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891 추천 수 0 댓글 1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1978년 출간된 시집 「새벽길」에 실려 있는 고은 시인의 작품 <화살>의 일부를 옮겨와 봤다. 이 작품에서 고은 시인은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며 세상의 부정의에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는 어김없이 고은 시인의 작품이 등장했다. 선생님들도 고은은 대단한 시인이라고, 그의 시는 아름답다고 누누이 얘기해 주셨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나름의 ‘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롤모델(Rolemodel)이었을 문학도들도 꽤 있을 거다. 하지만,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며 저지른 그의 만행들은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추악하다. 과연 그의 ‘화살’이 향한 정의가 도대체 어떤 정의기에 그런 짓들을 저질러 온 걸까.

 

고은 시인이 수많은 문학도들의 우상이었듯, 소위 유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곤 한다. 이윤택 연출가의 작품을 보며 연극의 꿈을 키워왔거나, 배우 오달수의 연기를 보며 연기자라는 진로에 도전해온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들을 닮고 싶어,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학도들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러한 ‘명사(名師)’들을 우상으로 여기는 것은 왠지 모르게 껄끄럽다. 치부를 드러내며 곤두박질치는 그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리라.이즈음에서 중학교 시절, 도덕 교과서 끄트머리에서 봤던 ‘된사람’과 ‘난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도덕선생님은 ‘된사람’이 되는 것이 ‘난사람’이 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선택받기 위해 ‘난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의 수많은 우상들도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난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롤모델로 선택되었을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능력이 뛰어나 우상화 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목격될 때마다 우리는 실망하며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그들이 도덕적이어서귀감이 된 사람들이 아님에도 말이다.

 

더 이상 ‘나기만 하고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들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당분간 ‘롤모델’은 없을 듯하다.

 

이다경 기자  lid0411@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218 KU 미디어 [보도]상허기념도서관 개관 30주년 맞이해 건대신문 19.05.19 951
12217 리뷰게시판 건대후문 매머드커피집 [3] 철히찡 19.05.07 411
12216 리뷰게시판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봉구맨 19.05.07 204
12215 리뷰게시판 건대 중문 카레대장 [1] 봉구맨 19.05.05 311
12214 리뷰게시판 후루룽룽 [3] 애프리컷 19.04.29 294
12213 리뷰게시판 트와이스 [1] 적나라한 벌잡이새 19.04.25 181
12212 리뷰게시판 28세 미성년 적나라한 벌잡이새 19.04.25 139
12211 리뷰게시판 건대 972바 적나라한 벌잡이새 19.04.25 169
12210 리뷰게시판 스쿨푸드 적나라한 벌잡이새 19.04.25 83
12209 리뷰게시판 건대 중문 착한 돈가쓰 [1] 날라라라라 19.04.23 222
12208 리뷰게시판 구의역 원할머니 보쌈 점심 정식 8000원 존맛탱 secret Fuxso 19.04.23 0
12207 리뷰게시판 제이문 -불 동희에요 19.04.23 155
12206 리뷰게시판 메디큐드 레드 이레이징 크림 동희에요 19.04.23 139
12205 리뷰게시판 어퓨 텐션팩트 민애옹 19.04.23 119
12204 리뷰게시판 학식리뷰 [1] 삑뾱 19.04.22 170
12203 리뷰게시판 거를 학식 알려줌 [5] 서운한 주사위뱀 19.04.22 484
12202 리뷰게시판 후문 래빗홀 서운한 주사위뱀 19.04.22 169
12201 리뷰게시판 조씨네 고기국수 [6] 뿌엥 19.04.22 317
12200 리뷰게시판 롤링파스타 [3] alsals 19.04.21 301
12199 리뷰게시판 결돈부리 [1] alsals 19.04.21 155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