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219 추천 수 0 댓글 1

시간이 날 때마다 오르는 집 근처 산에 갔더니 못 보던 현수막이 입구에 걸려 있다. ‘등산로 안전 예방이 최선입니다’ 라는 문구 아래, ‘이른 새벽 늦은 시간 산행자제’, ‘호루라기 후레쉬 휴대폰 소지’와 같은 구체적 행동 지침이 적혀 있는데,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눈에 띄었다. 빨간색으로 가운데에 배치한 것을 보면, 호평파출소와 생활안전협의회는 등산로 안전을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집에 와 남편에게 현수막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등산로에서 범죄-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가 종종 일어나니까, 예방 차원에서 건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건 나도 안다. 현수막을 건 이들, 즉 범죄 예방에 관심과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과 단체는 범죄가 발생하면 어쨌든 피해자가 손해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고, 피해자 중에는 여성이 다수이니, 그렇다면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 단독 산행 자제’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결론을 내리고, 아마도 ‘선의’로 그 문구를 넣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해결책에 매우 익숙하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하여 여성은 밤늦게 외출을 하거나 유흥가를 출입해서는 안 된다. 가슴이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는 범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이 유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가 되므로 단정하고 조신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 그러한 지침들의 존재는 범죄 발생 시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느냐,” “왜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느냐” 등의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제 여성 혼자 동네 산을 오르다가 범죄 피해를 당한다면, “그러게 산에는 여자 혼자 왜 갔어?”라는 말을 듣겠다. 이런 지침들은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피해자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 구조 안에 존재한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언급했듯, 법과 강간범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솔닛(Rebecca Solnit)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드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강간 사건이 일어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일몰 후에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공지했다. 그 ‘해결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도 있음을 포스터로 알렸다: “일몰 후 캠퍼스에서 모든 남성은 나갈 것.” 그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솔닛은 적고 있다. 현수막에 “남성 단독 산행 자제”라고 쓰여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남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인 것만큼이나 ‘여성 단독 산행 자제’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언제쯤 유별난 불평이 아닌 자명한 것이 될까?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한참 설명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산의 입구엔 맞춤법의 오기만 교정되어 있을 뿐, ‘여성 단독 산행 자제’는 그대로다.

 

 

최하영 교수(사과대· 융합인재학과)  ha0choi@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6 동아리 모집 건대 산악부 암벽등반 스포츠 클라이밍 명산종주 [1] 후아후아 14.10.01 3697
165 청심대 일상 로니로티 [35] 진기방기 14.09.30 913
164 동아리 모집 중앙동아리 KSM(Konkuk Sports Medicine)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행복한헤더 14.09.23 1672
163 동아리 모집 장애인권동아리 가날지기로 오세요~ 곧죽어도 14.09.22 1796
162 동아리 모집 2014.10.17 광진구청 주최 자원봉사 박람회, 벽화봉사 희망자 받습니다! [3] 브바바바 14.09.21 1700
161 동아리 모집 (오늘마감!!) HR의 꽃 퍼실리테이션을 직접 배워볼 수 있는 기회!! file 안알랴줌 14.09.18 1744
160 동아리 모집 [연합동아리] 솜사탕 인연맺기학교 소년지니 14.09.16 2179
159 동아리 모집 <중앙동아리> 금융연구회에서 17기 회원을 모집합니다. [1] 토마도마 14.09.15 2413
158 동아리 모집 [오늘마감!!] 대학생 연합 발표동아리 '스프링'에서 18기를 모집합니다. 으히히히 14.09.14 1350
157 동아리 모집 [ADAMAS 1%] 연합동아리 ADAMAS! 7기 모집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합니다! file 좋다 14.09.13 1590
156 동아리 모집 [오늘 마감!!!!] MOVER(건국대학교 마케팅전략동아리)에서 신입 5기를 모집... 아놔구리 14.09.13 1361
155 동아리 모집 ★☆알바하고, 학점따는 소중한 네 청춘, 생각대로 사는거니? [인간과 사회를 ... 올때메로나 14.09.13 1488
154 청심대 일상 김피라 [43] 꾸랭이 14.09.11 1051
153 동아리 모집 아직도 영어 성적 공부로 올리시나요? 저희는 외국인들과 놀면서 올립니다. ... [2] 비므 14.09.11 1770
152 동아리 모집 건국대학교 중앙동아리 안내 [3] 운영대표 14.09.11 3354
151 동아리 모집 Play Brand!! 국내 최초 대학생 연합 ""브랜딩"" 동아리, BRANDREAM에서 19... file 아론 14.09.10 1428
150 동아리 모집 기가막힌 동아리입니다. [3] 으히히히 14.09.10 1284
149 동아리 모집 [참여나눔연대] 대학생 연합 사회참여&기획 봉사동아리 3.5기 모집 (~9/18) 엔터 14.09.06 1262
148 동아리 모집 [MUSE] 클래식 기타 동아리 뮤즈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0^ [1] 뮤쥬 14.09.04 1365
147 동아리 모집 외국인 학생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동아리 IF [1] 비므 14.09.04 1267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16 117 118 119 120 121 122 123 124 125 ... 129 Next ›
/ 129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