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교수(몸문화연구소)와 함께하는 사랑, 삶의 재발명

 

사랑을 못하길 원하는 사람도 있을까? 제각기 다른 형태지만 우리 모두 사랑을 ‘잘’하기를 원한다. 각자가 꿈꾸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학업이나 알바에 치여 시간을 잃거나, 잦은 다툼에 지쳐 또는 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해 기다리거나 등등 그 이유 또한 각자가 또 다르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을 가져 알 수 없는 사랑이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우리 모두 사랑을 꿈꾸고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랑을 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사랑, 삶의 재발명』(은행나무·2017)을 쓴 임지연 교수와 함께 사랑을 이야기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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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봄이다, 들뜨기 쉬운 3월의 캠퍼스인데 유독 임지연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간 문과대 연구동 건물은 참으로 차분했다. 이 이색적인 분위기에 이어서 임지연 교수의 첫마디 또한 툭 예상 밖이었다.

 

『사랑, 삶의 재발명』책 이외에도 현재 유명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사랑·연애 칼럼을 연재중이다. 평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었나?

 

아니다. 상상도 못했었다. 오히려 거리가 멀어 평소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연애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들어왔었다. 그런 나도 예상치도 못했지만 이 책을 다 쓰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됐는가?

 

지금 현재 내가 소속된 우리대학 몸문화연구소에서 기획중인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가 계기가 되었다. 몸문화 연구소는 현대인들의 몸에 대한 개념과 인문학을 연계시켜 연구하는 우리 학교 연구소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고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찾다가 사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남녀노소 세대불문 모두가 가장 관심있고 언제나 원하고 고민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연구한 건가?

 

그렇다. 사랑은 연구주제이다. 실제로 사회학이나 철학은 물론 당연히 문학에서도 빠짐없이 사랑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보통 개인의 감정적이고 사적인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이자 학문적인 주제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 감정이다. 책에도 썼지만, 사랑은 시대별로 모습을 바꿔 간다. 이는 사랑을 포함한 ‘감정이 다뤄지는 사회적 방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 하나의 제도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그 사회적 제도 속에서 뽀그작 뽀그작(...)대면서 사랑을 성공하고 실패해간다.

 

사랑이 사회적, 즉 나 혼자 만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가?

 

그렇다. 사랑은 명백한 타자와의 관계이다. 단순히 사회적인 개념을 넘어서 타자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을 쓴 개인적인 이유도 평소부터 지속된 타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또한 어렵지만 내가 아닌 타자를 알아가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타자가 누구인지 항상 알고 싶어 연구해왔다. 사랑은 그 중에서도 타자와의 복잡한 관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개념이다.

 

연재중인 칼럼을 보고 처음 생각했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학우들의 고민해결을 위한 ‘연애 칼럼니스트’로 소개하긴 어려울 거 같다.

 

연구자에 가깝다. (웃음) 타자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자다. 역시나 아마 학우들이 상상했던 일상적인 연애 고민들을 당장 명쾌하게 해결해주긴 힘들 거 같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

서 온 여자’… 연애지침서가

연애를 지치게 한다.

 

당장 학우들이 처한 온갖 연애 고민들과 사랑앓이를 해결해줄 실용적인 개(?)꿀팁을 얻고자 왔지만 목적 달성은 실패인가. 실로 낭패다. 그렇다고 사랑에 관한 학문적인 정보와 개념들만 소개할 순 없는 법. ‘연애 칼럼니스트’가 아닌 ‘사랑 연구자’에게 그러면 우리 20대 학우들은 어떠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실질적인 연애 고민과 사랑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 가능한가? 각종 연애지침서나 주변 인생선배들이 해결책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랑을 망가뜨리고 망쳐버리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물론 20대들이 아주 절실하게 사랑과 연애 문제를 고민하고 있단 사실은 도서관만 가봐도 알 수 있다. 도서관에 몇 권이나 비치된 오래된 연애 베스트셀러는 잔뜩 줄긋고 별표치고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게까지 수없이 빌려지고 읽혀지고 있다. 원래 블로그에 연재 중이던 유명한 모 연애칼럼은 900만 명의 네티즌에게 읽혀졌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절실하게 도움을 찾고 있지만 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도움이 되지 않는가?

 

사랑은 사회적인 감정이다. 사랑은 아주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사회적인 것이다. 사랑은 사회적·생물학적 제도의 틀 속에서 인준되고 사회적인 관습으로 형성된다. 이는 결국 각 시대별로 생겨나는 관념이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연애지침서나 여러 가지 ‘조언’들이 고정관념을 인정하고 그속에서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여자는 쇼핑을 좋아한다, 남자는 바람을 피우는 동물이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과 사회적인 관습을 전제하고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이 중요한 점은 사랑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결핍’과 ‘위계’를 벗어난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아쉬워서 차별받고 고통 받는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관계는 특별하게도 이러한 고통들보다 앞서 서로를 동등하면서도 최고의 가치로 만들어 주는 관계이다.

