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559 추천 수 0 댓글 2

 

10584_12555_5857.jpg
정명수 (이과대·물리18)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 왔다. 처음에는 조그만 손에 비해 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게 놀라웠다. 누른 음들 하나하나가 모여 예쁜 선율을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는 내게 특기나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었다. 워낙 재능이 없다 보니 한 곡을 완벽하게 치기 위해선 지루한 연습을 한참 동안 해야 했고, 이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갈수록 메말라갔다. 매주 한 번씩 있는 레슨을 위해 한 시간도 연습하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어머니는 결국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피아노 레슨을 끊어버렸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더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신났다. 하지만 점차 헛헛한 감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란 악기에 내 마음의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다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은 점점 많아 졌지만,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피아노가 내게 쉼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대학과 미래에 대해 분주했던 내 모습, 답답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대학에 올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의 새 학기, 어느 동아리를 들어갈까 살피던 중 피아노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덴 경탄할 만큼 피아노에 자신의 ‘혼’을 쏟으면서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전히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나도 그들처럼 내 감정을 더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연습량이 늘었다. 일 년이 끝날 즈음이 되니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능숙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학업, 대인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지칠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줬음은 물론이다.

음악이 없는 삶과 있는 삶은 다르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삶과 만들어내는 삶은 또 다르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감성을 가지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희열은 한 번 느끼면 끊기 어렵다. 또한 악기는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지금 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점과 스펙을 쌓을 걱정에 사는 것이 힘겹다면, 혹은 말하지 못할 슬픔이나 분이 마음에 있다면 하나쯤 악기를 연습해 보자. 처음엔 연습과 비례하지 않는 실력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들여 음악 그리고 악기와 가까워진 만큼,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명수(이과대·물리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06 건대교지 [카드뉴스] 금서와 고전 사이 [51] file 건대교지 17.01.14 13178
905 건대교지 [카드뉴스] 아껴보고 나눠보고 바라보고 다시보자 건국대학교 [52] file 건대교지 17.01.14 14072
904 건대교지 [카드뉴스] 에그머니나! 계란 값이?! [63] file 건대교지 17.01.14 13996
903 건대교지 [카드뉴스] 남성용 피임약, 언제 나올까? [41] file 건대교지 17.01.14 14450
902 건대교지 [카드뉴스] 학생들은 쓰지 못하는 주차 [51] file 건대교지 17.01.14 13183
901 청심대 일상 영화리뷰 041. 너브 (2017) [1] 김노인의영화리뷰 17.01.12 83
900 청심대 일상 영화리뷰 040. 얼라이드 (2017) [4] 김노인의영화리뷰 17.01.12 76
899 청심대 일상 영화리뷰 039. 모아나 (2017) [4] 김노인의영화리뷰 17.01.12 154
898 KU 미디어 [Campus Life] Click the Information About Unique Clubs in KU [26] file 영자신문 17.01.10 2962
897 청심대 일상 고기한판 [4] 잘생긴놈 17.01.09 171
896 청심대 일상 영화 마스터 [1] 잘생긴놈 17.01.09 46
895 청심대 일상 맥가이버 [1] 티리스미나 17.01.06 59
894 청심대 일상 셜록 시즌4 1화 [3] secret 티리스미나 17.01.06 69
893 청심대 일상 신비한 동물사전 [2] secret 티리스미나 17.01.06 65
892 청심대 일상 라라랜드 [9] 티리스미나 17.01.06 95
891 청심대 일상 패신져스 [1] 티리스미나 17.01.06 172
890 청심대 일상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 리뷰 [1] 절묘한 섬참새 17.01.06 54
889 KU 미디어 [Interview] Food for Art [18] file 영자신문 17.01.05 2787
888 KU 미디어 [기획] 방학은 문학과 함께 어때요? ‘낡은 편견’ 깨뜨리는 ‘젊은 문예지’ [10] 건대신문 17.01.05 2942
887 KU 미디어 [칼럼] 보이지 않는 시간 지키기 [14] 건대신문 17.01.05 2867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 129 Next ›
/ 129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