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99_12492_2437.jpg
조은평 문과대 철학과 강사

모교인 건국대에서 수업을 할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무겁다. 10년 내내 강사료가 49,700원이여도, 또 4대 보험과 6학점 강의를 보장해준다며 강사료를 6개월로 쪼개주는 기형적인 형태로 초빙교수를 뽑을 때도 아무 말 못했던 나. 심지어 성적입력이 늦을 경우 강사에게만 유독 가혹하게 1년 간 강의금지라는 조항을 신설할 때도 가만있었고, 그 대가가 부메랑처럼 마침 독감에 걸려 입력이 하루 늦은 내게 되돌아왔을 때도 머릿속으로만 저항하며 안으로 골병들어가던 내 모습이 죄책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철학자 랑시에르는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을 확보하는 문제가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몫이 없던 자들이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을 요구하면서 기존의 안정화된 제도적 질서를 비집고 비로소 ‘정치’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늘 정치철학은 안정화된 정치질서를 유지하려고 실제로는 몫이 없는 자들이 나름의 몫을 누리고 있다고 여기도록 잘못된 셈법을 고안해왔지만 말이다.

이런 지적은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대학이라는 작은 단위의 사회만 보더라도 이 말은 여전히 진실이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 과연 대학의 구성원들은 모두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을 지니고 있을까? 정말 그럴까?

내년 시행될 강사법에 대비해 이미 대학들은 강좌수를 줄이거나 대형강의로 통폐합하고, 졸업학점을 줄이면서 시간강사를 대량해고하는 전략에 돌입한 것 같다. 강좌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면서도 전체 강좌비용의 1~3% 정도만 지불되는 강사의 인건비. 그런데도 교원지위보장과 방학 중 강사료 지급, 4대 보험 등을 핵심으로 하는 법 시행을 앞두고 몇몇 대학은 앞으로 부담할 비용이 엄청나다는 근거 없는 괴담을 퍼트릴 뿐, 정작 학생을 위한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모양새다.

고맙게도 랑시에르는 잊어서는 안 될 교훈 하나를 전해준다. 노예들의 반란 이야기. 스키타이족은 노예들의 두 눈을 멀게 해 길들였다. 하지만 주인인 전사들 대부분이 다른 나라로 원정을 떠난 사이, 노예의 자식들이 하나 둘 늘어나 멀쩡한 두 눈을 갖게 된 노예 후손들은 자신들도 전사로서 주인과 맞설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침내 주인들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노예들은 성 주변에 해자를 파고 전사로서 주인과 대적했다. 그런데 웬걸 주인인 전사들이 창을 버리고 예전처럼 채찍을 들고 달려들자 모두 식겁해서 도망쳤다고 한다.

대학의 구성원인 우리들도 어쩌면 이런 노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시간강사인 우리는 더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이 없었다는걸 자각하면서 함께 연대해야 한다. 하지만 위 교훈처럼 단지 싸울 수 있다는 것만 깨닫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이미 대학의 구성원이자 ‘정치’를 실현하고 구성할 수 있는 평등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그런 권리를 실현할 정치적 기반과 통로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조은평 문과대 철학과 강사  kk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258 리뷰게시판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문 으ㅏ아아앙 19.06.01 117
12257 리뷰게시판 shawn mendes - imagination 으ㅏ아아앙 19.06.01 133
12256 리뷰게시판 백예린-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을 아닐꺼야 숨이18 19.05.31 181
12255 리뷰게시판 이수 - 태양에 녹여 두돧둗 19.05.30 138
12254 리뷰게시판 어벤저스 엔드게임 두돧둗 19.05.30 113
12253 리뷰게시판 먼데이키즈 - 그대 품에 두돧둗 19.05.30 142
12252 리뷰게시판 건대 스타시티 라공방 321654 19.05.28 540
12251 리뷰게시판 키드밀리의 why do fuckbois hang out on the net Sekaowa 19.05.27 209
12250 KU 미디어 놓치지 말자! 장안벌 소식! [4] 건대신문 19.05.26 985
12249 KU 미디어 [학술]최재헌 교수의 세계유산이야기 - ⑤ 한국인의 정신문화와 세계유산 [2] 건대신문 19.05.26 892
12248 KU 미디어 [학술]물만으로도 움직이는 유체기계 [3] 건대신문 19.05.26 1225
12247 KU 미디어 [사설]신임 총동문회장에게 기대한다 건대신문 19.05.26 811
12246 KU 미디어 [사설]기부와 봉사로 주변을 돌아보자 건대신문 19.05.26 737
12245 KU 미디어 [칼럼]대리출석, 보는 사람이 없어도 [6] 건대신문 19.05.26 1331
12244 KU 미디어 [만평]1352호 만평 건대신문 19.05.26 895
12243 KU 미디어 [칼럼]행복은 self니까요 [2] 건대신문 19.05.26 883
12242 KU 미디어 [칼럼]올바른 정의, 모두가 만들어내야 할 문제 [1] 건대신문 19.05.26 913
12241 KU 미디어 [칼럼]대학 축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3] 건대신문 19.05.26 1693
12240 KU 미디어 [칼럼]새내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 [1] 건대신문 19.05.26 1087
12239 KU 미디어 [문화]내 성격유형은? [1] 건대신문 19.05.26 1362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