 

그렇기에 기존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기에 특별했던 사랑을 사회적 고정관념의 틀에서 해결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당장에 해결책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과 고통을 고착화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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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려운 개념이다. 사랑이란 관계는 기존의 사회적인 관계, 그러니까 고정관념들과 다르기 때문에 소중하고 특별하지만 기존의 ‘연애지침’은 고정관념들을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다. 사랑은 독창적인 관계이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서 특별한 관계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남들과 비교하며 일명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좋은’ 사랑, ‘진짜’ 사랑이라는 단어와 개념부터가 문제점을 보여준다. 바로 고정관념이 많은 사람들이 가진 사랑이라는 개념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진짜 사랑을 할 거라는 말 자체가 현재 고정관념 속에서 타인들이 추구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당장 자신이 해결할 생각 없이 고정관념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더 좋은 사랑은 누구와 비교가능한가?

 

‘하나 됨’ 보단 ‘둘 됨’,

환상에서 지상으로…

자신만의 사랑을

재정의 하자

 

우리가 지금 고정관념 속에 갇혀서 사랑을 잘하지 못한다면, 어떡해야 독창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롭게 생각하고 봐라 봐야할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을 우선 어떻게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

 

사랑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첫째, 발생론적 사랑 ‘falling love’ 둘째, 지속으로서의 사랑 ‘doing love’로 생각해보자. 어떤 환경에서든 상대방이 누구든 얼마나 시간을 보냈든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느꼈다면 그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을 초월한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개념은 바로 지속으로서의 사랑, ‘doing love’이다.

 

지속적인 개념에서의 사랑이 더 중요한 이유는?

 

처음 느낀 감정인 발생론적 사랑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그 이후의 지속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너 변했어’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생물이다.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발생론적 사랑의 상태, 즉 막 사랑에 빠졌을 때의 사랑에선 서로간의 차이나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낭만’적인 틀에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다. 콩깍지가 씌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후 변해가는 관계, 변하는 자기정체성 속에서 그러한 변화와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처음의 발생론적 사랑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낭만’의 틀에 갇혀 현재의 사랑을 인정하지 못한다.

 

차이를 거부하고 똑같은 ‘하나 됨’을 추구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변화와 차이를 인정하는 ‘둘 됨’이 필요한 것 같다. 차이를 없애려는 행위는 고통을 부를 수밖에 없다. 대신 ‘하나됨’을 포기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또 그 속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둘 됨’이 해결책이 될 것 같다.

 

낭만을 생각보다 부정적인 개념으로 바라본다.

 

사실 낭만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발생론적 사랑을 강조하는 태도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 역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 속에서 탄생한 근대적 개념이다.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인 요 인에 바뀌어온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낭만과 자본이 결합됐다고 볼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은 처음의 사랑이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하게 이어지길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관이다.

 

낭만적 사랑 또한 앞서 말한 사회적으로 탄생한 고정관념 중 하나일 뿐더러 사랑이 가진 발생론적 측면만 바라보는 편향된 태도이다. 이제 낭만이라는 환상에서 지금 눈앞에 이루어지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각자의 사랑을 ‘재정의’하자.

 

‘Me Too 운동’,

‘펜스룰’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낭만을 피하고 하나 됨을 포기하는 독창적인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남녀 간의 갈등으로 위기사회처럼 보이는 지금 우리는 어떤 인식과 자세가 필요할까?

 

지금 그렇다면 20대, 특히 우리대학 학우들은 어떻게 해야 독창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성찰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웃음) 어찌 보면 사랑과 거리가 멀고 뜬구름 같은 답이지만 오히려 인문서적과 철학서를 읽는 게 사랑을 잘 하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알렝 바디우의 ‘사랑 예찬’을 읽어보길 권한다.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생각해야 지금 본인이 고정관념에 갇힌 채 상대방을 바라보아서 연애를 못하고 있는지, 만약에 연애중이라면 고정관념을 통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하나 됨을 강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결함을 찾고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사회에서 사랑보단 젠더와 관련된 갈등이 치솟고 있다. 역시 같은 해결책이 필요한가?

 

위기라고 바라보기 보단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분히 정치적인 사건으로 볼수도 있지만 사랑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사회적인 이슈는 우리 모두가 관계와 사랑을 본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건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본인부터 사랑을 왜곡시키고 있었는지 성찰해야한다. 더 나아가 사랑에 권력이나 위계화와 같은 폭력성이 들러붙어있었다는 점도 증명되었다. 우리는 이런 문제점들을 깨닫고 자신과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가진 사랑에 대한 고민을 성찰하고 재발명할 수 있다면 위기보단 기회가 아닐까?

 

 

이준규 기자  ljk223@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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