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악기를 다룬다는 것
정명수 (이과대·물리18) |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 왔다. 처음에는 조그만 손에 비해 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게 놀라웠다. 누른 음들 하나하나가 모여 예쁜 선율을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는 내게 특기나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었다. 워낙 재능이 없다 보니 한 곡을 완벽하게 치기 위해선 지루한 연습을 한참 동안 해야 했고, 이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갈수록 메말라갔다. 매주 한 번씩 있는 레슨을 위해 한 시간도 연습하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어머니는 결국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피아노 레슨을 끊어버렸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더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신났다. 하지만 점차 헛헛한 감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란 악기에 내 마음의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다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은 점점 많아 졌지만,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피아노가 내게 쉼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대학과 미래에 대해 분주했던 내 모습, 답답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대학에 올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의 새 학기, 어느 동아리를 들어갈까 살피던 중 피아노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덴 경탄할 만큼 피아노에 자신의 ‘혼’을 쏟으면서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전히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나도 그들처럼 내 감정을 더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연습량이 늘었다. 일 년이 끝날 즈음이 되니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능숙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학업, 대인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지칠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줬음은 물론이다.
음악이 없는 삶과 있는 삶은 다르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삶과 만들어내는 삶은 또 다르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감성을 가지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희열은 한 번 느끼면 끊기 어렵다. 또한 악기는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지금 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점과 스펙을 쌓을 걱정에 사는 것이 힘겹다면, 혹은 말하지 못할 슬픔이나 분이 마음에 있다면 하나쯤 악기를 연습해 보자. 처음엔 연습과 비례하지 않는 실력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들여 음악 그리고 악기와 가까워진 만큼,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명수(이과대·물리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잘 읽었습니다
-
?
잘 읽었습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번호 | 게시판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
---|---|---|---|---|---|
11285 | 청심대 일상 | 인디고 | 커피젤리 | 17.10.13 | 31 |
11284 | 청심대 일상 | 피시방 비교 이스포츠 vs 비원 [2] | 갓성원 | 17.10.13 | 372 |
11283 | 청심대 일상 | 겨울나그네 옆 welbeck | 개구리언 | 17.10.13 | 88 |
11282 | 청심대 일상 | 중문 앞 크레페 [2] | Bella | 17.10.12 | 78 |
11281 | 청심대 일상 | 중문 신호등 바로 앞 하노이별 [2] | 다부진 회색여우 | 17.10.12 | 98 |
11280 | 청심대 일상 | 중문 앞 1분거리 능동샐러드 [5] | 다부진 회색여우 | 17.10.12 | 194 |
11279 | 청심대 일상 | [돼나무숲 요정의 스물일곱번째 먹부림] 중문 내가찜한닭 [2] | 돼나무숲 | 17.10.12 | 354 |
11278 | 청심대 일상 | 유자유 김치떡볶이 [5] | 외용 | 17.10.11 | 465 |
11277 | 청심대 일상 | 페리페라 심쿵유발 [7] | 영니 | 17.10.10 | 1246 |
11276 | 청심대 일상 | 카더가든 홀리데이 [1] | 영니 | 17.10.10 | 126 |
11275 | 청심대 일상 | 꼬꼬아찌 소금구이! [3] | 누야곰 | 17.10.10 | 358 |
11274 | KU 미디어 | [REAL KU] 건국대의 전설엔 무엇이 있을까요? [12] | ABS | 17.10.08 | 4073 |
11273 | 청심대 일상 | 건대로데오 밥집후기 [10] | 뀨뀨규규규규귱 | 17.10.08 | 354 |
11272 | 청심대 일상 | [남자버전] 볼빨간사춘기 앨범 <Red Diary Page.1> 추천! | 워크맨 | 17.10.07 | 58 |
11271 | 청심대 일상 | 밤도깨비에 나왔던 강릉 꼬막맛집!!! [3] | 답답한 니코바땅비둘기 | 17.10.06 | 242 |
11270 | 청심대 일상 | 소금조차 넣고 싶지 않은 영화. <남한산성> [5] | 워크맨 | 17.10.04 | 146 |
11269 | 청심대 일상 | 건대 중문 뒤 명랑핫도그 후기! [1] | 의젓한 코브라 | 17.10.04 | 345 |
11268 | 청심대 일상 | 긱사 쪽문쪽 은하식당 [2] | 크사이다 | 17.10.04 | 162 |
11267 | 청심대 일상 | 정문 고돌이국밥 | 크사이다 | 17.10.03 | 79 |
11266 | 청심대 일상 | 나의 소녀시대 | 다솜S2 | 17.10.03 | 55 |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