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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꽃을 - “식물은 나약한 게 아니라 과묵한거에요.”

게릴라 가드닝 & 쿨라워 인터뷰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을 지독히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방에서 키우는 바질 사진을 내게 종종 보냈다. 사진 속 바질 너머로는 영화 ‘무드 인디고’ 여주인공의 방처럼 꽃이 가득했다. 친구는 정붙일 이유 하나 없는 서울의 삭막함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선물한 날, 그 친구는 내가 줬던 어떤 선물보다도 기뻐했다. 며칠 뒤, 그녀는 그 책을 돌려주며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내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은 시각적으로 잘 가꿔진 도시일까. 길을 걸을 때 주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서울의 외관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도시의 아주 작은 공간들까지 미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고, 거주자들의 생활 방식에 따라 도시가 고유한 색채를 갖춰가는 것 역시 그 나름대로 아름답기 때문에 서울의 외관을 단편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게 서울 특유의 삭막함을 방치해도 좋다는 뜻이 될 수 있을까. 만약 도시의 곳곳을 가꿔 자연과 시민들이 공존할 수 있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울의 삭막함에 대해 붙여대는 어떤 핑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게릴라 가드닝은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 혹은 말 그대로 게릴라처럼 도시의 곳곳에 식물을 심는 행위를 말한다. 1973년, 화가 리즈 크리스티가 자신의 집 근처 쓰레기장에 토마토 줄기가 자라나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도시 외곽의 공터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으로 바꾸며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비어있는 땅이나 공간을 찾아 공무원과 토지 소유자들을 피해 꽃 등의 식물을 심는다. 이들의 행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식물을 여러 용도로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과의 연대감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동체주의에서 시작해서인지 게릴라 가드너들은 관상용 식물부터 식용 작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심는다. 꽃 등을 심어 미관을 가꾸는 일을 치어가르텐(Ziergarten, 조경정원), 식용 작물을 심는 것을 누츠가르텐(Nutzgarten, 수익정원)이라고 부르는데 꽃이나 식용 작물을 지역 주민들과 공유해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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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로 알려진 게릴라 가드너는 경찰 기록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내에서 벌어진 동성애자들을 향한 언어와 신체적 폭력 사건 장소마다 팬지꽃을 심었다. 폴은 영어권 국가에서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은어 ‘팬지 꽃’을 사건 현장 인근의 길가, 나무의 갈라진 틈, 담장 아래 등에 심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해당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사진에 이름을 붙였다. 세인즈베리의 옥스퍼드 가의 포도주색 팬지 사진에는 Faggot, Poufs, Queers! 라는 이름을, 그로브너가의 팬지 사진에는 ‘게이놈들을 때려잡으러 갈 시간이야. 안 그래?’ 등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게릴라 가드닝은 기존의 폭력에 평화적으로 대응했다. 이를 본 맨체스터 시 의회는 폴에게 팬지를 합법적으로 심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폴은 2007년 ‘레즈비언 앤드 게이 필름 페스티벌’의 후원으로 2004년에 성소수자 혐오 범죄가 발생한 사우스뱅크와 퀸즈워크 거리에 팬지를 심을 수 있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이뤄졌지만, 버려진 땅을 찾아 그곳의 가능성을 솔선수범해 보여줌으로써 연대의식과 환경보호를 이뤄낸다는 공통적인 정신적 기반을 두고 있다.

 문득 서울의 삭막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강남구에서 4억 원을 들여 가수 싸이의 ‘말춤’을 모티프로 만든 ‘말춤 동상’이 거리 조경에 전혀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 전 세금 낭비 및 보여주기 식 행정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꽃이 아닌 담배꽁초와 1회용 커피 잔으로 가득 찬 화분, 흙이 고스란히 드러난 가로수 밑, 광고를 제외하면 색을 찾아보기 힘든 거리. 과연 시민들에게 필요한 건 유명 스타의 춤을 본 딴 거대한 동상이었을까.

 국가 기관을 탓하기에 앞서, 게릴라 가드닝은 시민들에 의한 변화를 추구한다. 일본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발리칸스’의 디자이너이자 가드너 ‘오카베’는 아웃도어 잡지 ‘고아웃’에서 도쿄의 게릴라 가드닝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이미 도쿄 시내에는 토박이들이 도로변이나 인도 주위에 조그맣게 노출되어 있는 땅을 찾아 정원처럼 꽃이나 화초를 심어두었다...이것이야말로 원조 게릴라 가드닝이 아닐까?”

