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544 추천 수 0 댓글 2

 

10584_12555_5857.jpg
정명수 (이과대·물리18)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 왔다. 처음에는 조그만 손에 비해 큰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는 게 놀라웠다. 누른 음들 하나하나가 모여 예쁜 선율을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아노는 내게 특기나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었다. 워낙 재능이 없다 보니 한 곡을 완벽하게 치기 위해선 지루한 연습을 한참 동안 해야 했고, 이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갈수록 메말라갔다. 매주 한 번씩 있는 레슨을 위해 한 시간도 연습하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어머니는 결국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 피아노 레슨을 끊어버렸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더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신났다. 하지만 점차 헛헛한 감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란 악기에 내 마음의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다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은 점점 많아 졌지만,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피아노가 내게 쉼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대학과 미래에 대해 분주했던 내 모습, 답답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대학에 올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의 새 학기, 어느 동아리를 들어갈까 살피던 중 피아노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덴 경탄할 만큼 피아노에 자신의 ‘혼’을 쏟으면서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전히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나도 그들처럼 내 감정을 더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연습량이 늘었다. 일 년이 끝날 즈음이 되니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능숙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학업, 대인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지칠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줬음은 물론이다.

음악이 없는 삶과 있는 삶은 다르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삶과 만들어내는 삶은 또 다르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감성을 가지고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희열은 한 번 느끼면 끊기 어렵다. 또한 악기는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지금 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점과 스펙을 쌓을 걱정에 사는 것이 힘겹다면, 혹은 말하지 못할 슬픔이나 분이 마음에 있다면 하나쯤 악기를 연습해 보자. 처음엔 연습과 비례하지 않는 실력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시간을 들여 음악 그리고 악기와 가까워진 만큼,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명수(이과대·물리18)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1738 KU 미디어 [보도]비흡연권을 위한 흡연구역·부스 설치 ‘미흡’ [3] 건대신문 18.06.07 3808
11737 KU 미디어 [보도]2018 문과대 학생회장 보궐선거, 단독출마한 <모.모> 92% 지지... [3] 건대신문 18.06.07 2335
11736 KU 미디어 [보도]“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대학농구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진광 선... [2] 건대신문 18.06.07 3746
11735 KU 미디어 [보도]실험실습 만족하십니까? - 공과대학 편 [4] 건대신문 18.06.07 1961
11734 KU 미디어 [보도]대동제 공연 MC, '미투 운동' 농담 소재로 사용해 논란 [2] 건대신문 18.06.07 1638
11733 KU 미디어 [보도]2018 상반기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 개최‘-가날지기'‘KLOSET'새로 인준... [1] 건대신문 18.06.07 1773
11732 KU 미디어 [보도]우리대학 윤대진 연구팀, ‘식물이 추위를 견디는 원리 규명’ [3] 건대신문 18.06.07 1730
11731 KU 미디어 [사설]상허 정신 되돌아보기 [1] 건대신문 18.06.07 1395
11730 KU 미디어 [사설]2018년 5월이 갖는 의미 [1] 건대신문 18.06.07 1348
11729 KU 미디어 [칼럼]‘여성 단독 산행 자제’ 유감 [1] 건대신문 18.06.07 1210
11728 KU 미디어 [칼럼]태움, 사회적 죽음 [2] 건대신문 18.06.07 1672
11727 KU 미디어 [칼럼]위로 [1] 건대신문 18.06.07 1209
11726 KU 미디어 [여행]신짜오(Xin chào) 하노이!-호안끼엠 호수에 비춰진 한국 [1] 건대신문 18.06.07 1955
11725 KU 미디어 [문화]랭면과 평화 [1] 건대신문 18.06.07 1104
11724 KU 미디어 [시사]우리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누가 나오나?-광진구청장 후보 인터뷰 [1] 건대신문 18.06.07 1165
11723 건대교지 웹툰 <아기낳는만화>, 임신을 밝히다 [119] file 건대교지 18.06.06 5612796
11722 건대교지 한미정상회담 외교 결례 논란, 그 전말은? [66] file 건대교지 18.06.06 5594438
11721 리뷰게시판 구의 불막창 [1] bboqndqnd 18.06.06 180
11720 리뷰게시판 가츠시 [3] whateva 18.06.03 248
11719 리뷰게시판 호야에서 썩은회먹음 [12] 테아 18.05.30 952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