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901 추천 수 0 댓글 18

9122_11744_177.png

 

편집실을 떠난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더니 그냥 시원하기만 하다.

 

학보사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쓸 수 있는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고민된다. 고민 끝에 오랜 푸념이나 늘어놓기로 정했다.

 

학보사의 시스템 전반이 좀 이해되기 시작할 무렵, 그간 숨어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어느 순간 대뜸 다가왔다. 기자생활을 해오며 머리 한 구석에 붙어있던 알 수 없는 이질감이 고무줄 끊기듯 탁하고 사라졌다. 일에 대한 흥미와 함께. 기자의 세계에 대한 로망이나 근성 따위야 애초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저널리즘에 대한 신념은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자부하던 차였다.

 

서류상에서 ‘학보’라는 이름은 ‘관보’ 내지 ‘사보’라는 이름과 더 가까웠다. 학보사는 학교의 부속기관이다. 운영비 모두 교비에서 지급되며, 모든 기사는 이른 바 ‘주간교수’라고 불리는 교원의 데스킹을 통해 최종승인이 떨어진다. 본부의 장기적인 운영계획에 따라 학보사는 얼마든지 폐간될 수 있다. 시스템상의 학보는 ‘자율성’의 그 어떤 구성요건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건대신문>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편집권을 두고 본부나 주간교수와 갈등을 빚은 경험은 없다. 내 근성이 물렁한 탓도 있지만, 주간교수를 잘 만난 덕도 있다. 농담이 아니다. <건대신문>은 당장 지난 2011년에도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파업까지 감행한 적도 있었다. 당시 주간교수의 도를 넘은 간섭 때문이었다.

 

요컨대 학생기자들의 편집권은 오롯이 당시의 주간교수가 얼마나 자비를 베푸느냐와 편집국장이 얼마나 입담이 강하냐에 달려있는 게 현실이다. 개인의 의지, 성향에 기대야 보장받는 권리는 노예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설령 주간교수가 단 한 번도 편집실이나 조판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간교수가 존재하는 한 그 학보사에겐 ‘언론’으로서의 어떤 권한도 없다.

 

좋은 점도 있다. 이른바 ‘업계’에서는 벌써 십 수 년째 위기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적어도 학보에게 이러한 맥락의 ‘위기’란 없다. 영리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체도 아닐뿐더러, 배포처도 나쁘게 말하면 제한적이지만, 좋게 말하면 매체의 객관적인 경쟁력에 비해 매우 보호받고 있는 상황이다. <건대신문>도 마찬가지다. 독자의 수가 떨어져 간다고 많이들 고민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구독률 추이를 조사하고 있는 학보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굳이 학보사의 위기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 매체를 생산하고 있는 기자들의 허탈함과 자괴감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기자들이 이탈하게 되고, 지독한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 그리고 또 그로 인해 더욱 허탈해지고 있는 것뿐이다. 마치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 했지만, 사실 학보사 기자에겐 이게 전부다. 보람이 없으면 편집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은 작은 사회(국가)와 같다’는 주장에 별 고민 없이 동의한다. 따라서 학보의 역할 또한 사회에서의 언론의 역할과 같다고, 그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대학은 사회와 전혀 다르다. 대학은 차라리 거대한 하나의 서비스상품에 가깝다. 그것도 몹시 불공정한 관계 위에서 거래되는.

 

이렇게 봤을 때 비로소 학생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 조직들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더 선명해진다. 학생회가 학교와 학생 사이의 조정자가 아니라 학생(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이익집단으로서 활동해야 하는 이유, 학보가 대학이라는 하나의 상품에 대한 소비자 중심의 비평지가 되어야 하며, 그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의 경영자와 소유주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들이 구조적, 재정적 독립을 해야만 하는 이유 모두가 말이다.

 

조만간 새로운 수습기자들이 내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들은 언젠간 나와 같은 고민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길은 두 가지다. 학교의 부속기관으로서 사보, 관보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그들이 배운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어느 쪽이건 가시밭길이다.

 

 

심재호 기자  sqwogh@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커뮤니티
커뮤니티메뉴에 있는 게시판들의 모든 글이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본 페이지에서는 글 작성이 불가능하니 개별 게시판에서 작성해 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게시판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858 KU 미디어 올해 우리대학 유학생 등록금 5% 인상돼... 대학본부 “유학생 등록금 인상은... [12] 건대신문 17.04.08 2883
10857 KU 미디어 전학대회 주요안건: 학생인권위원회 신설, 상경대 성추행 가해자 징계 상향... [9] 건대신문 17.04.08 2916
10856 KU 미디어 상경대 성추행 가해자 징계 ‘무기정학’... “최소 3년 동안은 징계해제 안 돼” [15] 건대신문 17.04.08 4144
10855 청심대 일상 쭈꾸미킹 [13] 푸우리 17.04.08 287
10854 분실물찾기 애플워치2를 찾습니다. [4] junix 17.04.07 164
10853 KU 미디어 [Exchange Student] Introducing UND Exchange Student [32] file 영자신문 17.04.07 3389
10852 자유홍보 건국대학교 태권도부 돌려차기에서 신입 부원을 모집합니다! file 나가리나기리릴ㄹ 17.04.05 341
10851 KU 미디어 [ABS NEWS] 2016년도 3월 넷째 주 헤드라인 [5] file ABS 17.04.03 1955
10850 자유홍보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이유 조섯 17.03.31 318
10849 건대교지 [카드뉴스] 우리들의 그린호프 [64] file 건대교지 17.03.31 16327
10848 건대교지 [카드뉴스] 1073일의 세월 [44] file 건대교지 17.03.31 10053
10847 분실물찾기 폴스미스 남자 검정 반지갑 찾아요(학관 1층 카페에서 분실했습니다.) [2] 2출노예 17.03.30 185
10846 청심대 일상 gs25 오모리 참치찌개 컵라면 [5] 건국엘리트 17.03.29 238
10845 청심대 일상 포포크림 [1] 건국엘리트 17.03.29 236
10844 청심대 일상 신촌 내무반 식당 삼겹살 무한리필 [5] 건국엘리트 17.03.29 338
10843 청심대 일상 홍대 망고코코 망고빙수 [5] 건국엘리트 17.03.29 138
10842 청심대 일상 상수역 라멘트럭 [5] 건국엘리트 17.03.29 211
10841 분실물찾기 산학 필통 및 흰색 다수납파일 찾습니다. [3] 뀨르르륵 17.03.28 125
10840 KU 미디어 [살 빠질 건대?] 1화 - 당신의 아침을 책임져 줄 쾌변주스 [8] file ABS 17.03.28 2260
10839 청심대 일상 30번째 영화, 13층 (1999) [1] 김노인의영화리뷰 17.03.25 144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 620 Next ›
/ 6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