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19:59

[칼럼]무지의 특권

조회 수 1426 추천 수 0 댓글 1

 

10393_12489_5745.jpg
이준규 문화부장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는 우리에게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 공동체에 무관심해질수록 사회적으론 독재자가 탄생하고 개인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수록 어지러운 사회를 보며 지금 사람들은 정치를 혐오하고 타인을 위해 나서길 망설인다. 굳이 자신이 직면하긴 껄끄럽고 부담스러우니 대중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파묻혀 흘러간다. 당장 내게 불편한 문제는 없으니까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르니까 그렇다는 간단한 생각이다. 무관심은 이렇게 탄생하나 보다.

대다수 사람들은 국적으로 고통 받진 않는다. 인종 차별도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소수인종이 아니라면 겪을 일은 드물다. 더군다나 성별이나 장애로 불평등을 당하는 일은 더 이상 숨길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나치 정권을 목도한 유대인 여성 이민자로서 살아간 한나 아렌트에겐 모두가 현실적 문제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녀는 직접 문제들을 체험했기에 관심을 잃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기껏해야 친구와 용돈이나 시간이 부족함을 비교하며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각자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니 당연히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인식하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겪지도 알지도 못할 사회 문제들이 내게 무슨 책임이고 상관이 있는가. 하지만 무지도 특권이었다. 겪지 않아서 몰랐단 상황 자체가 차별과 고통에 면역된 특별한 기회가 주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지는 내 무관심을 떳떳하게 대변해주는 면죄부가 아닌 특권에 갇혀 사회를 무관심으로 병들게 하는 원인에 불가하다.

사실 ‘무지의 특권’이란 말을 듣기 전까진 나도 무지로 책임을 지우기에만 급급했다. 특히 내가 차별받지 않고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기에 몰랐다고 인정하는 과정은 불편한 경험에 가깝다. 하지만 무관심이란 사회적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지의 정당화를 포기하는 과정은 인내해야할 고통이다. 한나 아렌트가 다중적인 차별과 문제들에 직면하여 행동한 것처럼 우리도 인간다움을 포기한 채 사회에 떠맡기는 대신 관심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무관심을 극복하여 만들어낸 지금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내가 대부분 모르는 수많은 폭력에 겹쳐진 채 노출된 장소이다.

그렇기에 사회가 모두 무관심하다고 더군다나 나는 겪지 않아 몰랐으니 괜찮다고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아쉽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던 독재자들이나 아이히만 같이 대중성 또는 평범함을 가장한 악마와 방관자들은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지금 현시대에도 그대로 수많은 폭력과 차별이 우리들 무관심한 품속에서 탄생하고 있다. 꼭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를 이웃나라 독재자나 머나먼 외국에서 발생했던 학살처럼 멀찍한 이야기에서만 찾아볼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 집안의 가족이나 매일같이 살아가는 동네와 학교 근처에서 벌어지는 어쩌면 어머니와 경비아저씨나 학우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보자. 더 이상 몰라서 그랬다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며 변화는 시작된다. 그렇게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촉구했던 목소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지금도 여전히 울려간다.

 

이준규 문화부장  ljk223@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258 리뷰게시판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문 으ㅏ아아앙 19.06.01 98
12257 리뷰게시판 shawn mendes - imagination 으ㅏ아아앙 19.06.01 115
12256 리뷰게시판 백예린-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을 아닐꺼야 숨이18 19.05.31 164
12255 리뷰게시판 이수 - 태양에 녹여 두돧둗 19.05.30 118
12254 리뷰게시판 어벤저스 엔드게임 두돧둗 19.05.30 102
12253 리뷰게시판 먼데이키즈 - 그대 품에 두돧둗 19.05.30 128
12252 리뷰게시판 건대 스타시티 라공방 321654 19.05.28 530
12251 리뷰게시판 키드밀리의 why do fuckbois hang out on the net Sekaowa 19.05.27 177
12250 KU 미디어 놓치지 말자! 장안벌 소식! [4] 건대신문 19.05.26 977
12249 KU 미디어 [학술]최재헌 교수의 세계유산이야기 - ⑤ 한국인의 정신문화와 세계유산 [2] 건대신문 19.05.26 886
12248 KU 미디어 [학술]물만으로도 움직이는 유체기계 [3] 건대신문 19.05.26 1214
12247 KU 미디어 [사설]신임 총동문회장에게 기대한다 건대신문 19.05.26 800
12246 KU 미디어 [사설]기부와 봉사로 주변을 돌아보자 건대신문 19.05.26 710
12245 KU 미디어 [칼럼]대리출석, 보는 사람이 없어도 [6] 건대신문 19.05.26 1308
12244 KU 미디어 [만평]1352호 만평 건대신문 19.05.26 881
12243 KU 미디어 [칼럼]행복은 self니까요 [2] 건대신문 19.05.26 872
12242 KU 미디어 [칼럼]올바른 정의, 모두가 만들어내야 할 문제 [1] 건대신문 19.05.26 899
12241 KU 미디어 [칼럼]대학 축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3] 건대신문 19.05.26 1663
12240 KU 미디어 [칼럼]새내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 [1] 건대신문 19.05.26 1072
12239 KU 미디어 [문화]내 성격유형은? [1] 건대신문 19.05.26 1329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