받았다. 186편을 채점한 후 전체적인 결과를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흐름이 포착됐다. 경험이 많아 유리할 거라 생각했던 고학년보다 갓 들어온 신입생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이다.

원인은 바로 솔직함이었다. 1학년은 의식의 흐름을 적거나, 편지처럼 의견을 말하고, 좋고 싫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등 형식은 중구난방이었지만 내용 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감정, 경험, 생각, 교훈에 이르기까지 아주 명확하고 정직하게 내뱉는 반응은 무척 신선했다. 정형화된 감상문에서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고학년은 형식 면에서 정갈하고 유려했지만 생기가 없는 글이 자주 보였다. 신입생과 1년 차이인 18학번에서도. 심지어 다큐멘터리 자막을 모아 기술적으로 재배열한 경우까지 있었다.

어쩌면 나는 한국 고등교육의 큰 비밀을 엿본 것일까.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들어와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동화되는 데 1년이면 차고 넘친다는 사실 말이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학점을 체크하며, 어느새 ‘눈치’와 ‘노하우’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주관과 목소리는 얼마나 쉽고 허무하게 사그라드는가. 자유롭기로 학교 대표 격인 디자인학과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면, 과연 다른 단과대학은 어느 상황일지 감히 생각하기도 두렵다.  

사람들은 요즘 대학생이 너무도 자유분방하다 흉보지만, 어쩌면 진실로 자유로운 순간은 입학 이후 단 몇 개월일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샘솟는 곳에 미리 우물을 파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땅은 굳어 단단해지고 훗날 순수한 주관을 퍼올리기란 영영 힘들어진다. 지식과 지혜, 스킬과 노하우 모두 좋지만, 새내기에게 정말 필요한 건 거칠고 서툴지라도 비정형적 사고의 틀을 자유롭게 유지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유의 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독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전종현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287 자유홍보 노래가 하고싶은자! 노래가 좋은자! 오라 파랑새로~ 파랑새다 13.02.20 1377
12286 자유홍보 "대한민국 한자교육은 지금 보이스한자로 通한다" 슈빠 13.02.20 2924
12285 자유홍보 [점프해커스] 대학생 멘토&통신원 17기 모집 (~2/20) 뀨뀨뀨뀨 13.02.20 1430
12284 자유홍보 대학 연합 주식경제동아리 '위닝펀드' 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1] 위닝펀드 13.02.20 2085
12283 자유홍보 영어회화를 잘하고 싶다? TnBL로 오세요!!! 퓨퓨 13.02.20 1527
12282 자유홍보 2013 제3회 새내기 콘서트에서 새내기 기획단을 모집합니다. 소켄비 13.02.21 2258
12281 자유홍보 트렌치코트와 2~30대 코디하는 아디다스 가젤인도어 코발트블루,벤셜먼트렌... [1] 임순화 13.02.21 3104
12280 자유홍보 음악을 즐기는 당신만을 위한 축제! 2B1에서 당신을 초대합니다! 크리티커르 13.02.21 1402
12279 자유홍보 ★★★★★ 루아다 가방제작학원에서 20기 수강생모집합니다. ★★★★★ wpalsl 13.02.21 1193
12278 자유홍보 [대외활동 추천]비너스 공식 서포터즈 3기 모집 중이에요~(~3/1) 레몬차 13.02.21 1452
12277 자유홍보 [모집] 신한금융투자 대학생 서포터즈 5기 모집(~3/3) 본사 인턴십, 공채 서... 신한금융투자 13.02.21 1634
12276 자유홍보 건대후문 스터디룸 채움입니다~ 채움 13.02.21 1447
12275 자유홍보 frm 스터디 구합니다! 쉬랭이 13.02.21 920
12274 자유홍보 ▶▶고등학생대상전공PT 동아리 wemajor 신입회원 모집!!◀◀ 강냉이 13.02.21 1448
12273 대외활동 ▶▶고등학생대상전공PT 동아리 wemajor 신입회원 모집!!◀◀ 강냉이 13.02.21 689
12272 자유홍보 2013년에 신입생이 되신 13학번 대상으로 입학사정관제 설문조사 실시합니다. 곰지에용 13.02.22 2639
12271 자유홍보 발표토론연합동아리 L.E.T 신입기수 모집 얼음물 13.02.22 1501
12270 자유홍보 퓨마 디스크블레이즈 봄을 위한 신발로 선택하다. [1] 임순화 13.02.22 2767
12269 자유홍보 2013년 취업준비전략 3월 1차 공개설명회 초코회오리 13.02.23 2077
12268 자유홍보 [ASUS] ASUS 글로벌 대학생 프로젝트 'ACE' 3기를 모집합니다! (~3/10) 북곽선생 13.02.24 1451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621 Next ›
/ 621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