 

건국대학교 내에도 게릴라 가드닝 동아리가 있다. 게릴라 가드닝 동아리 ‘쿨라워’는 기숙사 앞 철제 담장에 화분을 설치하는 등 2013년부터 우리 학교와 서울 곳곳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캡처.JPG

 


 

Q. 안녕하세요, 「건대」입니다.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생명환경대학교 녹지환경계획학과 14학번 권정민입니다.

 

 

Q. 쿨라워는 어떤 동아리인가요?

- 쿨라워는 게릴라 가드닝 소모임이에요. 동아리 이름은 같이 녹지를 늘리자는 뜻의 ‘Keep Green With Us Flower’을 줄인 말이에요. 원래는 환경과학과 내의 소모임이었는데 지금은 건국대학교 내로 범위를 넓혀서 모집하고 있어요.

 

 

Q. SNS를 보니까 쿨라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원예치료 활동도 하시던데요?

- 겨울에는 꽃을 심기 어려워요. 그래서 꽃을 이용한 다른 활동을 찾다가 우연히 원예치료활동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때부터 이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꽃을 통한 다양한 활동으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Q. 쿨라워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신 거예요?

- 1학년 때, 선배가 게릴라 가드닝 동아리를 시작한다고 하셔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조경과 산림에 관련된 학과다 보니 관심이 생겼고 무엇보다 꽃을 심는 동아리라는 게 신기했어요. 원래는 소규모였는데 인원이 늘어서 이제 50명 정도 돼요.

 

 

Q. 인원이 50명이면 게릴라 가드닝을 할 때 힘들지는 않아요?

- 안 그래도 인원이 많아서 공간을 찾기 힘들 때가 있어요. 인원이 적으면 작은 땅에 작업을 하면 되지만, 인원이 많으면 그만한 부지를 찾기 힘들어요. 외부에서 제안이 들어오면 부지가 확보되서 다 같이 작업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팀으로 나눠서 작업하고 있어요.

 

 

Q. 게릴라 가드닝을 할 때 던지는 ‘씨앗폭탄’에는 뭐가 들어있나요?

- 그 때마다 달라요. 씨앗폭탄은 장소에 어울리는 꽃 씨앗과 비료, 흙, 물을 빚은 거예요. 처음에는 잘 자라기도 하고 주위와 잘 어울려서 야생화를 주로 심었는데, 외부와 함께 작업할 경우에는 의견을 조율해서 꽃 씨앗을 넣어요. 그렇게 빚은 ‘폭탄’을 던지면 깨지면서 자연스럽게 꽃이 자라요. 빈 공간에 던지면 저희가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고요. 원래 산림녹화 작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심는 것보다 못 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직접 심을 때가 더 많아요.

 

 

Q. 게릴라 가드닝을 할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때요?

-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죠.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님들은 저희가 꽃을 심을 때 같이 아이들과 이야기하시면서 보기도 하고, 직접 도와주시기도 해요.

 

 

Q. 전반적으로 시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네요?

- 네, 저번에 해바라기를 심으러 공원을 돌아다녔는데 할머니들께서 좋은 일 한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해바라기를 다 심은 다음에는 직접 씨앗도 받아 가시고, 물을 주면서 관리도 해주시고. 그런 거 볼 때마다 뿌듯하고 신기해요.

 

 

Q. 결과물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좋나요?

-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긴 한데 아무 허락도 안 받고 작업을 했다가 도로 공사 때문에 심어놓은 꽃들이 사라진 적이 있어요. 긍정적이지만 이기적인 경우도 있었어요. 저희가 심은 꽃들을 뽑아서 봉지에 담아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번에 기숙사 가는 길 펜스에 화분을 걸어놨는데 그 때도 뽑아 가신 분들이 있고요. 다행인건 그런 경우는 점점 줄어든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작업한 곳 주위에 각자의 꽃들을 심어주시는 경우도 많고요.

 

 

Q. 아무래도 게릴라 가드닝은 불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와의 갈등은 없었나요?

- 처음에는 저희도 걱정이 되서 학교 내에서 활동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예술디자인대학교 앞에 사전에 연락을 드리고 작업을 했는데 잘 도와주시더라고요. 기숙사 담장에 걸었던 화분도 마침 학교의 조경 관리 팀에서 같은 기획을 하고 있었던 거라서 함께 진행한 거예요. 학교 측에서는 많이들 좋아해주세요.

