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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4:19

 

“아따 그 기집애 건방지다. 저거를 누가 데려가나.”

“고것 참 이쁘다. 내가 장가나 안 들었더라면 한번 꼬셔봤을텐데….”

 

-나혜석의 목판화 만평(1920년 4월 『新女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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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10일

 

“나도 신여성이 되고 싶어.”

 

길을 가다가 나를 본 꼬마애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나를 불쾌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분명 꼬마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어머니에게 신여성이 얼마나 나쁘고 천박한지 잔소리를 들었을 거다.

 

길에서 마주친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공부도 안 하고 남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창녀”라며 제멋대로 문란한 사생활을 상상하고, 무시하고 지나가면 “역시 여자가 공부를 하면 제 잘난 줄 알고 싸가지가 없어진다.”며 윽박지르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우리 아빠도 “여자가 많이 배우면 시집가서 남편한테 대들기나 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여자들에게까지 비난받을 줄 몰랐다.

 

특히 여학당에 다니는 나에게 이런 비난이 쏟아진다. “학당에 다니는 여자애들은 기가 세서 사회생활도 못하겠다. 그러면서 사치부리고 돈 많은 남자 골라잡아 시집이나 가려는 거 아니냐?”는 예의 없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반대다. 과거의 여자들은 억압받으며 ‘남자가 원하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나’가 되고 있다. 여대에서는 남자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다. 남성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본인 주장이 뚜렷한 여성에게 ‘기가 세다’며 핀잔을 주지만, 여성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공간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는 여성을 ‘기가 센 여자’가 아니라 ‘똑부러지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여자를 버리는 게 아니라, 공부가 여자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거다.

 

 

1925년 6월 3일

 

내가 다른 여자들에게 욕먹는 이유를 알아냈다. 『신여성』이라는 잡지가 새로 나왔는데 여기서 말도 안 되는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거다! 코너 이름은 <신여성의 소문>인데, 그대로 신여성에 대한 소문이나 잡설을 엮어놓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온통 근거 없는 음담패설뿐이었다.

 

<신여성의 소문>

 

‘분홍저고리와 보석반지를 하고 조선극장을 매일 드나들어 기생 취급을 받았던 여선생님, 조선 부자의 내연녀였다가 바에서 접대 하는 미모의 여인, 여우털 목도리 때문에 배추장사에게 망신당하는 모던걸.’

 

남자들이 공부한다고 하면 ‘지식인’, ‘나라의 미래를 이끌 청년’, ‘고생하는 젊은이’라고 칭송해주고 집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여자가 공부한다고 하면 자꾸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비난하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잡지까지 만들어 내는 거야?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생활에 대한 소문에 시달리는 이들은 공부하는 여성뿐만이 아니다. 정치, 사상, 어학, 음악, 운동 영역에서조차 여성은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사생활은 어떤지, 외모는 얼마나 수려한지, 연애관계는 어떤지에 대해 더 집중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상대방과의 관계 혹은 사회와의 관계에 기초한 ‘공적 영역’에서의 평가다. 나를 ‘여학생’으로 보지 말고 ‘학생’으로 봐달라고 요구하는 게 그렇게 까다로운 부탁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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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0월 8일

 

계절이 바뀐 김에 머리도 하고 옷도 새로 사 입었다. 요즘 유행인 단발머리에 양장과 코트를 입고 거리를 걸으니 한결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어김없이 ‘품평회’를 하는 남자들이 나타났다. 단발머리를 하면 목이 드러나서 섹시하다, 양장을 입으면 가슴과 엉덩이가 드러나서 좋다, 굽 있는 구두를 신으면 종아리 라인이 예술이다…. 이 말을 듣고 너무 기분이 나빠서 한마디 했더니 “칭찬했는데 왜 싫어하냐”라고 오히려 나에게 따졌다.

 

우선 ‘본인 앞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평가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보다, 아랫사람에게 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신과 동등한 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다 들리도록 자기들끼리 수군댄다는 건 나를 낮은 사람으로 봤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리고 여자를 바라보는 ‘성적인 시선’이 짜증난다. 여자를 그냥 사람으로 보면 되지 굳이 ‘여자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여성적인 특성을 바라보려고 한다. 더 괘씸한 건 ‘남자의 본능’으로 합리화한다는 거다. ‘남자는 원래 이래’ 라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 본능대로 살 거면 도덕은 왜 배우는 건데?

 

 

1926년 2월 3일

 

어렸을 때 고향에서 같이 놀았던 옥희가 어제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모님 말씀 잘 들어 일찍 시집갔고, 남편과 시부모님 잘 모시고, 애도 여럿 낳아 잘 키우고 있던 옥희였다. 남성이 원하는, 집안일에 충실한 이상적인 부인일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폭력은 끊일 날이 없었고 결국 맞아죽고 말았다고 한다. 소작농인 옥희의 남편이 지주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옥희에게 풀었다는데, 더 화가 나는 건 주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저 집안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알아서 해결하라며 놔두었다고 한다. 옥희는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분명히 폭력사건인데, 이걸 집안일이라고 생각하고 놔뒀다고?

 

맨날 집에서 결혼하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말을 안 듣고 버티고 있다. 그 이유는 공부를 끝내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내가 제2의 옥희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맞아죽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닌 ‘누구 엄마’가 되어 집안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그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려고 해도 탐탁지 않게 보는 남편이나 시부모가 너무 많다. 어머니라는 자가, 아내라는 자가 가정은 뒷전이고 자기 공부를 한다니? 무책임하고 버릇없는 여편네 취급을 받을 거다.

지난 500년 동안 남성 중심 조선 사회는 여성을 착취해왔다. 그리고 권력에 도전하는 신여성은 이상한 소문으로 비난받고, 불쾌한 시선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의 목표는 사회에서 구여성이든 신여성이든 더 이상 ‘여성’으로 취급받지 않는 것이다. 나의 성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성적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뛰쳐나와 ‘사람’이 되고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살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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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위원 강정아 ouo_96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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