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3 14:37

[칼럼]여행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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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 대형서점의 진열대엔 각종 여행서적이 가득 올려진다. 매대에 나온 여행서적들은 어서 멋진 여름 휴가를 즐기라고 큰 소리로 외쳐댄다. 운 좋게도 이번 여름, 2주 동안 유럽 5개국의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방문했던 도시 중 하나였던 프라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향이고, 프란츠 카프카가 한 때 살며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고즈넉한 도시였던 그곳은 관광객들로 가득한 테마파크로 바뀐 것만 같았다. 엄청난 인파와 함께 찰칵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 때문에 예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지 가이드는 “이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을 반기는 건 식당 혹은 호텔 주인, 소매치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빈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 5개국의 여러 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베네치아였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 2000여명의 시위대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봤다. 베네치아 시민들은 '우리는 떠나지 않는다(Mi no vado via)'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는 관광객을 원치 않는다" "거주권을 보장하라"고 외친다. 매년 2000여 명의 주민이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도심지는 이미 숙박업소로 가득 찼고, 최근에는 에어비앤비 등 숙소 공유 서비스가 유행하면서 현지인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옛 정취도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주요 관광지에는 중국산 기념품을 파는 점포와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이판을 치는 상황이다. 비단 유럽의 몇몇 도시 이야기뿐 만이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서울에서 뜨고 있는 용산구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 성동구 성수동과 같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곳들 또한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존에 특색 있는 가게를 운영하던 영세업자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여행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도시엔 실제로 ‘아름다운 삶’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몇 개월간 혹은 몇 년간 모은 돈으로 ‘욜로(YOLO)’를 외치며 비행기 티켓을 끊는 사람들의 삶도 과연 얼마나 행복한 종류의 것일까 싶었다. 미겔 데우나무노의 『안개』란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행에 대한 편집증은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누군가가 발견한 장소에 대한 혐오에서 유래한다”. 자신이 속한 장소는 이미 누군가에게 발견된 곳이며, 염증과 실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쩌면 현재 자신의 삶에서 별다른 만족과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곳 찾아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여행을 떠나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는 “너무 멋진 여행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sns엔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기록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예찬하는 여행의 어두운 그늘이다.

 

 

유동화 기자  donghwa42@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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