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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를 통해 ‘청소년 혐오(ephebiphobia)’라는 단어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청소년 집단을 차별하거나, 사회나 개인들이 이들에게 부정적인 감정(맹목적인 공포나 편견,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혐오 범죄)을 가지는 것을 일컫는다. 여성 혐오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함에 따라 다른 소수자 집단들을 향한 혐오에 대해서도 대중적인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그러나 청소년 혐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곤 한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 나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다.’와 같이 반복해서 소비되는 어구를 보면, 마치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혐오하긴 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소수자 혐오가 비교적 영속성을 지니는 것과는 달리, 청소년 혐오는 대상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청소년으로서 부당한 차별을 당했던 사람조차도 시간이 지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를 별다른 문제로 삼지 않는다.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청소년 혐오’라는 명명에 대해 ‘아무데나 혐오라는 말을 붙인다.’ 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을 돌이켜보면 이것이 충분한 일리가 있는 논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을 비하·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혐오로 해석되어야 한다. 동시대 사람들의 시각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유행어만 보아도 그렇다. ‘급식충’, ‘중2병’ ‘등골브레이커’ 와 같은 최근 빈번하게 소비되는 단어들에는, 청소년 집단에 대한 멸시와 몰이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급식충’은 급식을 먹는 초중고생을 벌레에 빗대는 말으로 명백한 비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2병’은 청소년의 고민이나 심리상태를 병적인 것으로 묘사하여, 청소년들의 심도 있는 고민이나 고찰까지도 단순한 ‘허세’나 ‘병’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또한 ‘등골브레이커’는 청소년 집단이 스스로 구매할 능력이 있든 없든 간에, 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 개인의 소비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언어는 숨 쉬듯이 소비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청소년 집단을 향한 폭력적인 언어들에는, 다른 소수자 혐오와 동일하게 명백한 혐오의 정서가 반영되어있다.

 

 

 

눈에 보이는 ‘청소년 혐오’

 

사회 속 많은 병폐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현상들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을 청소년이기 이전에 한명의 독립된 ‘인간’으로 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익숙한 상황들에 대해 ‘낯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앞선 논의를 들었을 때, 누구든지 생각할 법한 청소년 혐오의 가시적인 사례는 이런 것이다. 먼저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학교라는 교육 제도 속에서의 인권 제한, 즉 복장과 두발 규정에 대한 논의다. 이러한 획일적인 규정에는 분명히 청소년 집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 편의성을 위해 인간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일률적인 틀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앞서 언급한 폭력적인 언어 사용이나, 청소년 집단에 대한 분명한 편견 역시 청소년 혐오의 일환이다. 편견은 주로 청소년 집단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데, 여기에는 거대 미디어의 프레임 작업이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는 비청소년의 범죄와는 달리 청소년의 범죄에 여러 강조어구를 붙여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들의 미성숙함을 중심에 내세워 자극적인 기사를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흔히 볼 수 있는 ‘무서운 10대’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와 같은 표현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청소년 혐오’

 

그러나 앞선 사례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너무나 당연해서 쉽게 문제를 인지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문장들을 보자.

 

 

1.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합시다.

2. 순수한 동심

3. 아이들에게 깨끗한 세상을 물려줍시다.

4. 네 나이 때는 공부가 최선이란다.

 

 

이 표현들을 보았을 때 “이게 왜 혐오 표현이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여성혐오가 공포, 멸시와 동시에 숭배의 이면을 가지고 있듯, 청소년 혐오 또한 공포와 멸시 이외에 사랑, 동경, 동정 등의 이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의 기저에는 어린이를 순수하고 천사 같은 존재로 보는 고정된 이미지와 그들이 미성숙하리라는 편견, 그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욕구 등이 존재한다. 청소년 혐오의 시각에서 볼 때 청소년은 두 분류로 나누어진다. ‘비행청소년’과 의젓한 ‘개념청소년’이 그것이다. 여성을 김치녀와 개념녀로 나누는 것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만연한 남성의 시각이듯이, 비청소년 위주의 사회에서 비청소년은 그들의 기준으로 성숙도에 따라 청소년을 판가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범’의 기준은 청소년들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하는데 사용된다. 비청소년의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하다면-즉 다루기가 쉽다면- ‘착하고 훌륭한 청소년’이 되는 것이고, 그들의 말에 반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한다면 ‘버릇없는 청소년’이 되는 것이다.

