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성 단독 산행 자제’ 유감
시간이 날 때마다 오르는 집 근처 산에 갔더니 못 보던 현수막이 입구에 걸려 있다. ‘등산로 안전 예방이 최선입니다’ 라는 문구 아래, ‘이른 새벽 늦은 시간 산행자제’, ‘호루라기 후레쉬 휴대폰 소지’와 같은 구체적 행동 지침이 적혀 있는데,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눈에 띄었다. 빨간색으로 가운데에 배치한 것을 보면, 호평파출소와 생활안전협의회는 등산로 안전을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집에 와 남편에게 현수막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등산로에서 범죄-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가 종종 일어나니까, 예방 차원에서 건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건 나도 안다. 현수막을 건 이들, 즉 범죄 예방에 관심과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과 단체는 범죄가 발생하면 어쨌든 피해자가 손해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고, 피해자 중에는 여성이 다수이니, 그렇다면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결론을 내리고, 아마도 ‘선의’로 그 문구를 넣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해결책에 매우 익숙하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하여 여성은 밤늦게 외출을 하거나 유흥가를 출입해서는 안 된다. 가슴이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는 범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이 유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가 되므로 단정하고 조신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 그러한 지침들의 존재는 범죄 발생 시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느냐,” “왜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느냐” 등의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제 여성 혼자 동네 산을 오르다가 범죄 피해를 당한다면, “그러게 산에는 여자 혼자 왜 갔어?”라는 말을 듣겠다. 이런 지침들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피해자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 구조 안에 존재한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언급했듯, 법과 강간범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솔닛(Rebecca Solnit)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드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강간 사건이 일어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일몰 후에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공지했다. 그 ‘해결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도 있음을 포스터로 알렸다: “일몰 후 캠퍼스에서 모든 남성은 나갈 것.” 그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솔닛은 적고 있다. 현수막에 “남성 단독 산행 자제”라고 쓰여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남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인 것만큼이나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언제쯤 유별난 불평이 아닌 자명한 것이 될까?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한참 설명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산의 입구엔 맞춤법의 오기만 교정되어 있을 뿐, ‘여성 단독 산행 자제’는 그대로다.
최하영 교수(사과대· 융합인재학과) ha0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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