 

 

Q. 심은 식물들에 대한 관리는 잘 이뤄지고 있나요?

- 사실 처음에는 관리를 잘 못했지만 꾸준히 해나가고 있어요. 4월에 국민대학교 근처에서 가드닝을 한 적이 있는데, 저희가 직접 가기에는 멀어서 그쪽 분들과 연결해서 관리하고 있어요. 이렇게 관리 방법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가는 중이예요.

 

 

Q. 그 외에 게릴라 가드닝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 아무래도 식물을 심다보니 농사와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덥고, 땅 파고... 그리고 물을 흠뻑 줘야하는데 물을 구할 장소가 없거나 적당한 부지를 찾을 때 힘든 일이 많았어요. 건대 근처에는 흙이 없어서 힘든 것 같아요. 흙이 있으면 그늘이 져서 꽃들이 안자라고요.

 

Q. 인터넷을 찾아보면 가로등에 조그만 상자를 걸어서 식물 심는 경우도 있던데요?

- 그런 건 예쁘지만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재미는 있지만 관리가 힘들고 식물들이 살기도 힘들어요. 그렇게 버려졌을 때 사람들에게 인식도 안 좋을 것 같아서 가능한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Q. 우연히 상추를 심으신 걸 봤는데 관상용 식물뿐만 아니라 식용 식물도 심나요?

- 그 상추가 너무 커서 지금 관리가 잘 안 되고 있어요. 처음에는 식용 작물을 심을 생각이 없었는데 도시 농업과 관련된 공모전에 참여하다가 상추를 심게 됐어요. 아무래도 식용 작물은 조금만 심었을 때 먹거나 나눠주기 애매하고, 관리도 힘들어요. 주로 관상용 식물들을 많이 심는 편이에요.

 

 

Q. 그 상추를 드시기도 하나요?

- 아니요. 저희가 키웠지만...

 

 

Q. 장소마다 식물을 심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색깔별로도 신경을 써서 정해요. 특히 부지마다 물이 많은지, 바람이 많이 부는지, 햇빛이 적은 지. 그런 환경적인 것들을 고려해서 심어요. 사실은 저희가 보기에 예쁜 것도 중요하고요.

 

 

Q. 생각보다 까다롭네요?

- 네, 그렇게 안하면 꽃들이 잘 안자라고 금방 죽어요. 예전에 예술디자인대학교 앞에 수국을 심은 적이 있어요. 수국은 습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예술디자인대학교 부지가 건조해서 금방 죽더라고요. 사실 그보다 큰 문제는 이렇게 힘들게 골라도 시장에 꽃이 없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 때는 시장에 있는 것들 중에서 골라 심죠.

 

 

Q. 꽃은 어디서 사나요?

- 양재 꽃 시장이요. 주 거래처를 정해서 할인도 받아요. 파시는 분들도 학생들이 꽃을 심는다니까 좋아해주시고요. 꽃을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많은데 힘들긴 하지만 막상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괜찮아요.

 

 

Q. 쿨라워에서 특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 앞으로는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연합 동아리로 진행할 계획이에요. 국민대학교와 ‘찾아가는 가드닝’이라는 이름으로 협업을 한 적이 있는데, 한 번 밖에 못해본 외부 협업이지만 앞으로도 외부의 학교나 다양한 장소, 모임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Q.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바람이 있나요?

- 먼저 식물들을 죽이거나 가져가지 마시고 같이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요즘 생태보건과 정원에 관련된 이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국내의 정책들이 많이 발전하고, 학생들이나 청소년 단체 등 주위의 연락도 자주 오고요.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게릴라 가드닝은 공동체주의와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하지만 사상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손으로 다른 이들과 생명과 기쁨을 나누려 한다는 순수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게릴라 가드너들의 ‘총 대신 꽃을’이라는 슬로건은 단순히 꽃이 총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 총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꽃으로 해낼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서울은 여전히 삭막하다. 수많은 디자인과 건물들 사이에서도 삭막함을 느끼는 걸 보면 문제는 단순히 도시의 외관뿐만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서로를 비난하고 탓하는 총보다는, 우리를 한 자리로 모이게 만들어줄 꽃이 필요한 게 아닐까.

 

편집위원 주동일 dijug@nave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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