 

이어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을 사회의 구성원에서 배제하는 모습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회의 기준에서 그들에게 맞는 역할을 배당한 뒤 그 역할 외의 일들에서 자연스레 청소년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이러한 배제가 보호를 위해서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때의 보호는 보통 통제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위험에 대한 원인 파악과 청소년 스스로 위험을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매체와 장소에 청소년이 접근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식이다. 통제가 결코 효율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너무나도 쉽게 청소년들은 통제되고, 제한된다. 이러한 배제와 통제 속에서 청소년들은 실재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한 힘을 기르지 못한 채 편의의 울타리 안에서 사회와 동떨어진 교육을 받게 된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다.’ 와 ‘청소년에게 ~한 세상을 물려줍시다.’ 와 같은 표현 또한 청소년을 ‘현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미성숙하고 함께 행동해나갈 수 없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청소년 혐오의 뿌리 : 나이주의

 

그렇다면 이런 청소년 혐오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청소년 혐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청소년 혐오의 뿌리가 ‘나이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차별, 그리고 나이에 따라 사람을 규정하며 사회적 규범을 요구하는 제도나 이데올로기, 넓게는 사회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이주의의 뿌리는 에이지즘(Ageism)에서 찾을 수 있다. 에이지즘은 1970년대에 미국 사회에서 제안된 개념으로, 그 당시에는 노인에 대한 차별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즉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 ‘늙음’에 대한 차별이 주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이주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보통 나이 많은 것이 권력이 되고 나이를 기준으로 상하관계가 나뉘는 문화이다. 이러한 한국의 나이주의에서는 보통 연소자, 즉 어린이나 청소년이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연로자가 연소자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노인과 청소년에 대한 차별 담론 역시 대개가 경제 구조나 제도와 연관해서 만들어진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인과 청소년은, 흔히 경제 활동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사회적 무임승차자로 인식된다. 이것이 이들에 대한 혐오의 근간을 이루고, 차별의 잠재적인 명분이 된다.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나이에 대한 여러 관념이 사회제도와 구조에 의해서 ‘편의상’ 만들어진 경우가 많고, 이것이 개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청소년 혐오의 실체를 조금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 혐오는 단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혐오는 나이주의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낸 하나의 병리적 현상이다. 우리는 특정한 나이대의 사람을 특정한 사회적 역할에 연결시키는 데 매우 익숙하고, 나이는 각종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 개인의 삶의 조건이나 사회 활동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이주의적인 교육은 청소년을 미성숙하며 배우는 위치에 고정시킴으로써 청소년과 교육을 실제적인 삶이나 사회로부터 격리시킨다. 나이에 따라 그들의 지적 수준이 결정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청소년들이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게 만드는 교육이며, 학교에 교육적 자원이나 지위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러한 나이주의 하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일관된 삶을 강요하고 그것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그들을 배제한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고 미성숙한 존재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이다.

 

 

 

 

‘청소년 혐오’

 

청소년 혐오를 주장하는 이들은 청소년 개개인의 능력이나 자아에 대한 고려 없이 나이로 그들을 재단하는 사회 인식에 반발하고 이러한 세태가 변해야한다고 입 모아 말한다. 물론, ‘청소년 혐오’ 개념을 처음 제시한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이 청소년의 참여를 강화하고 ‘성인주의’에 맞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미국의 단체 ‘프리차일드 프로젝트’가 발간한 자료에서 ‘Ephebiphobia’의 개념을 끌고 와 연구를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이론화 작업이나 뚜렷한 경계선이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명백하게 존재하는 과학적인 비청소년과 청소년의 차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청소년을 향한 사회적 보호 시스템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하는지 등의 여러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청소년 혐오에 대한 논의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존재하던 여성혐오가 이름을 가지고 인지되어 제대로 논의되기 시작하기까지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청소년 혐오 역시 분명히 실재하지만, 우리의 편견과 고정된 사고방식에 의해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은 아닐까. 늘 획일적으로 다뤄져왔던 청소년들을 각각의 독립된 주체로 보고, 그들 집단에 작용하는 뚜렷한 차별적 시선을 인지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분명한 의의가 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일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분명한 차별적 시선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할 시점이다.

 

 

 

 

 

 

 

 

참고자료

교육공동체 벗, 「34호/2016년 9·10월호 나이주의를 넘어」, 2016

 

 

편집위원 김아현 cindys2s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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